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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꽃으로 노랗게 물든 원적산
온누리*
2012. 4. 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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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산수유꽃축제가 열리는 경기도 이천 백사마을에 도착하여 축제장 중심부로 들어선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사찰인 영축사 앞의 산수유가 따뜻한 봄 햇살을 받아 탐스럽게 빛난다.
혼잡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찾은 덕분에 저들은 비교적 여유롭게 축제를 즐긴다.
모이를 찾는 참새만이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곳에는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때 난을 피해 낙향을 한 남당 엄용순이 건립했다는 「육괴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육괴정」이란 이름은 당대의 선비였던 모재 김안국, 강은, 오경, 임내신, 성담령, 남당 엄용순 등 여섯 사람이
연못 주변에 각자 한그루씩 여섯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사진의 이 한옥이 육괴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때부터 심기 시작한 산수유 나무가 현재의 이곳 백사면 도립1리를 비롯하여
서쪽의 경사1.2리, 동쪽의 송말1.2리 등 5개 마을에 대단위의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선비들이 심기 시작했다는 유래로부터 선비꽃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한다.
산수유 나무 그늘에는 많은 화가들이 그림에 몰두 중이다.
이 분은 현재 앞에 보이는 낡은 폐가옥 주위의 산수유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스케치가 거의 완성된듯 싶은데 오후에 채색된 후의 완성된 그림이 보고 싶어진다.
아마도 내가 그동안 살면서 큰 죄를 짓지 않아서 하늘이 복을 주시는게 아닌가 싶어진다.
파란 하늘 아래로 보이는 산수유 꽃의 노란 색깔이 선명하다.
전형적인 육산답게 부드러운 능선을 이룬다. 따뜻한 어머니 품속 같이 여겨진다.
이곳 경기도 이천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이유를 마을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높은 지대로 올라와 보니 알 것 같다.
겨울 북풍을 막아주는 언덕에 파묻힌듯 자리한 마을의 평화로운 정경이다.
인파로 북적이는 축제장 중심을 벗어나 높은 곳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니 인적이 끊긴다.
한국, 중국이 원산지인 산수유나무는 특히 토심이 깊고 비옥한 곳에서 잘 성장하고
햇볕을 좋아하나 음지에서도 개화 결실하며
각종 공해에는 약한 편이나 내한성이 강하고 이식력이 좋다.
20명이 채 안되는 우리 일행들은 이제 인적이 거의 끊어진 임도를 따라
오르막 산길을 여유있게 걸어 올라간다.
우리 나라 산수유(열매) 생산량의 60%가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생산되며
또한 구례 지방 생산량의 85%는 지리산 만복대 기슭에 자리잡은 산동면에서 생산된다 한다.
이곳 경기도 이천군에서는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30% 정도를 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 '문정희'님이 "은빛 머리 부드러운 고승들" 이라 노래한 버들강아지인듯 싶다.
백과사전을 뒤져보면 암수 딴그루인 '갯버들'이라 나온다.
가까이 살펴보면 무척 예쁘고 탐스럽다.
해발고도가 이제 300m에 가까워 졌다.
산수유 나무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대신 소나무 숲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피톤치드를 듬뿍 머금은 진한 솔 향내를 코 끝으로 음미하며 걷는 행복하고 편안한 산길이다.
산수유 나무 몇그루가 노란 꽃망을 밝게 떠뜨린 채 미소짓는 아늑한 공터가 나온다.
지난 가을 내려 앉은 낙엽이 겨울 눈속에서 월동한 채 깨끗한 방석이 되어 우리 일행을 반긴다.
일행 중 몇몇이 어제 저녁의 과음 등등을 핑계로 게으름을 피운다.
아마도 노란 산수유 꽃의 유혹으로 나름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른 점심식사판이 벌어진다.
10월 중순의 상강(霜降) 이후 서리가 내린 다음에 수확하는데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여 육질은 술과 차 및 한약의 재료로 사용한다.
씨에는 렉틴(Lectins)이 들어 있어 인체에 유해하므로 반드시 씨를 제거토록 해야 한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과 함께 비교적 일반에게 잘 알려진 한약 중 하나인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에 산수유를 비롯한 여섯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산행 중의 점심시간으로는 지나치게 긴 1시간 가까이 식사 및 휴식을 취한 후
일행 중 10명이 채 못되는 소수의 인원만이 산행을 위해 다시 산길을 오른다.
해발고도 300가 넘는 곳이어서인지 간혹 눈에 띄는 산수유 나무에도 아직 꽃이 만개하지 않은 상태이다.
조금 전 뱃속에 음식을 넣은 후 약초꾼들이나 지나다녔음직한 덤불 우거진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숨이 턱에 차 오르는 것을 이기며 계속 오른다.
20여분에 걸쳐 땀을 흘리며 오르막을 오르자 해발고도 500m에 가까운 능선에 발이 닿는다.
깊은 숨을 몰아 쉬며 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아직 채 봉오리도 맺히지 않은
키 작은 진달래 군락 사이로 멀리 원적산 정상부가 눈에 들어 온다.
땀 흘리며 힘들여 오른 후의 성취감과 행복감이 느껴진다.
좌측 원적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헐벗은 채로 우측으로 길게 이어진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능선을 따라 눈길을 이어가면 중앙부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그곳이 이곳 원적산 최고봉인 천덕봉이다.
해발 564m 원적산 정상에 도착해 시원한 산 바람과 맞닥뜨린다.
뒷쪽으로 멀리 능선 끝에 자리한 높은 봉우리는 해발 634.5m인 천덕봉이다.
그러나 이정표에는 원적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에 "원적산(圓寂山)"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일명 무적산(無寂山)으로 불리기도 했던 원적산(圓寂山)은
대부분의 고지도에서는 원적산(元寂山)이라 표기하고 있다고 한다.
천덕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나무나 풀이 거의 없는 말 그대로 민둥산이다.
아마도 남쪽 아래 쪽 장동리에 위치한 군부대의 포사격 훈련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이래저래 전쟁은 우리의 삶에 큰 피해를 끼친다.
우측으로 이천시 백사면이 펼쳐진다.
인구밀도 조밀한 경기도 농촌답게 인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같은 차를 타고 온 일행들과의 시간 약속 때문에 1km 조금 더 떨어진 천덕봉에 다녀오지 못하고
하산 준비를 한다. 망원렌즈로 천덕봉 주위를 살펴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성지 항목에서는 산 정상에 고려 공민왕 때 축조했다는
'원적산고성(圓寂山古城)'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면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던 축성의 흔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 산의 북동쪽에 있는 이천시 관내 최고봉인 저곳 천덕봉(634m)을 공민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후 지리지나 고지도에서는 이 성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
비교적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1km이상 내려오니 산길이 끝나고 축제장이 가까워진다.
3시간여 만에 다시 노란 산수유꽃 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보다 먼저 개화하는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은
시원한 느낌을 주는 수형과 아름다운 열매로 조경수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
20~30개의 작은 꽃들이 뭉쳐 퍼지며 핀다.
그로 인해 비록 트레킹 수준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피로가 조금은 회복되는것 같다.
노란색을 주로하는 원색의 물감이 빛을 발한다.
이곳 산수유 축제장을 찾은 수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
하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 일의 종류를 막론하고 아름답다.
나 자신도 남들에게 저처럼 아름답게 보일 수 있을까? 성찰의 시간을 잠시 가져 본다.
제대로 봄나들이 한 번 하지 못했던 우리네 서민들은 오늘 이곳을 찾아 행복을 만끽한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월요일인 내일부터 새로운 일주일간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원기를 충전해줄 수 있으리라.
산수유꽃길을 여유있게 걸어본다.
머릿 속으로는 곽재구 시인의 "산수유 꽃 필 무렵"이라는 싯귀를 다시 떠올리며..
--산수유 꽃 필 무렵--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 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 리
활짝 핀 산수유 꽃을 가까이 살펴보며 휴일 하루 행복했던 일정을 마감한다.
머릿속으로 산수류를 이용한 건강식품 광고문구를 떠올리며 속으로 웃음짓는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정말 좋은데... "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을 먹더라도 지나침은 금물이 아닐까?
적당히 골고루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함이 건강에는 가장 좋은 것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