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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의 단풍나무 군락지 내장산 산행기
온누리*
2012. 11. 4. 20:50
국내 최대의 단풍나무 군락지인 내장사를 말발굽 형태로 둘러 싼 내장산 산행을 위해
내장산 남쪽 자락인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대가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대가저수지'가 자리한 이곳 봉덕리는 300여년 전 안동 권씨가 이사 오면서
덕을 입어 번영하라는 의미에서 '덕흥(德興)'이라는 이름을 지었으나,
그 후 1910년대에 인근 '대가(大佳)'와 병합하면서 법정리 명칭이 '봉덕리'로 바뀐 곳이다.
'대가(大佳)'의 의미는 아주 아름다움을 뜻하는 듯 하다.
신선봉까지 거리는 1.8km. 한동안 급경사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2주 전 강원도 오대산에서 절정의 단풍을 접한바 있는데 반해
따뜻한 남쪽 지방인 이곳은 이제 본격적으로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국토가 좁다고들 하지만 6척 남짓한 내 한 몸이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넓은 내 조국 강산이다.
해발고도 550m 지점에는 비교적 큰 비석까지 세워진 퇴락한 묘소가 하나 있다.
남쪽에서 비치는 따뜻한 햇살을 그대로 받는 곳.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백암산 상왕봉 아래 자리 한 대가마을과 마을의 젓줄인 대가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이런 무덤 자리를 두고 옛 어른들이 '명당자리'라 일컬었던 모양이다.
울창한 오루막 숲길을 따라 오르느라 조금은 더위를 느끼기까지 했으나
바위가 많은 산길의 특성상 큰 나무가 거의 없는 산길은 시원한 바람과함께
멋진 조망의 즐거움을 안겨 준다.
고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땀을 흘리며 산에 올라야만 접할 수 있는
멋진 경관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눈이 부시게 파란 물빛을 가진 대가저수지를 둘러싼 백암산 능선의 부드러움이 눈 앞에 다가온다.
매년 이맘 때 저 앞에 보이는 백암산을 찾아 상왕봉,백학봉을 거쳐
백양사 애기단풍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느꼈지만, 오늘은 그 북쪽의 내장산을 오르는 길이다.
해발고도 700m를 넘긴 지점에서 내장산 최고봉인 신선봉으로 향하는 암반구간을 지난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답게 파란 하늘을 바라다보며 다리에 전해 오는 피로감을 잊어 본다.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산 줄기를 따라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아름답다.
멀리 옅은 안개에 싸인 광주 무등산 봉우리도 눈에 들어 온다.
추파(秋波)의 진수를 보여 준다.
우리는 흔히 추파라는 단어를 소설책에서 처음 접한다.
'추파'라는 단어는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은근히 보내는 눈길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가을 호수에 잔잔한 바람이 불어와 호수 표면에 생기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이 추파고,
그 물결을 닮은 맑고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이 추파다.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마련된 내장산 최고봉인 해발 763m 신선봉에서 이른 점심과 휴식을 마친 후
신선봉 정상석 앞에서 북쪽을 조망한 후 신선봉을 떠나 하산 길에 나선다.
이곳 신선봉은 봉우리가 높아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인지라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노닐만한 곳이라 하여 신선봉(神仙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해발고도 624m 서래봉이 눈 앞에 가까이 펼쳐진다. 그 아래 작은 사찰은 내장사 부속 암자인 백련암이다.
서역(西域)에서 온 달마대사가 내장산에서 입산수도하였다는 전설로 인해
‘서래봉(西來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저 봉우리는
농기구의 하나인 써레를 닮았다 하여 "써래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신선봉을 지나며 동쪽으로 이어지는 하산 길은 신선봉 바로 아래에 신선들이 두고 갔다는
너럭바위인 금선대(金仙台)를 지나며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 길을 거쳐 쉼터가 마련된
신선약수기점에서 잠시 멈춘다. 해발고도 610m 정도 되는 지점이다.
당초 계획은 이곳 신선약수기점에서 동쪽으로 0.7km 떨어진 해발675m 연자봉을 거쳐
내장사로 하산하려 했으나 주말을 맞은 엄청난 관광객들이 내장사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른 후
연자봉을 들렀다 가는 연유로 혼잡을 피하기 위해 북쪽으로 이어지는 금선계곡으로 향하는 하산길을 택한다.
내장산은 원래 본사 영은사(本寺 靈隱寺)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이라고 불리었으나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하여 내장(內藏)산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지명도 내장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북쪽 방향으로 이어지던 급경사 내리막길이 끝나고 금선계곡과 만나며
계곡가를 따르는 편안한 산책길이 나타난다. 해발고도 270m 정도인 이 지점부터 이어지는 길은 동쪽 방향이다.
가을에 접어들며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때문인지 계곡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가늘고 약하다.
이끼로 뒤덮인 바위틈을 따라 비단결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소복히 쌓인 낙엽이 뒤덮고 있다.
내장산 최고봉인 신선봉에서 1.8km 떨어진 지점에서부터는 이와같은
일반 관광객들을 위한 안전시설물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이제 내장사까지는 1km 남짓 남은 거리. 원색으로 물들어 가는 편안한 숲길이다.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는 웬지 더욱 싱싱해 보인다.
마치 방금 깨끗한 물로 세수를 마친 새색씨의 얼굴 마냥 나뭇잎 하나하나가 싱그럽게 느껴진다.
내장사 경내로 들어선다.
북쪽에 자리한 서래봉이 한겨울의 삭풍을 막아주는 아늑한 곳에 내장사는 자리하고 있다.
멋진 암반으로 이루어진 서래봉의 모습이 이곳에서 바라보니 농기구의 일종인 써레와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다.
수많은 탐방객들은 이곳에서 큰 실망감을 안고 돌아선다.
내장사의 주불전인 대웅전이 지난 10월31일 새벽 화재로 전소되었기 때문이다.
화재 현장을 가린 천막에는 "화마를 지켜내지 못한 내장사 대중은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합니다." 라고 씌어 있지만 한 마디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다.
국가 중요문화재에 오르지 못했고, 내부의 탱화 등도 중요 문화재는 아니라고 하지만
안타까운 일임은 분명하다.
언짢은 마음을 삼층석탑과 그 앞의 극락전 뒤로 보이는 서래봉의 멋진 경관으로 달래며
서둘러 대웅전 앞을 벗어난다.
정혜원과 천왕문 사이에 서 있는 이곳 내장사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나무가 그 자태를 뽐낸다.
수많은 탐방객들이 눌러대는 카메라 셧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 모습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야단법석"이 가장 잘 어울린다.
국어사전을 찾아 보면
"야단법석(惹端法席) :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서로 다투고 떠들고 하는 시끄러운 판." 이라 나온다.
법석(法席)은 원래 불교용어로 '법회석중(法會席中)'이 줄어서 된 말이다.
대사(大師)의 설법(說法)을 듣는 법회(法會)에 회중(會衆)이 둘러 앉아서
불경을 읽는 법연(法筵)을 일컫는 말로서 매우 엄숙한 자리를 뜻하던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엄숙한 자리에서 무슨 괴이한 일의 단서(端緖)가 야기(惹起)되어
매우 소란한 형국이 되었다는 의미로 '야단법석'이 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한다.
이 단어는 《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고,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다.
즉,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영취산(靈鷲山:우리나라 영취산이 아닌 고대 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사성 동북쪽에 있는 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로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게 된다.
이처럼 경황이 없고 시끌벅적한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던 말이 일반화되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다.
천왕문을 나서 인적이 조금은 뜸한 정읍천 천변 가까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내장사를 뒤로 한다.
내장사 서쪽으로 작은 봉우리 두개가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나무와 잘 어울린다.
저 작은 봉우리에는 각각 영취봉과 영현봉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사찰로 들어서는 첫번 째 문인 일주문(一柱門)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식물의 종류가 달라도 안토시안은 크리산테민 1종뿐이다.
식물의 종류마다 단풍 빛깔이 다른 것은 이 홍색소와 공존하고 있는
엽록소나 황색·갈색의 색소 성분이 양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인지라 수많은 탐방객으로 붐비는 것은 물론
일주문에서 주차장까지 이르는 거리가 무척 멀다.
일주문에서 제2주차장까지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탐방객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나와 같은 산행객들은 대부분 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쪽을 선호한다.
오늘 3시간 반 정도 걸은 현재 시점에서는 걸어 온 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멋진 자연 속을 편안한 마음으로 걷는다.
내장사 남쪽에 위치한 전망대로 향하는 케이블카 탑승장 부근에 있는 작은 연못을 지난다.
연못 위의 육각 모임지붕구조인 정자의 이름은 우화정이다.
이곳 내장사를 찾는 엄청난 인파에 비해 연못 가운데 자리한 우화정을 찾는 탐방객은 극소수다.
콘크리트 구조의 육각 정자. 누군가 저곳을 이곳 내장사 최고의 경치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천년 고찰이라는 내장사의 분위기와 붉게 물든 단풍과는 너무나 부조화스럽다.
내 눈에는 싸구려 구축물로만 보인다. 저 콘크리트 구축물이 없었다면
붉은 단풍잎이 비치는 연못의 경치가 더 자연스럽고 마음을 편히 해 주었을듯 싶다.
승군과 왜적이 격렬한 전투를 벌인 장소로 전해오는 곳이다.
역사성이 깃든 저 장소를 케이블카와 싸구려 콘크리트 정자가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내장사 일주문 밖이니 내장사 경내는 아니라 할지라도
엄청난 관광객들로 부터 징수하는 1인당 3천원의 문화재 관람료는 다 어디에 쓰는지 묻고 싶다.
돈이 너무 많이 남아 돌아 눈이 멀고, 그 정신상태가 대웅전 화재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기만 바랄 뿐이다.
마치 붉은 양탄자를 밟고 지나는듯 하다.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밟으며 입장하는 톱스타들의 기분이 지금 이 느낌일까?
불과 10여미터 떨어진 내장사로 이어지는 2차선 차도에는 수많은 탐방객들이 북적인다.
뭐가 그리 급한지 그저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떠밀려 다닐 뿐이다.
기왕에 시간과 돈을 들여 관광을 왔으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단풍을 즐김이 어떠할까?
붉게 물든 단풍나무 사이로 이곳 내장사 입구에서 남쪽 백양사로 이어지는 49번지방도가 지나는
추령 고개가 눈에 들어 온다.
내장산 9개 봉우리 중 남동쪽에 위치한 장군봉을 거치는 내장산 산행객들이
산행 들머리로 주로 이용하는 곳이 저곳이다.
지난해 이맘 때 백양사로 향하던 중 저곳에서 이곳을 내려다 보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1인당 3천원씩의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매표소에서 마치 돈을 갈퀴로 긁어 모으는듯한 모습에
무척 심기가 불편해진 내 눈에 비치는 매표소를 벗어난 직후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이다.
이건 뭐 지방 소도시의 버스터미널 부근 풍경과 진배없다.
이 모습이 과연 천년 고찰임을 자랑하는 내장사 입구이며, 국립공원 입구의 모습이란 말인가?
싸구려 유흥가로 보일 뿐이다.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공무원들과 부처님을 믿는 승려들이
똑바로 박힌 눈이 있다면, 이런 몰꼴들을 보고도 아무 느낌이 없을까 의문이다.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은 무척 멀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연을 즐기며 걷는다.
제2주차장 부근 정읍천 변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구 정화를 시도한다.
흔히들 붉은색 단풍과 노란색 단풍의 다른 색깔에 대해 무심코 넘기지만
은행잎으로 대표되는 노란색 단풍은 붉은색 단풍과 그 생성 기전이 완전히 다르다.
붉은색은 화학작용에 의해 붉은 색이 생성되지만
노란 잎은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속하는 크산토필류 중 주로 제아크산틴·비올라크산틴 등에 의한 것인데,
이들은 이미 초봄 새싹 때 잎에서 만들어지고 여름에는 엽록소의 녹색에 가렸다가
늦가을이 되어 엽록소의 분해로 다시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내장사 일주문에서부터 걸어서 50분이나 걸리는 제3주차장에도
엄청난 차량 홍수로 인해 진입하지 못한 귀가 차량은
3주차장에서 도보로 20여분 이상 떨어진 제4주차장에 머물고 있었다.
제4주차장 한켠에서 기울어가는 가을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 군락을 바라보며
깊어가는 가을날 주말의 내장산 산행을 마치고 귀가 길에 오른다.
총 소요시간은 5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