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지겟길을 찾아서 보물섬 남해로 떠난 여행
경남 남해군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성한 10 여개 구간의 '남해 바랫길' 중 제 1구간인
'다랭이지겟길'을 찾아 도착한 곳은 경남 남해군 남면 평산1리에 자리 한 평산항.
작은 어촌의 모습을 한 눈에 담기 위해 1024번 지방도 변에 위치한 평산2리마을회관 옆
언덕에 올라 평산항을 내려다 본다.
오래 전인 고려시대에 우수사를 설치하며 쌓았던 '평산성'이 이곳에 있었다.
한 눈에도 주위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가 될만한 곳이다.
더구나 좌측인 서쪽으로 해질녘 일몰시의 경치가 빼어날듯한 곳이다.
바다 가운데 외롭게 떠 있는 작은 바위섬들인 '대마도' , '마도' 너머로
광양제철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시골마을의 담벼락은 온통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정겨운 모습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거북선 한척이 배치되고 만호진으로 대치되며
평산포를 방어하던 둘레 약 500미터의 작은 성을 이루던 곳.
그러나 왜군 방어를 위해 조상들이 주린 배를 부여잡고 부역 나가 쌓았던 성은
이제 흔적도 없어졌다. 작은 마을의 담벼락을 이루는 축대에 쓰인 저 이끼 낀 돌들이
혹시 그 당시 평산성을 이루던 흔적이 아닐까?
선착장 길이 60여m에 불과한 작은 평산항에는 잔뜩 찌푸린 날씨 때문인지 적막감만이 감돈다.
낙지, 노래미, 도다리, 문어, 감성돔 등이 많이 잡히는 이곳 평산항은
예전 이름은 '산해'였으나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 관하에 조만호라는 수군 지휘관이 이곳에 주둔하면서부터
마을을 평산포(平山浦)라 부르게 되었다 전해진다.
평산항을 지나며 한동안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던 다랭이지겟길은
이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남쪽으로 바꾼다.
쪽빛으로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길.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다.
작은 돌을 하나하나 모아 축대를 만들고 논을 이룬 곳.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하기 바쁜 모습이다.
벼 수확이 끝난 논에는 이곳 남해군의 특산물인 마늘을 또 부지런히 심는다.
주름 진 얼굴에 무거운 지게를 지고 다랭이논을 돌보러 힘겨운 걸음을 걷던 이 길을
편안하게 걷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짐을 느끼는 순간이다.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인 죽도 너머로 길게 드러 누운듯한 형상의 땅은
전남 여수시 돌산도이다.
이곳에서 동쪽 방향인 경남 통영시 한산면에서 저곳 돌산도까지의 바다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이고, 저곳 돌산도에서 시작하여 서쪽 흑산도까지 이르는 바다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지난 해 봄 개통한 길이 740여m 의 거북선대교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 거북선대교는 여수 신항과 돌산도를 연결하는 제2 돌산대교이다.
알맞게 솔솔 부는 바닷 바람에 하늘거린다.
그 느낌이 늘씬한 몸매의 어여쁜 여인이 춤추듯 걷는 듯한 느낌이다.
가을을 잘 타는 남자의 마음을 더 설레이게 만든다.
숲길을 지나 언덕을 넘어서면 유구마을을 만나게 된다.
오랫동안 우리 젊은이들이 밤잠을 잊고 나라를 지키던 저곳.
시멘트 블럭은 온통 금이 가고 성한 곳이 없지만
얼기설기 얽힌 담쟁이 덩굴이 세월의 흐름을 지키려는듯 아픈 마음을 감싸 준다.
지도상에는 명칭조차 표기되지 않은 작은 포구.
아주 작은 방파제와 몇 척의 낚싯배만 눈에 띄는 곳이지만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최상의 휴식처로 부족함이 없을듯한 곳이다.
특히 금년 여름에는 우리나라 남해안에 근접한 태풍이 한 차례도 없어서인지
매년 가을 이맘 때쯤이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쓰러진 볏단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논두렁 길을 따라 걸어 본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며 고개 숙인 벼 이삭을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불러온다.
인기척에 놀라 화들짝 뛰어 오르는 개구리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조차 정겹게 다가온다.
유구마을 초입을 지나며 바닷가 마을 전체를 한 눈에 보기 위해
해안가를 벗어나 뒷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바닷가에서는 볼 수 없던 시원한 풍경이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여름철에 피는 우리나라가 원산인 이 야생화의 이름은 "인동"이다.
한겨울에도 잎과 덩굴이 말라 죽지 않고 있다가
봄이면 다시 새싹이 돋는다하여 겨울을 잘 이겨내는 식물이라며
"인동초(忍冬草)"라고들 흔히 부르지만 "초(草)"가 아닌
'덩굴성 반상록활엽관목'이므로 나무임이 분명하다.
꽃말이 '사랑의 인연'인 이 꽃은
꽃의 색이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불리운다.
사포닌 성분이 들어 있어 각종 균들에 대한 억제작용이 있다고 알려진
이 '인동"은 여러가지 별명을 갖고 있다.
꽃의 수술이 할아버지 수염과 흡사하다 하여 "노옹수(老翁鬚)" ,
꽃 속에 꿀이 있음으로해서 "밀보등(密補藤)" ,
귀신을 다스리는데 효험이 있는 약용식물이라 하여 "통령초(通靈草)" ,
꽃잎이 펼쳐진 모양이 해오라기를 닮았다 하여 "노사등(鷺'해오라기 사'藤)" 등...
한방에서는 뿌리를 사삼이라고 하며 진해·거담·해열·강장·배농제로 사용하는
잔대꽃이 예쁘게 피어난다.
잔대는 옛부터 인삼,현삼,단삼,고삼과 함께 다섯까지 삼의 하나로 꼽아 왔으며 민간 보약으로 널리 쓰여왔다.
잔대는 뱀독,농약 독,중금속 독,화학약품 등 온갓 독을 푸는데 묘한 힘이있는 약초로 알려져 있으며
옛기록에도 백가지 독을 푸는 약초는 오직 잔대뿐이라 하였다.
낮 12시44분
더 오를 곳이 없는 유구마을 뒷산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나뭇가지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 본다.
마을 앞을 반달 형으로 감싸고 있는 자그마한 해수욕장 너머로 멀리 돌산도 남쪽 끝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오전부터 찌푸렸던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며 시계도 점점 나빠진다.
멀리 바닷가 모래사장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일행들 중 일부인듯한 몇몇 탐방객들이 모래사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저들을 따라 잡으려면 이제부터 부지런히 하산을 해야할듯 싶다.
산비탈을 따라 논,밭을 일군 유구마을의 좁은 농토들도 지게를 지지 않으면
이동이 힘들 정도로 좁고 경사진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섬지방 특유의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움이 눈에 선하다.
유구마을은 예전에 주변에 매몰된 유기(鍮器)가 다량 발견되어 마을 이름을 유금 또는 녹금이라 불렀는데,
조선시대 말 행정구역 제정시 현재의 유구(鍮九)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조금 전 내가 올랐던 유구마을 동쪽 뒤에 있는 고동산(망기산)을
원래는 부부산(賦夫山)이라고 했는데 국가에 변란이 있으면 이산이 울음소리를 내었다해서
이름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전해 진다.
이곳 유구마을 해변은 강태공이 많이 몰려들어 봄이면 뽈락,
여름이면 고등어.메가리, 가을이면 감성돔이 많이 나는 곳으로
특히 가을이면 전국의 강태공이 몰려드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명성에 걸맞게 해안가 갯바위에는 낚시꾼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곳이다.
오후 1시19분
유난히 맑고 푸른 유구마을 앞바다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 후
사촌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이곳 유구마을까지는 행정구역상으로 남해군 남면 평산리이다.
유구마을에서 사촌마을로 향하는 길은 잠시 이와같은 숲길을 지난다.
조릿대 또는 신우대라고도 부르는 키 작은 대나무 군락을 지난다.
그런데, 이곳에서 지척인 여수 오동도에서 자생하는 대나무를 특별히 '신이대'라고 부른다고 하니
임진왜란 때 화살을 만들 때 썼다는 그 신이대와 지금 보이는 이 식물이 같은 것인지는 아리송하다.
또 하나의 숙제로 남겨 둔다.
유구마을을 벗어나 사촌마을의 중심부인 사촌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처럼 험한 바윗길이다.
크고 작은 자갈길과 물기를 머금은 해변가 크고 작은 바위를 지나야하므로
뛰어난 경관을 즐기며 지나는 길이지만 한편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남해군청에서 홈페이지 또는 언론을 통해 홍보에 열을 올리는 남해바랫길 구간 중
제 1구간이 이곳 다랭이지겟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내표지판이 너무 부실하다.
구간 사이의 거리 표시가 된 곳조차 거의 없으며,
이곳 유구마을에서 사촌마을로 이어지는 해안가 바위 구간에는 초보자들을 위한
안전시설을 조속히 갖추었으면 싶다.
이날도 산행 경험이 거의 없는 어느 탐방객이 바위 구간을 지나며 넘어져
가벼운 상처를 입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 보았기 때문이다.
오후 1시48분
가느다란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사촌항 선착장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숨 돌린다.
오전에 출발했던 평산항과 같은 날 어촌정주어항으로 지정된 이곳 사촌항 역시
평산항과 비슷한 규모의 작은 어항인데,
감성돔, 농어, 노래미, 도다리, 해삼 등이 많이 잡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사촌항 남쪽으로는 사촌해수욕장이 이어진다.
행정구역상 남해군 남면 임포리인 이곳 사촌해수욕장은 길이 650m, 너비 20m로
전체면적이 4,000여평인 아주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상주해수욕장과 더불어 남해군이 지정관리하는
4개 해수욕장 중 하나이다.
철 지난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여유로운 걸음으로 걸어본다.
송림과 모래가 좋고 강물이 맑고 깨끗하여 옛 이름이 “모래치”라고 불리워지던 곳으로
마을 이름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사촌(沙村)'이 된 곳인데,
아름다운 우리말인 '모래치'라는 이름이 훨씬 친근감 있게 들린다.
오후 1시56분
한적한 사촌해수욕장 모래사장을 거닐며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려했으나
제법 굵어진 빗방울이 그런 낭만을 허용치 않는다.
평산항에서 이곳 사촌해수욕장까지 7km 를 걸었고,
이곳에서 가천 다랭이마을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8km 남짓.
그러나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피해 차량편으로 가천 다랭이마을로 이동한다.
오후 2시22분
행정구역상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이지만 이제는 다랭이마을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와 닿는 다랭이마을이 동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해안가 언덕에서
걸음을 멈춘다.
수년 전부터 매년 한두차례 찾는 곳이지만 이제는 수년 전의 그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훼손된 점 마음 아프다.
다랭이논의 절반 정도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팬션,식음료 판매점 등으로 변해 버렸다.
마을 뒷편에 솟은 산은 봉수대가 있는 설흘산이다.
이 사진은 설흘산 정상부에 위치한 봉수대의 모습으로
지난 2009년 2월14일 오후에 설흘산에 올랐을 때 찍은 사진이다.
봉수대 위에서는 이곳 다랭이마을이 한 눈에 보임은 물론
동쪽으로는 아름다운 앵강만과 그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인
옛날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했던 '노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 사진은 지난 2012년 5월6일 오후 설흘산 봉수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 서 있는 위치의 반대쪽인 북동쪽에서 다랭이마을을 내려다 본 모습이다.
목재 데크로 안전한 산책로를 만들어 둔 바닷가에서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귀로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지난 일주일간 도시의 공해에 찌든 몸과 마음의 피로를 씻는다.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을 한 남해섬의
회음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는 가천 마을의 바닷가 모습을 마음속에 담는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라 불리어 왔으나
조선 중엽에 이르러 가천(加川)이라고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발 481m인 설흘산 정상부는 이곳에서도 뚜렷이 보인다.
주말 오후가 되면서 수많은 행락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삼한시대에 남쪽 변한(弁韓)의 12개 부족 국가중
군미국(軍彌國) 또는 낙노국(樂奴國)에 속하였다고 추측되며
이후 가야연합시대에는 6가야 중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현 진주 관할인 고령(古寧)가야에 속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며
처음 사적자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신문왕 7년(687)인 남해군이다.
온통 암반으로만 이루어진 다랭이마을 해안가 바위에는 파도가 쉴새없이 몰아친다.
이런 지형적 여건은 바닷가에 방파제를 만들 수 없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런 연유로 이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에 살면서도 어업에 종사하지 못하고 농업으로 생계를 잇게 된 것이다.
근면한 농민들은 좁은 경지에서도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층층이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논에서
남해의 주요 생산물인 마늘과 쌀을 이모작하는 방법으로 토지 이용률을 높여 왔다.
주요 농산물은 마늘, 쌀, 고구마 등인데
남해는 마늘의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랭이논과 더불어 이곳 가천마을의 또 다른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된 암수바위의 모습이다.
높이 5.9m의 수바위와 4.9m의 암바위로 이뤄진 암수바위는
발기한 남자의 성기와 애기를 밴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23일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푸짐한 제를 올리고 있다.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자녀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다.
오후 2시55분
남해군은 고려 중엽부터 조선 중엽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왜구들의 끈질긴 침공과 약탈을 받았지만, 스스로의 끈질긴 항쟁으로 땅을 지켰다.
그러다보니 이태리의 시칠리섬이나 프랑스의 콜시카섬 같은
섬 사람들만의 단결력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근면과 단결 없이 이런 다랭이논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조금씩 내리는 가을 비를 맞으며 짧은 시간동안 머물렀던 가천마을을 떠나며
억척스런 섬 사람들의 생활력을 곱씹으며 행복했던 주말 일정을 마감한다.
위 남해군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남해 바래길중 제1구간인
'다랭이지겟길'구간이다.
참고로 "바래"란 갯벌과 갯바위 등에서 해초류와 해산물을 캐는 행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