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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해안노을길을 거쳐 백제불교최초도래지로 이어진 남도 여행

온누리* 2013. 9. 17. 09:56


2013년 9월15일 일요일 오전 10시 9분
지난 2011년 가을 제1회 대한민국 자연경관 시상식에서 자연경관 분야 전국 1위를 차지하여
 최우수상인 국토해양부 장관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진 '백수해안노을길' 산책을 위해 도착한 곳은
노을 전시관이 자리 한 전남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바닷가이다.




수년 전 이곳 해안도로 남쪽의 구수산 산행을 하면서 이곳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백수해안도로의 아름다움을 체험한 일은 있지만 오늘은 해안을 따라 여유있게 걸으며
또 다른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다.




이곳 백수해안노을길을 방문하는 이들은 이곳 노을전시관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2.3km 남짓 거리인 제7주차장까지 다녀오는 것이 보통이다.
해안도로 변을 따라 만들어 놓은 목재 데크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햇살은 뜨겁지만 바닷 바람은 무척 시원하게 불어 온다 .




이곳의 행정구역인 '백수면'을 한자로 표기하면 '(白: 흰 백,岫: 산봉우리 수)'면이다.
당초에는 주위 산의 봉우리가 100개라 하여 '百岫(백수)'라 불렀으나,
산봉우리의 실제 갯수가 100개가 아닌 99개인 것으로 밝혀져
일백 백(百)자에서 한 획을 빼 버린 '白(백)'으로 바뀌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흔히들 서해 바다를 얘기하면 흙탕물을 연상하는 누런 바다,그리고 물 빠진 갯벌을 떠올리지만
이곳 백수해안노을길에서 접하는 바다는 마치 동해 바다의 그것을 연상 시킨다.
온통 기기묘묘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을 따라 맑은 바닷물이 만들어 내는 흰 포말.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온 몸이 상쾌해지는 그런 곳이다.




길을 따라 걷다가 조금 지루해진다면, 목재 데크 계단을 내려가 흰 포말과 파도를
가까이서 만나고, 또 마음이 동하면 그 푸른 파도를 손으로 만져보아도 좋은 그런 곳이다.




산책로 변은 온통 숲길이다. 앙증맞은 모습의 이질풀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노관초라고도 불리우는 이질풀은 많은 양의 타닌과 케르세틴이 들어 있어
 소염·지혈·수렴·살균 작용이 있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대장 카타르·이질·위궤양·십이지장궤양 등에 약재로 사용하고,
한방에서는 현초(玄草)라고 하며 지사제로 쓴다.




온갖 야생화들이 다양한 산책로 변이지만 가장 많은 것은
이처럼 진분홍으로 피어나는 크기가 큰 해당화이다.
흔히들 바닷가 모래밭에서 쉬이 접하는 해당화가 이곳 백수해안노을길에는
산책로 한쪽으로 해당화 꽃길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이어진다.




이제 계절적으로 해당화 꽃이 질 때가 되어서인지 꽃보다 열매가 더 많이 눈에 띈다.
해당화는 열매효능도 뛰어나지만 뿌리껍질인 매괴화근, 꽃봉오리인 매괴화,
꽃봉오리로 짠 기름을 매괴유라 하며, 약재로 사용한다.
해당화열매효능으로는 피와 기를 잘 돌게 하고, 어혈을 흩어주며,
몸속에 뭉친 담을 풀어주고, 소화가 잘 되며, 담즙이 잘 나오도록 하는 효능이 있다 한다.




오전 10시29분
제3주차장 인근 도로변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는 바다는 마치 호수면처럼 잔잔해 보인다.
바다 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작은 바위의 이름은 '노랑여' 이다.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바위를 보통 ‘여’라고 하는데,
‘숨은여’는 물속에 숨어 있는 ‘여’의 특성을 조금 더 강조한 말로
한자말 ‘암초(暗礁)’에 갈음할 수 있는 우리말이다.
염(바위섬) 주변을 항해하는 배가 숨은여에 부딪혀 부서지는 일이 더러 있어
뱃사람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바위에 해당한다.
아마도 저 '노랑여'는 멀리서 보면 노란색으로 보이므로 그런 이름이 붙은듯 싶다.




수평선 부근에 낀 옅은 안개로 인해 시야가 분명치 않지만 수평선 부근에 작은 배가 몇 척 보이기에
망원렌즈로 당겨본다. 작은 고깃배 몇척이 잔잔한 바다위를 미끄러지듯 지난다.
너무나 평화로운 정경이다.




오전 10시34분
이곳 백수해안노을길은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게 제격인듯 싶다.
9월 중순에 접어들어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하지만 한낮의 태양은 더위를 조금 느끼게까지 한다.
걷다가 지치면 이런 쉼터에서 바닷 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더위와 갈증을 씻어낸다.




쉼터를 떠나 계속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
이번에는 최근 들어 전국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도로변 조경용으로 심기 시작한
배롱나무가 빨간색 꽃으로 도로변을 치장한다.
흔히들 백일홍나무라 부를 정도로 꽃이 오래 피는 배롱나무는
만발한 꽃을 보기 힘든 요즈음 삭막한 도로변의 분위기를 바꾸는데는 안성맞춤일듯 하다.




오전 10시 39분
제4주차장과 제5주차장 중간 지점인 도로변 공터에는 간단한 음식과 음료 등을 파는
몇몇 노점상이 진을 치고 있다. 칠산정이라는 전망용 정자가 있는 곳이다.




'365 건강계단' 이라는 표지판이 크게 붙은 곳을 지나 칠산정으로 오르는 계단길로 들어선다.
계단 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양쪽으로 동백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는 계단 윗쪽을 바라보니 까마득하다.
그래서일까? 계단을 오르내리는 이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이곳 백수해안노을길 구간 중 가장 한적한 곳이다.




윤기 나는 동백잎 사이의 거미줄이 손상없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모습이 이채롭다.
머잖아 닥칠 긴 겨울을 지내기 위한 거미의 사냥꾼으로서의 본능이 느껴지는 정교한 거미줄.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자신의 아내이자 바람둥이인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불륜 현장을 잡을 때 썼던 가늘디 가는 쇠 그물도
이 거미줄보다는 정교하지 못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2개 층으로 된 칠산정 윗층에 올라 난간 너머 남쪽으로 눈길을 돌려 본다.
40여분 전 출발했던 노을전시관이 까마득히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쉴새 없이 불어온다.




잠시 편안한 나무 벤치에 앉아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이번에는 북쪽으로 눈길을 돌려 본다.
난간 사이로 북쪽 해안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야 할 북쪽 해안가를 바라보며 칠산정을 떠난다.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은 '돔배섬'이라는 이름의 무인도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육지는 영광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영광군 홍농읍이다.

해안선길이 1.7㎞인 저 작은 섬은 간조시(干潮時)에는 도보로 왕래가 가능하며,
'도음소도(道音所島)'로도 불리는 저 무인도는 백제에 불교를 전하였다는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백제에 들어올 때 처음으로 불상을 내려놓은 곳이라는 설도 있다.




3km가 채 못되는 짧은 산책로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다.
뜨거운 태양빛에 더위를 조금 느낄라치면 이내 산책로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
이처럼 멋진 곳에서 파도가 만들어 내는 희 포말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닷바람에 온 몸을 내맡기다보면 더위는 어느새 저만큼 물러나 앉는다.




다시 이어지는 산책길. 이제는 야생화를 살피며 걸음을 잇는다.
이 야생화는 울타리,담장 등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인 박주가리다.
익은 열매가 표주박을 닮아서 그 이름을 얻은듯 하다.
예전에는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지혈제 등으로 썼으며
 최근 씨앗에 자외선 차단성분이 다량 함유되었음이 알려졌다고 한다.




제6 주차장을 막 지난 지점에서 조금은 특이하게 생긴 게와 마주친다.
산책로를 걷는 동안 몇차례 이 게를 발견하긴 했으나
재빨리 숲속으로 숨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했었다.

이 게의 이름은 '도둑게'이다.
바닷가에 가까운 육상 습지나 냇가의 방축 돌 밑, 논밭 등에서 주로 사는데,
우물가나 심지어 부엌에까지 들어가며 여름철에는 해안의 산 위에까지 올라간다.
도둑게라는 이름은 부엌에 들어가서 음식물을 훔쳐 먹는다 해서 생겼다고 들은바 있다.




오전 11시 2분
제7주차장을 지났으니 목재 데크로 산책로를 만든 백수해안노을길을 이미 끝이났다.
대부분의 일행들도 이미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하지만 시간 여유가 많이 있기에 해안선을 따라 계속 걸음을 이어간다.

나비 한 마리가 여유롭게 꿀을 빠는 이 꽃은 '익모초'이다.
익모초(益母草)란 이름은 어머니들인 부인들에게 유익하여,
눈을 밝게 해주고 정력을 더하여 준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부인들이 해산 후 복용하면 회복력이 빨라지며
 생리통이 심할 때 복용하면 분비를 촉진시키고 대사를 원활하게 하여
정상 생리작용을 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백수해안노을길이 끝나고 인적이 없는 길이어서인지
길섶의 야생화가 조금 전까지 지나온 길보다 훨씬 다양하게 자라난다.
이 야생화는 덩굴식물인 계뇨(鷄尿)이다.
고약한 닭오줌 냄새가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약한 냄새를 내는 이 꽃은 일명 계뇨등(鷄尿藤)으로도 불리는데,
한방에서 열매와 뿌리를 채취하여 말린 것을 각각 계뇨등과(鷄尿藤果),
계뇨등근(鷄尿藤根)이라 하며 신경통 ·류머티즘 ·관절염 ·소화불량 ·
위통 ·간염 ·비장종대(脾臟腫大) ·기관지염 ·해수 ·골수염 ·타박상 ·
림프선염 ·화농성질환 등에 처방해 온 때문이다.




잠시 후 만난 이 야생화의 이름은 '사위질빵'이다.
잎을 말렸다가 끓여서 차로 마시기도 하는데 여위차라 하여 신경통 관절염에 좋다고 한다.
그러나 사위질빵에는 독성이 함유되어 있어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 다루어야 한다.

'사위질빵'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게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사위질빵은 백근초라는 이름이 따로 있지만 덩굴식물인 칡이나 인동덩굴,
댕댕이덩굴처럼 질기지 못하고 쉽게 끊어져 버리는 특성이 있는데,
예전에는 가을걷이 때가 되면 사위가 처가에 가서 일을 도와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사위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미안한 장모는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주려고
줄기가 연약하여 잘 끊어지는 사위질빵으로 지게멜빵을 만들어주었다고 하니
사위에 대한 장모의 사랑이 담긴 꽃이다.




오전 11시7분
북쪽 방향으로 이어지던 백수해안도로는 90도로 각도를 꺾어 동쪽 방향으로 이어진다.
홍농읍을 거쳐 흘러 내린 구암천과 그 남쪽의 법성포를 따라 흘러 내린 와탄천이 합류하여
풍부한 어족자원을 형성하는 칠산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돔배섬과 그 너머 홍농읍 사이의 작은 바위섬은 괭이갈매기의 서식지로 유명한 괭이섬이다.




계속 걸음을 옮기던 중 유난히 색깔이 짙은 닭의장풀을 만난다.
한 시간여 전 산책을 시작하면서부터 심심찮게 눈에 띄던 흔한 꽃이지만
유난히 짙은 색감에 마음이 끌린다.

닭장 부근에까지 필 정도로 흔하다해서 '닭의장풀'이란 이름을 가진 이 야생화는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江) 유역·사할린·북아메리카 등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며
 봄에 어린 잎을 식용함은 물론 한방에서는 잎을 압척초(鴨衫草)라는 약재로 쓴다.
열을 내리는 효과가 크고 이뇨 작용을 하며 당뇨병에도 쓴다.
생잎의 즙을 화상에 사용하기도 한다.



사위질빵이라는 야생화가 사위에 대한 장모의 사랑이 담긴 꽃인데 반해
이 야생화는 며느리를 미워한 시어미의 심술이 담긴 야생화이다.
'며느리밑씻개'라는 듣기 거북한 이름의 이 야생화에는 다음과 같은 이갸기가 숨어 있다.
치질 예방에 쓰인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함께
화장지가 귀하던 시절에
시어머니(혹은 시아버지라고도함)가 며느리를 미워하여
부드러운 풀잎 대신 가시가 있는 이 풀로
뒤를 닦도록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일명 가시덩굴여뀌라고도 부른다.




오전 11시 17분
시원한 바닷바람을 벗삼아 야생화에 심취해 걷다보니 어느새 멀리
아담한 갯벌을 마을 앞에 펼쳐둔듯한 대초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할 차량이 기다리는 노을전시관으로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방향을 돌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간다.




손바닥만한 작은 방파제와 선착장을 가진 대초마을은
이름없는 한적한 어촌답게 무척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러나 바다 멀리 우뚝솟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멋진 풍경을 망쳐 놓은듯 하다.
우측편인 백수읍 구수리 모래미와 좌측 홍농읍 칠곡리 목맥마을 사이
590m 폭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2.2km 길이의 공사중인 저 다리 이름은 칠산대교이다.




낮 12시 20분
이제 처음 출발했던 노을전시관 부근까지 돌아와 지나온 북쪽 해변을 뒤돌아 본다.
수년 전 부근 구수산 산행을 마친 후 산행날머리로 잡아 처음 찾았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흰 눈이 듬성듬성 남아있던 그 당시 겨울철의 해변 모습 또한 자연미가 넘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언제든 다시 찾아도 좋을만한 멋진 곳임은 분명하다.




낮 12시39분
2시간 반 전 도착했을 때보다 바람이 거세어진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람으로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낸다.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일으키는 흰 포말만으로도 세찬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바닷가.
바람에 헝클어지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바닷가쪽으로 내려가는 저 여인네의 모습이
조금은 허전해 보인다. 그런 허전함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백수해안노을길을 떠난다.




오후 2시6분
지난 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하얗게 핀 메밀꽃에 심취했던 그 느낌을 재현하고파 찾은
전북 고창군 공음면의 학원농장에는 아직 메밀꽃이 활짝 피지 못한 상태이다.
수년 전 세간의 화제작이었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메밀밭 장면이 머리속에 떠올리며
찾았던 이곳 학원농장에서 부드럽고 편안한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메밀밭.
그 때 보았던 하얀 메밀밭과 푸른 가을하늘이 맞닿은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진하게 느낀다.




메밀은 일명 비황작물(備荒作物)이라고도 불리우는 구황작물[救荒作物]의 일종이다.
이들 작물은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걸지 않은 땅에서도 가꿀 수 있어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다.
생육기간이 짧은(70~90일) 조·피·기장·메밀·고구마·감자 등이 이에 속한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께서는 ‘구황벽곡방’을 편찬하여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한 배려에도 힘을 썼다고 한다.




활짝 핀 메밀꽃을 보지 못한 대신 부근 작은 해바라기밭에서 잠시 머문다.

해바라기란 이름은 중국 이름인 향일규(向日葵)를 번역한 것이며, 해를 따라 도는 것으로 오인한 데서 붙여진 것이다.
실제로는 해바라기 꽃들은 거의 동향을 한 채 고정되어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다음 유럽에 알려졌으며 '태양의 꽃' 또는 '황금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해바라기는 페루의 국화(國花)이고 미국 캔자스주(州)의 주화(州花)이다.
영어의 sunflower는 속명 헬리안투스(Helianthus)를 번역한 것이라 한다.




초,중,고 시절 미술 시간의 기억이 조금은 남아 있거나, 정서적으로 황폐한 사람이 아니라면
'해바라기' 에서 쉽게 연상되는 것 중 하나가 1890년 47세로 생을 마감한
네델란드 출신의 화가 Vincent van Gogh(빈센트 반 고흐)를 기억하리라.

고흐가 35세에 완성한 작품 '해바라기'에는 '태양과 생명에 대한 예찬'이 잘 담겨 있다.
해바라기에서 풍기는 강한 색조가 위대한 화가를 '조을중'이라는 정신질환으로 몰아갔다니...




수년 전 메밀꽃이 만개했을 당시 이곳 학원농장에서 활짝 핀 코스모스의 향연도 경험했었건만
그 또한 여의치 않다. 늦더위가 길게 이어진 탓인듯 싶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에서 흔히 접해왔고
서민적인 느낌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코스모스가
멀리 멕시코에서부터 온 세계로 퍼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한방에서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추영(秋英)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눈이 충혈되고 아픈 증세와 종기에 사용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학원농장을 떠나 다음 행선지로 이동한다.




오후 2시 48분
귀가길에 마지막 행선지로 잡은 곳은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에 위치한
'백제불교최초도래지'이다.
정문 쪽이 아닌 북쪽 주차장에서 시작해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
눈 아래로 영광굴비의 본고장인 법성포가 눈에 들어온다.




법성포는 굴비와 연관 짓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굴비의 대명사가 되었다.
명태를 말린 것을 북어라 부르듯 조기를 말린 것을 굴비라 부른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자면 산란을 위해
3월 중순 영광 법성포 칠산 앞바다를 지나는 참조기를 쓴 굴비를 영광굴비라 한다.
고려 17대 인종 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이 정주(지금의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가
해풍에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한다.
그는 말린 조기를 보내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屈) 않겠다(非)'는 의미의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부터 영광굴비는 수라상에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의 북쪽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사면대불 앞에서면
아랫쪽으로 멀리 갯벌이 넓게 펼쳐진다.

지금의 법성포를 백제 시대에는 아무포(阿無浦)라 하였는데
이는 마라난타 스님이 상륙할때에 가슴 앞에 아미타불을 받들어 모시고 왔기로
"아미타"가 전음되어 아무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현재의 법성포(法聖浦)라는 지명은 불법(佛法)이 성(聖)스럽게 전해진 포구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사면대불(大佛)은 화강암으로 조성 되었으며, 높이는 23.7m 이고,
아미타불(東面)을 주존불로 모시고 , 북면(北面)에 관음보살상,
남면(南面)에 대세지보살상, 서면(西面)에 마라난타 존자가
아미타불상을 가슴에 안고 서있는 모습을 조각하엮다.
이 사면대불의 모습은 약식 석굴사원의 독특한 형식을 띄고 있다 한다.




주불전인 부용루는 참배 및 서해 조망용 2층 누각으로
1층의 벽에는 간다라 양식의 불상 조각이 화강암 통돌로 조각된 작품이
31면에 걸쳐 부처님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가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간다라지역 불교를 재현시킨 탑원(塔園)의 모습이다.
서기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 인도의 마라난타 존자가
처음으로 백제에 불교를 전한다.
이 탑원은 간다라 지역 사원 유구(遺構)가운데 가장 잘 남아 있는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본떠서 조성한 탑원으로서,
마라난타 존자의 출신지역인 간다라사원 양식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양식이다.




이곳 백제불교최초도래지를 떠나며 바라보는 법성포에서 칠산바다로 이어지는 갯벌이 은색이었다가,
햇살이 서편으로 기울어지며 점차 황금빛으로 변해 간다.
비록 나 자신 믿는 종교는 없으나 마음 속으로 경건함이 느껴진다.




오후 3시40분
이제 휴일 하루 여정을 끝내고 귀가할 시간이다.
짧은 가을 해는 서쪽으로 점점 기울어가며 옅은 안개 속으로 숨어든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법성포로 향하는 작은 어선이 정겹게 여겨진다.
물빠진 갯벌에는 온갖 바다새들이 먹이 사냥에 여념이 없다.
괭이갈매기 서식지가 가깝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휴일 하루 행복했던 남도 여정을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