2009년 2월21일 토요일 오전 8시 30분.
한겨울 내내 이상 난동을 보이던 겨울 날씨가 우수가 며칠 지난 후 심술 부리듯
수은주를 떨어뜨려 아침 기온을 영하 7도 이하로 끌어내린 주말 아침.
소싸움으로 일반에게 잘 알려진 경북 청도로 향하는 중 잠시 멈춘 경부고속도로의 금강 휴게소.
지난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금강물을 막아 만든 작은 댐.
겨우내 얼었다 녹은 물 위로 아침 햇살을 받은 물안개가 서서히 걷혀 간다.
오전 11시 37분.
해발 470m인 밤티재에 도착하니 북쪽으로 봉수대,삼면봉 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북쪽의 청도군청이나 우체국 뒷편으로 올라
해발 694.5m인 대포산을 경유하는 이른바 봉수대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하지만
오른쪽 무릎 통증이 완쾌되지 않아 아내로부터 산행금지 권고를 받은 처지인지라
봉수대에서 직접 해발 846m인 삼면봉을 거쳐 해발 870m 남산 정상석까지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오후 1시 6분.
약 1시간 정도 쉬엄쉬엄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남향한 넓은 바위에 앉아
준비해간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700m정도 된다. 좁은 밤티재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보이는 이 산이
경상남도 창녕군과 경북 청도군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930.4m인 화악산이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화악산 하면 으례 경기도의 최고봉인 경기도 가평의 화악산(華岳山 1,468.3m) 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영남 사람들은 화악산하면 이곳을 떠올리게된다.
오후 1시 19분.
다시 배낭을 추스르고 가파른 오르막을 10여분 오르니 경사가 완만한 능선에 오른다.
이제 북쪽에 자리한 남산이 보인다.
여기부터 능선길은 아직 잔설이 많이 남아 비교적 미끄러운 길이다.
유난히 눈이 적게 내린 지난 겨울철이었지만 나는 눈구경에 있어서는 행복했던 겨울이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11월29일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발목까지 빠지는 눈속을 걸은 것을 시작으로
태백산, 전북 순창의 강천산, 전북 진안의 운장산, 그리고 대전의 보문산에서 흰눈길을 걷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렸다. 이제 오늘 이곳의 눈길이 이번 겨울 눈길을 걷는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오후 1시 43분.
3개면의 꼭짓점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해발 840m 삼면봉에서 남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한재미나리로 유명한 한재 지역의 미나리 하우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화악산과 남산이 천혜의 울타리를 만들어 외부 오염을 차단함으로써 청정미나리를 생산한다는
홍보문구가 허언이 아님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모습이다.
잔설이 남아있는 막바지 겨울산의 정취를 만끽하며 추억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휴일 하루를 자연속에서 보내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큰 행복이다.
오후 2시 18분.
매주 여행을 다니면서도 나 자신의 사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 편이지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올 겨울 산행이 아쉬워서였는지 모처럼 자화상을 한 번 남기고 싶어졌다.
일반인들은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리는 곳이 서울 남산, 경주 남산, 그리고 개성의 남산 정도일 것이다.
세가지 모두 조선,신라,고려의 옛 수도였다. 그렇다면 이곳 청도의 남산은?
다름 아닌 삼국유사, 삼국사기에도 기록으로 남아있는 이서국(伊西國)의 옛 수도가 청도였기에 남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남산 정상에서 북쪽을 내려다보면 청도읍내가 눈에 들어온다. 서울 남산, 경주 남산, 그리고 개성의 남산이 공히
해발 300m 정도의 높이인 것에 비해 해발 870m높이의 남산을 가진 청도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언급한 이서국(伊西國)은 신라 유리왕14년(서기 37년 : 삼국유사 기록은 노례왕14년, 삼국사기기록은 유례왕14년)에 신라의 금성을 공격하여 위기를 겪게 한 강력한 부족국가 였으나,
유례왕 14년(297년) 화양읍에 소재하는 이서산성에서 일전을 최후로 신라에 복속(服屬)되어 이서군(伊西郡)이 되었다 한다.
오후 2시 51분.
당초 출발했던 밤티재로 돌아오는 길.
오전에 비해 유난히 따뜻해진 날씨가 마치 봄철 산행을 할 때처럼 훈풍을 느끼게한다.
그러나 북향한 화악산 능선의 흰눈만 볼라치면 한겨울을 연상케한다. 따뜻한 햇살의 위력을 실감한다.
오후 3시 22분.
산행을 마치고 밤티재의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발을 내디뎠다.
남향으로 햇빛 잘 드는 해발 470m분지인 이곳에는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아담한 전원주택들이 한나둘씩 들어서고 있다.
콘크리트 성냥곽 같은 도시를 떠나 나무로 지은 전원주택에서 건강생활을 하고픈 마음은 아마 모든 도시인들의 희망이리라.
밤티재를 떠나 한재미나리에 삼겹살을 싸먹을 생각으로 군침을 삼키며 걷는 30여분의 산책길.
길가의 나뭇가지는 온통 봄소식을 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처럼 따뜻한 햇살을 계속 받다보면 며칠 지나지 않아 파릇한 봄소식을 우리 눈에 전해줄 것 같다.
오후 4시 11분.
한재미나리 재배단지의 비닐하우스 주위로 지어놓은 자그마한 식당들마다 미식가들의 즐거움이 이어진다.
금방 구운 뜨거운 삼겹살을 한재미나리에 싸서 먹는 그맛. 여기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니 산행의 피로까지 싹 가신다.
이처럼 작은 행복은 우리 주위에 항상 가까이 있다.
오후 4시 52분.
서산으로 해가 기울어가는 산골마을을 떠난다.
강원도 태백과 같은 식수가 모자랄 정도의 극심한 가뭄은 아니지만 이곳 청도 한재미나리단지의 가뭄도 심각하다.
바짝 마른 계곡물처럼 이곳에도 물이 모자라 미나리 작황이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농민들의 탄식에
가슴이 아파 온다.
알칼리식품으로 해독작용이 강해 복어 요리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미나리.
이곳 한재미나리가 일반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 1994년부터이다.
맛과 향이 타지방 미나리와 달라 처음으로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으로부터 '무농약 무공해 재배 품질인정'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한다.
돼지고기와 함께 먹거나 전을 부쳐 먹기도 하는 한재미나리는 1㎏ 한 단에 7천원 정도로 4월말까지 출하 한다고 한다.
이날도 한재미나리를 사러오거나 현지에서 먹으러 오는 차량들로 인해 2차선 지방도의 갓길은 주차차량으로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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