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주능선의 북쪽 자락에서 북쪽으로 길게 흘러 내리는 뱀사골 탐방을 위해
뱀사골 야영장 입구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 남쪽 방향으로 첫 걸음을 내딛는다.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뒤덮인 가운데 간간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비치는 날씨.
다행스럽게도 오후 늦은 시간에 소나기 예보만 있는지라 안심하고 계곡으로 들어선다.
이곳의 행정구역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이다.
주차장이 있는 반선마을에서 천연기념물인 천년송이 있는 와운마을까지 3km 거리를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계곡 우측을 따르는 탐방로를 이용한다.
같은 버스로 동행한 일행 30여명도 이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계곡 좌측을 따르는 산길로 접어든다. 오후에 돌아올 때는 대부분의 탐방객들이 이용하는
계곡 우측 길을 이용하기로 하고...
지금 내가 접어드는 이 길은 지름길이므로 아마도 와운마을까지 소요되는 1시간을
절반으로 단축시킬수 있을게다.
지리산 주능선상의 해발 1,732m 반야봉과 해발 1,534m 토끼봉 사이에서 시작되어
반선마을까지 9km 이상을 이어지는 뱀사골 계곡은 규모면에서 우리나라 최대 규모 계곡 중 하나이다.
"한국지명요람"에는 '돌돌골이'라고도 하며, 물이 뱀처럼 곡류해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하였다.
그 밖에도 지명의 유래에 대해 근처에 있었던 배암사라는 사찰에서 유래했다는 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죽었다는 전설에서 '뱀사골'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 등이 전해진다.
짙은 풀 내음이 코 끝으로 전해진다.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워낙 인적이 드문 숲속이어서 사람이 그리운 때문일까?
웬만한 숲속에서는 사람의 인기척만 느껴도 꽁무니를 빼는 다람쥐가 미동도 않는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행여나 다람쥐가 놀래 달아날까봐.
해발고도 500 여m 지점에서 출발해 20여분 이상 오르막 숲길을 오르느라 온 몸에 땀이 흐른다.
해발고도 700m 를 훌쩍 넘긴 지점에서 멋진 자태의 고목나무 너머로
뭉게 구름이 피어나는 파란 하늘이 나타난다.
가을이 머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찌는듯한 무더위도 이제 서서히 물러가려나보다.
숲길을 벗어나 와운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들어선다.
와운마을의 천년송을 보기 위한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구간이다.
먼저 출발해 3km 거리의 계곡 우측길을 따라 이동중인 30여명의 일행들은 아직 600m 이상 떨어진
와운마을 입구 삼거리까지도 채 못왔을듯하다.
이와같은 나무 계단길을 한참 올라야한다.
등산 경험이 많지 않은 일반 관광객들이 무척 힘겨워 하는 구간이다.
이 소나무는 두 그루 중 아래의 것으로 할머니 소나무이다.
이 할머니 소나무의 높이는 20m, 가슴높이의 둘레는 4.3m이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18m에 달한다고 한다.
아래쪽 할머니소나무에 비해서는 조금 왜소해 보이지만 그런대로 멋진 형상이다.
할아버지 소나무 뒷편 편안한 쉼터에 앉아 땀을 식히며 아래쪽 할머니 소나무를 바라본다.
와운마을 뒷산에서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해 왔다고 알려진 이 소나무들은
지난 2000년 10월 천연기념물 제 424호로 지정된바 있는데,
20m의 간격을 두고 한아시(할아버지)송과 할매(할머니)송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중 더 크고 오래된 할매송을 마을주민들은[천년송]이라 불러오며 당산제를 지내왔다 한다.
매년 설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당산제의 제관으로 선발된 사람은
섣달 그믐날부터 외부 출입을 삼가고 뒷산 너머의 계곡(일명 산지쏘)에서 목욕재개 하고
옷 3벌을 마련, 각별히 근신을 한다고 한다.
부르는 이름은 천년송이지만 실제 저 나무의 수령은 500년 정도라고 하며,
소나무 품종 중 하나인 반송(盤松)' 종류라고 하는데,
'반송'은 줄기 밑부분에서 많은 줄기가 갈라져 우산모양으로 자라며, 잔뿌리가 많은 종이라 한다.
해발고도 800m 정도인 마을 이름은 '와운(臥雲)마을'이다.
구름도 누워서 지난다는 뜻인데 눈 앞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름 그대로인듯 싶다.
늦게 도착한 일행들과 합류하여 점심 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
너무나 긴 시간 휴식을 취하는 일행들을 남겨두고
나 홀로 먼저 천년송을 뒤로하고 뱀사골 계곡 탐방을 위해 자리를 뜬다.
동행한 일행들 중 뱀사골 계곡 상류쪽으로 탐방을 이어갈 사람을 기다리며 30분을 지체한 후
홀로 상류쪽으로 탐방을 계속하기 위해 와운마을을 떠나던 중 반가운 야생화를 만난다.
이 야생화의 이름은 '사위질빵'이다.
잎을 말렸다가 끓여서 차로 마시기도 하는데 여위차라 하여 신경통 관절염에 좋다고 한다.
그러나 사위질빵에는 독성이 함유되어 있어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 다루어야 한다.
'사위질빵'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게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사위질빵은 백근초라는 이름이 따로 있지만 덩굴식물인 칡이나 인동덩굴,
댕댕이덩굴처럼 질기지 못하고 쉽게 끊어져 버리는 특성이 있는데,
예전에는 가을걷이 때가 되면 사위가 처가에 가서 일을 도와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사위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미안한 장모는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주려고
줄기가 연약하여 잘 끊어지는 사위질빵으로 지게멜빵을 만들어주었다고 하니
사위에 대한 장모의 사랑이 담긴 꽃이다.
사위질빵이라는 야생화가 사위에 대한 장모의 사랑이 담긴 꽃인데 반해
이 야생화는 며느리를 미워한 시어미의 심술이 담긴 야생화이다.
'며느리밑씻개'라는 듣기 거북한 이름의 이 야생화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치질 예방에 쓰인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함께
화장지가 귀하던 시절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여
부드러운 풀잎 대신 가시가 있는 이 풀로
뒤를 닦도록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일명 가시덩굴여뀌라고도 부른다.
와운마을 입구 삼거리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운마을의 천년송을 본 후 저 다리를 건너
2.1km 떨어진 반선마을 주차장으로 되돌아간다.
나무 계단을 오르며 뱀사골 상류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곳에서 지리산 주능선상의 삼도봉과 토끼봉 사이의 고개인 해발 1,315m 화개재까지 거리는
7.1km이다.
수년 전 가을 지리산 성삼재에서 출발해 노고단,화개재를 거쳐
오전에 출발한 반선마을까지 장장 19km 거리를 7시간 남짓 걸어 본 경험이 있는 길인지라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출입금지 구역인 물가에 단체 산행객들이 모여 앉아 음식을 먹느라
맑고 깨끗한 계곡을 오염시키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나오라고 소리쳐도 잘 듣지않는다.
몰지각한 탐방객들로 인해 오염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 꽃의 이름은 "산수국".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타이완 등지에 분포하는 이 꽃은 요즈음은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가장자리에 핀 희고 예쁜 꽃은 중성화로 씨를 맺지 못하며 벌,나비를 유혹하는 일을 하고,
중앙부의 양성화가 열매를 맺는 특이한 꽃이다.
이런 류의 꽃 중 잘 알려진 꽃에는 백당나무 꽃도 있다.
닭장 부근에까지 필 정도로 흔하다해서 '닭의장풀'이란 이름을 가진 이 야생화는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江) 유역·사할린·북아메리카 등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며
봄에 어린 잎을 식용함은 물론 한방에서는 잎을 압척초(鴨衫草)라는 약재로 쓴다.
열을 내리는 효과가 크고 이뇨 작용을 하며 당뇨병에도 쓴다.
생잎의 즙을 화상에 사용하기도 한다.
유난히 숲이 울창하고 땅이 비옥한 지리산의 명성에 걸맞게 산행로에까지
나무 뿌리가 머금었던 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물이 풍부한 이곳 뱀사골 계곡이다.
'탁용소'라는 안내판이 세워진 곳.
바위를 타고 흘러 떨어지는 물소리가 울창하게 들리는 곳이다.
부근의 나뭇잎들은 바위에 튀어 흩어지는 물방울을 듬뿍 맞아 촉촉히 젖은 모습이다.
이때 100m나 되는 긴 자국이 생겨났는데,
그 흔적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습 같다 하여 탁용소(濯龍沼)라 불린다고 한다.
삼각대를 휴대하지 않아 제대로된 장노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아쉬운대로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여 1/10 초의 노출로 물 흐름을 표현해 본다.
귓전을 울린다.
한동안 자연의 소리에 심취해 걸음을 멈추고 무아지경에 빠진다.
한편으로는 바라보다보니 오르막 길을 오르느라 흘린 땀방울이 금방 식어버린다.
느린 셧터 스피드로 사진을 찍으면 비단결같이 보이는 저 물줄기도
오랜 시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엔 돌에 구멍을 뚫는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 했던가?
'금포교'라는 이름의 아치형 나무다리를 건너간다.
다리 아래 물빛이 너무나 아름답다.
깊은 물속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한 물이다.
아래쪽 와운마을 입구 삼거리의 요룡대에서 탁용소를 거쳐 이곳 금포교까지 구간이
뱀사골계곡에서도 가장 계곡미가 수려한 곳이라고들 호사가들은 말하기도 한다.
좌측에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이다.
인적이 거의 없는 한적한 숲길. 들리는 소리라곤 좌측 뱀사골 계곡을 따라 흐르는 웅장한 물소리뿐이다.
지난 일주일간 도시에서 원치 않게 쌓였던 온몸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내는 기분이다.
상류쪽으로 오를수록 인적은 거의 끊기고
그에따라 계곡을 흐르는 물은 더욱 투명하고 깨끗해 보인다.
저 맑은 물에는 금방이라도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이라도 할듯하다.
모여서 합쳐진 물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아랫쪽으로 쉬임없이 흘러내려 메마른 대지를 적셔준다.
화개재까지 5.2km를 남긴 지점.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반선마을까지 4km 지점인
병풍교에서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마음같아서는 화개재까지 다녀오고 싶지만 귀가 차량 탑승 시간에 맞춰야하니 어쩔수 없다.
쪽빛으로 빛나는 맑은 물을 눈속 가득 담는 것으로 만족한다.
안내 간판 등이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그저 멋진 풍광이 나타나면 눈으로,마음으로 새기면 되는 것이니까.
그냥 뛰어들고픈 마음이 들기도한다.
또한 그 순간 얼마나 짜릿하고 시원할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맑고 깨끗한 계곡물에 심취해 걷다보니
쪽빛 계곡물빛과 대조를 이루는 샛노란 야생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철 늦은 '짚신나물'이 노란빛을 뽐내며 햇빛에 반짝인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 이 짚신나물은
한방에서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를 전체를 용아초(龍芽草)라는 약재로 쓰는데,
지혈제로 소변출혈·자궁출혈·각혈·변혈 등 각종 출혈 증상에 사용한다.
유럽에서는 이와 비슷한 종을 만성인두염·설사·간장통·신장결석·담석증 등에 사용한다고 들은바 있다.
이곳 뱀사골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의 이름을 만수천이라고 부르기도하며,
상류부인 달궁계곡은 오래 전 옛날 마한의 피란 도성인 달궁(달의 궁전)이 세워졌던 곳이기도 하다.
지표유출이 많은 곳이다. 따라서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특징도 있으나
10여년 전인 2002년도에 집중호우로 인하여 많은 사상자가 이 계곡에서 발생한 것도 이런 자연적 환경이 원인이다.
그런가하면 이 아름다운 뱀사골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고로 식량 조달과
거처 마련이 용이한 곳이어서 60여년 전 여순사건 등을 거치면서 많은 희생자를 냈던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2시간 여전 출발했던 와운마을 삼거리로 되돌아왔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 중간 와운골에서 흐르는 물이 뱀사골과 합류하는 지점에
멋진 바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요룡대(搖龍臺)'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저 바위 좌우로 계곡의 급류가 세차게 흘러 내릴때면
마치 용이 승천하려고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치는 모습이라하여
'요룡대(搖龍臺)'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갈수기인 요즈음 수량이 적어 장관을 보지 못함이 아쉽다.
오전에 올랐던 길이 아닌 계곡 반대편의 물가를 따라 만들어 놓은 일반 탐방객들을 위한 산책로를 이용한다.
뱀사골 계곡이 거의 끝나는 하류쪽임에도 맑은 물빛은 변함없이 아름답다.
더운 여름 피서를 위한 나들이에는 최적의 장소일듯 싶다.
깨끗하고 맑은 물이 기운차게 흐르는 모습과 더불어 귓전을 때리는 물소리만으로도 더위가 가시는듯 하다.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반선마을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5시간 여에 걸친 뱀사골 탐방을 마친다.
'반선(半仙)'의 예전 이름은 반산(半山)이었으며 일명 금포정(錦袍亭)으로도 불리었다한다.
오래 전 부근에 있던 송림사의 스님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반절쯤 신선이 되었다 하여 반신선(半神仙)이라 하였다가
이를 줄여 '반선'이라 부른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출발해 노고단,삼도봉,화개재를 거쳐 이곳 반선마을까지
7시간 반에 걸쳐 19km를 걸었던 구간이며
붉은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이날 탐방한 10km 남짓한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