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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의 머리에 용의 몸통을 가진 용봉산 산행기

온누리* 2013. 3. 12. 15:42

2013년 3월10일 일요일 오전 10시34분
홍성군 홍북면 상하리 용봉초등학교 앞에서 10여분 임도를 따라 오르면 미륵석불이 나타난다.
민머리에 가늘고 긴 눈, 넓적하고 낮은 코, 비교적 작은 입이 평면적으로 표현되었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머금은 충남지방 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어 있는 미륵불이다.

그 옆 단청이 퇴색한 것인지 애초에 하지 않은 것인지 불분명한 팔작지붕 구조의 대웅전이 외로워 보인다.
서울 구로동에 자리한 원융사라는 사찰을 총본산으로 하는 대한불교 원융종 소속 사찰인 용도사이다.
지난 1977년에 창종된 종파라하니 신흥종파임은 분명한데....
고려 대각국사(大覺國師)의 묘지(墓誌)에 나오는 6학종(六學宗) 중 하나인
원융종(圓融宗)에서 힌트를 얻은듯 여겨진다.




오전 10시44분
산행 들머리인 용봉초등학교 앞에서 바라볼 때는 보잘것 없는 동네 뒷산 정도로 여겨지던 산세가
용도사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화강암,편마암 종류의 큰 암반들이 주를 이루는 바위산의 형태를 점점 보여준다.




오전 10시59분
해발고도 300m 를 넘어선 지점의 큰 바위에 올라 동쪽 아래 홍북면 농촌마을을 내려다본다.
금마천 유역에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평야지대에서는 벼농사와 채소재배가 이루어지고,
소구릉지대에서는 사과·복숭아·배·포도·감 등 과수재배와 가축사육도 활발한 곳이다.




오전 11시11분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에 의례 한 두개씩은 있게 마련인 돌탑.
그러나 산의 크기나 높이에 비해 상당히 큰 돌탑이다. 하지만 이 돌탑에는 이름이 없는듯하다.
전북 남원의 지리산 둘레길 구룡치 부근 작은 돌탑에는 '사무락다무락'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강원도 평창의 대관령에서 능경봉을 거쳐 고루포기산으로 향하다 보면
그곳 작은 돌탑에도 '행운의 돌탑'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음에도..




오전 11시15분
해발고도 350m 인 투석봉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출발 지점인 용봉초등학교에서 1.12km 지나온 지점이니 이제 이곳 용봉산 최고봉까지는 0.23km가 남았다.
북동쪽으로는 최영장군활터로 이어지는 수려한 풍광의 바위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투석봉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곳 용봉산 남쪽에 위치한 해발고도 397m 인
백월산(일명 일월산, 또는 월산)과 사이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오랜 옛적 용봉산과 백월산 사이에 사는 소향이란 아가씨를 차지하기 위해
이곳 용봉산장군과 저쪽 백월산장군 사이에 투석전이 벌어졌다한다.
종내에는 용봉산장군이 지쳐 떨어진고로 조금 전 지나온 돌탑이 생기게 되었고,
이긴 백월산장군은 소향아가씨와 연을 맺었다한다.
현재 백월산 동쪽에 있는 홍주종합경기장과 홍성여고가 위치한 곳의 행정구역 또한
홍성읍 소향리이다.




오전 11시22분
용봉산 최고봉에 올라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잠시 후 지나야 할 악귀봉,노적봉이 보인다.
그 좌측 아래 쪽빛으로 비치는 작은 저수지는 용봉저수지인데,
저 저수지가 있는 곳은 행정구역상 충남 예산군 덕산면 둔리이다.
용봉산은 홍성군과 예산군 2개군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용봉저수지 좌측의 산은 덕숭산이며 그 산자락에는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는 수덕사가 있다.




악귀봉,노적봉 부근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높이 300여m 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1,000m 이상의 험한 바위산에서나 봄직한 풍경이 펼쳐진다.
소설악이니, 소금강이니 하는 말들이 실감이 간다.




정상 표지석 앞에서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인파가 아귀다툼을 벌인다.
용의 몸에 봉황의 머리 모습인지라 용봉산이라 불린다는 산 이름.
그러나 용,봉황 이 모두가 상상속의 동물일 뿐 실체를 본 사람이 없으니 용봉산의 아름다움도 마음 속에 담는 것이 가장 어울릴터..
그래서일까? 용봉산을 이루는 크고 작은 봉우리에는 제각각 이름이 붙어 있으나
이곳에는 이름이 없다. 이정표에도 '최고봉'이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동쪽 방향으로 300m 떨어진 곳에는 큰 암반 위에 자그마한 정자를 세워 놓은 경치 좋은 곳이 있다.
이정표에는 저곳이 '최영장군활터'라고 표기되어 있다.




최영장군활터로 향하는 길.
큰 암반을 이루는 편마암이 오랜기간의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멋진 주상절리를 형성한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 가지들이 바위틈에 뿌리를 박은채 몸부림치는 형상을 연출한다.




최영장군활터라 칭하는 정자 앞 안내간판에는 최영장군이 소년시절 무예를 연마하며 활을 쏘던 곳이라 적혀있다.
그러나,역사적 기록에 의한 것은 아니며 용봉산 동쪽의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서
최영 장군이 태어났다는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더구나 출생지에 대한 다른 의견도 분분하다. 강원도 철원,경기도 개성,충남 서산 등등..
참고로 최영장군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




최영장군활터에서 서쪽 방향인 용봉산 최고봉 쪽으로 바라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다.
마치 너른 평야지대 한 가운데 우뚝 솟아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전남 영암 월출산에서 느꼈던 그런 기이한 느낌으로 다가 온다.




낮 12시41분
최영장군활터를 벗어난 지점의 아늑한 공간에서 동행한 일행들과
조금은 이른 점심과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노적봉과 악귀봉을 바라보며 북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에 다시 들어선다.




이어지는 산행길은 온통 각양각색의 기기묘묘한 바위 사이를 미로처럼 헤집고 지나는 길이다.
멋진 바위에는 이름표도 붙은 곳이 자주 눈에 띈다.
금방 옆으로 쓰러질듯한 촛대바위를 지난다.




이번에는 촛대바위와 이웃한 행운바위 옆을 지난다.
돌을 던지며 소원을 빌고, 던진 돌이 저 위에 안착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행운이 찾아온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행운바위 너머로 최근 대전에서 이전한 충남도청 건물이 보인다.
저 너른 평야지대를 '내포평야'라 불러왔다.
내포평야란 홍성군,예산군,청양군,당진군등을 포함하는 드넓은 곡창지대를 이름이다.




내포 땅은 예부터 논농사와 밭농사, 과일(예산 사과 등)이 잘 될뿐 아니라
안면도와 천수만의 조기 잡이,소금 그리고 간월도의 조개,굴등..
품질 좋은 농산물과 풍부한 해산물들을 고루 얻을 수 있는 풍요롭고 인심 넉넉하며 후덕한 마을이었다.




이번에는 물개바위 옆을 지난다.
물개의 목덜미에 해당하는 곳으로 말 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곳에 앉아 인증샷을 찍는 이들이
거의 예외없이 눈에 띄는 곳이다.




큰 암반 사이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걷는 재미도 느낀다.
드넓은 내포평야를 가진 이런 후덕한 마을에서 자라고,
 용봉산의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보며 호연지기를 키운 이곳 젊은이들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역사상 이 지방 출신 인물들의 면면에서도 잘 나타난다.

장군 최 영,사육신 성삼문,추사 김정희,신부 김대건,장군 김좌진,스님 한용운,의사 윤봉길,
토정 이지함,화백 이응노,  홍주 916 여명 의사, 등등




이곳 용봉산을 처음 찾는 이들은 최고봉의 높이가 해발 381m 라는 것 만으로
코웃음치고 아무 기대없이 찾았다가 일순 주변 경치에 매료되고 만다.
작은 바위에 올라 주변경관을 사진으로 담는 저 산행객의 진지한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




마치 솜씨좋은 석수쟁이가 공들여 만든듯한 이 바위는 삽살개바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아무리 눈을 굴려도 삽살개가 연상되지 않는다.

진돗개•풍산개•동경개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토종개 중 하나로 천연기념물 제 368호인
털복숭이 삽살개의 모습을 연상하지 못한 나는 이 부분에서 소설을 쓴다.
'악귀봉' 아래에 있는 바위이니 옛부터 귀신 쫓는 개로 알려진 삽살개를 연상한게 아닐까?
'삼살개'라는 단어를 풀어 보면
'삽'(없앤다 또는 쫓는다) '살'(귀신, 액운)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후 1시39분
온통 기묘한 바위로 이루어진 암릉 구간을 따라 북향하던 바위능선은 이제 방향을 남으로 향한다.
이제 하산길로 들어서면 멋진 바위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며 멋진 경관을 최대한 마음속으로 담아두려 애쓴다.




용바위라는 안내 간판이 붙은 바위 앞을 지난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에 대해 바위가 용을 닮았느니, 그렇지 않으니 하는 불평은 않기로 한다.
어차피 실물을 누구도 본 일이 없으니 괜히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처음 작명한 조상들로부터 "요즘 젊은 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어디서 말 대꾸냐?" 핀잔 듣기 싫어서.




흔히 산에 자주 다녀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 용봉산 해발 381m 표지석 앞에서 사진찍은 사람을 보고
자신의 덕유산 향적봉 해발 1614m 표지석 사진을 들이대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눈 쌓인 멋진 사진을 뽐내며..
그러나, 향적봉에도 수차례 올라 본 본인에게 묻는다면 이곳 용봉산 오르기가 더 힘들다.
덕유산 향적봉에 오른 이들은 대부분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이용하여 해발 1,520m인 설천봉까지 올라간다.




오후 2시8분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반 여가 지났다.
이제 산행 날머리인 용봉산자연휴양림 주차장으로 내려갈 시간이 가까웠다.
몸통은 용의 형상이고
머리는 봉황 처럼 생겼다 하여 용봉산인 이곳.
머리부분인 홍성군 홍북면 용봉 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몸통을 걸처 꼬리로 (약6km)내려가게 된다.
꼬리 부분은 대략 예산군 삽교읍쯤 될 것 같다.




오후 2시16분
병풍바위라는 입간판이 있는 거대한 암반 위에 올라서 보지만 어디에도 병풍 그림을 찾을 수 없다.
남동쪽 끝은 바위절벽이다.
지금 오른 곳이 병풍바위 윗부분이니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아랫쪽 용봉사에서 보아야 병풍을 볼 수 있을뿐.
절벽 끝부분의 이 바위 이름은 '의자바위'.
많은 산행객들은 이곳에 앉아 기념 사진을 한 장씩 찍곤한다.




참고로 이 사진은 병풍바위 남동쪽 아래에 위치한 용봉사 경내에서 찍은 사진이다.
동행한 일행들과 함께 움직이다보니 지난 2008년 12월27일 이곳 용봉산 산행시 찍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대웅전 뒷편으로 보이는 바위가 병풍바위이다.

용봉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고찰로 전해져 온다.
조선 후기까지는 수덕사에 버금가는 큰 절이었으나 1906년 풍양조(趙)씨 가문에서 절을 부수고
명당자리라는 절터에 공조참판을 지낸 조희순(趙羲純)의 묘를 썼다.
이 때 마을 주민들이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겼다.
1980년에 법당을 중수하고, 1982년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1998년에 산신각과 극락전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실제로 대웅전 윗편 남향 양지바른 곳에 지금은 절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무덤과 비석이 있다.
권력의 힘으로 대 사찰을 옮길 정도의 세도를 부린 그 후손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는 현재의 무덤 모습을 보면 명약관화하리라..




용봉사 뒷편 언덕에 있는 보물 355호 마애석불 사진으로 이 사진 역시 2008년 12월27일에 찍은 것이다.

불상은 높이 4m, 폭 1.4m 내외인 자연암석의 탄탄한 앞면을 파서 부조(浮彫)한 여래입상인데
정남향을 하였으며 정면이 앞으로 10° 가량 기울어 있다.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있고 보안(寶顔)은 풍만한 편으로 이마에는 백호(白毫)자리가 있다.
가는 눈과 미소지은 입, 어깨까지 길게 내려온 귀가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다.
얼굴에 비하여 하체로 내려갈수록 신체와 선이 약화되어 있으며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쭉 펴서 다리에 붙이고 왼손은 굽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오후 2시18분
병풍바위를 떠나 숲이 울창한 하산길로 들러서며 마지막으로 내포평야를 내려다본다.
4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던 드넓은 논밭이 무참히 망가진채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다.
대전에서 옮겨온 충청남도 도청청사 와 그 옆의 성냥곽같은 고층아파트의 흉물스런 모습이
아름다운 우리 금수강산의 경관을 해치고 있다.
과연 저 넓은 곡창지대 한 가운데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워야만 했을까?




드넓은 곡창지대를 훼손시켜가며 겉모습만 번드레하게 지어 놓은 충남도청 건물을 바라보니
화가 치밀어 오르며 구역질이 난다. 저렇게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도 되는 것인가?

지난 2011년도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인 51.9%에 한참 못 미치는 충청남도 형편에...
더구나 2008년 37.8%에서 매년 재정자립도가 낮아지는 추세임에도.....
이럴 때는 큰 소리로 쌍욕을 한바탕 내뱉고 싶어진다.




오후 3시
4시간이 좀 넘게 걸린 여유있는 산행을 끝낸 후 도착한 용봉산자연휴양림 주차장.
어제 낮에는 기온이 20도를 훌쩍 넘겨 더위까지 느꼈었는데
불과 하루 사이에 찬바람이 피부를 찌른다.
가까운 거리의 짧은 산행인지라 용봉산을 떠나 가까운 바닷가로 이동한다.




매년 11월말에서 12월 초 사이에 석굴축제가 열리는 충남 보령시 천북항에서
석굴 찜과 칼국수로 추위와 허기를 달랜 후 바닷가에서 늦은 오후의 바다 풍경을 즐긴다.
마음 같아서는 일몰시각까지 기다려 멋진 일몰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으나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귀가를 서두르는 일행들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어
다음을 기약하며 행복했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참고로 이 사진은 지난 2008년 12월27일 오후 5시19분
천북항에서 맞았던 일몰시 풍경이다.
그날도 일몰 무렵 수평선에 짙게 드리운 해무로 인해 조금 아쉬었던 풍경이었다.




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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