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6일 일요일 오전 10시 59분.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전남 해남의 달마산 산행을 위해 첫 발을 딛은 곳은 해남군 송지면 마봉리.
지난 2011년 11월 하순 달마산 줄기 북쪽 끝인 해남군 현산면의 송촌마을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산행을 한데 반해 오늘은 남쪽 끝에서 북쪽 방향으로 산행을 할 예정이다.
남동쪽 멀리 철제 통신탑이 눈에 들어온다.
약 2km 정도 떨어진 통신탑 남쪽의 도솔봉은 달마산 줄기의 남쪽 끝 지점이다.
해발고도 50m 남짓되는 지점에서 시작된 산길은
연분홍 진달래로 뒤덮인 완만한 경사가 잠시 이어진 후 이내
비교적 급한 오르막 경사 길이 이어진다.
오전 11시29분
불굴이재 부근 해발고도 300m 남짓 지점에서 잠시 한숨 돌린다.
분홍빛으로 빛나는 진달래꽃 너머로 남쪽 바다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땅끝 해양자연사박물관이 있는 통호리 마을 앞 바다에 길게 누운 작은 섬은 흑일도이고,
그 좌측의 섬은 백일도이다.
흑일도 너머로 멀리 노화도의 윤곽이 뚜렷이 보인다.
오르막 산행로 양지바른 풀숲 사이에서 수줍은듯 고개를 내민 보라빛 꽃 한 송이를 만난다.
꽃말이 부끄러움, 세련됨 등인 각시붓꽃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하순부터 주로 피는 새색시처럼 여린 각시붓꽃의 꽃잎 가장자리가 비틀려 있다.
아마도 따뜻한 날씨를 참지 못하고 일찍 피었다가 어제부터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듯하다.
대부분의 야생화 이름 앞에 '각시'라는 접두어가 붙으면 그 꽃은 비교적 크기가 작고 여린 편이다.
이 각시붓꽃 또한 서늘하고 습기가 많은 곳에 잘 자라며 햇볕을 잘 받아야하는 까다로운 생육조건을 가진 야생화이다.
새신랑의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예쁘고 가녀린 각시를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시인 '김나인'의 시집 제목인 "각시붓꽃 목에 슬픈 낮달이 뜨다" 가 불현듯 떠오른다.
해발고도 418m 인 도솔봉에 올라 남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분홍빛 진달래 군락 너머로 해남군의 남동쪽 끝 부분인 영전리,남성리 마을 너머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영전리 중앙부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윤도산이고 그 앞 바다의 작은 점처럼 떠 있는 섬은 닭섬.
그 우측으로 동화도와 백일도 등 여러 섬들이 이어진다.
이어서 남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른바 땅끝마을로 알려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마을에 면한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 중앙부의 높은 산봉우리 위에 세워진 땅끝 전망대도 조그맣게 눈에 들어온다.
10km 떨어진 땅끝전망대를 망원렌즈로 당겨보면 전망대의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멀리 강원도 땅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와 호남지방을 가로지르는 노령산맥이 이곳까지 이어져
갈두산 사자봉을 솟게 하고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형세를 이루는 곳.
그곳 해발 156.2m의 사자봉 정상에 역동적으로 타오르는 횃불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40m 높이의 땅끝 전망대가 서 있다.
저곳에 오르면 흑일도, 백일도, 보길도, 노화도 등이 줄지어 늘어선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옴은 물론 맑은 날이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기에 매년 연말이면 해넘이, 해맞이축제가 동시에 열리기도 하는 곳이다.
땅끝비가 서 있는 땅끝마을인 갈두마을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전망대의 모습은 이렇다.
전망대까지 걸어 오르기 힘든 이들을 위한 모노레이카도 운행된다.
*참고로 이사진은 지난 2011년 3월5일 오전 9시 46분 노화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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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49분잠시 머물렀던 도솔봉 정상을 떠나 산행길을 이어간다.
매주 주말이면 산행을 다니는 나 자신 우리나라의 수많은 산에서 만난 도솔봉(兜率峰) 숫자만도
아마 수십 개는 될듯 하다.
'도솔'이란 도솔천(兜率天)을 줄여서 말함인데, 석가모니의 모국인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인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인 잇수의 단위, 40리에 해당함.)이 되는 곳에 천계(天界)가 있고,
여기에는 칠보(七寶)로 된 궁전이 있으며 수많은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얘기에서 유래한다
북쪽 방향으로 자그마한 바위 봉우리 위에 통신탑이 있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 이곳 도솔봉에서부터 북쪽 방향으로 불썬봉을 지나 바람재를 거쳐 관음봉까지
약 8km 에 이르는 마치 지네 마냥 꿈틀거리듯 이어지는 달마산 바위 능선이 이어진다.
그러나 거리는 8km 이지만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이어지는 소요 시간은 대략 7시간 남짓이니
능선길이 얼마나 험한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내리막 산길 관목 숲 아래에 금년 봄 처음으로 만난 야생화 군락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꽃말이 비밀,보물주머니 등으로 알려진 '현호색'이다.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 동북부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분포하는데,
한방에서는 덩이줄기를 정혈제·진경제 및 진통제로 쓰며,
소화제 활명수에도 현호색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입통제 구역인 통신부대 아래 우회로를 따라 이어지는 산행길.
온갖 기암괴석이 마치 수석전시장을 방불케한다.
이곳 달마산 최고봉인 불썬봉까지 거리가 5.9km 임을 알리는 이정표 곁을 지나
0.7km 떨어진 도솔암을 향해 이어지는 산길.
양 옆으로는 만개한 진달래가 붉은 빛으로 산행객들을 맞는다.
낮 12시8분
공룡의 등뼈같이 울퉁불퉁 솟아 있는 암봉들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에 취해 걷다보니
암봉 사이 손바닥만 한 터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작은 암자를 만난다. 도솔봉이다.
아슬아슬하게 마주 보고 서 있는 암봉 사이에 암자를 올려 놓은 모습이다.
해남 사람들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땅끝에서 만나는 하늘끝’에 다락방 같은 암자가 매달려 있음이다.
암봉 사이에 제비집처럼 들어 앉은 도솔암의 진면목을 제대로 눈에 담으려면
멀리 아래로 내려가 봐야하지만 산행 중인지라 그러지 못하고
적당한 거리까지 급경사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간 후 도솔암을 올려다 본다.
'도솔(兜率)'이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창건된 사찰로 여겨지는 도솔암은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패퇴한 왜군이
해상 퇴로가 막히자 달마산으로 퇴각하면서 불을 질러 폐사되었다 한다.
그리고, 수백년이 흐른 후 현 주지인 법조 스님과 불자들이 지난 2002년
흙기와와 자재를 져 날라 불과 32일 만에 법당을 다시 지었다고 전해진다.
도솔암을 벗어나 잠시 지났던 길을 되돌아 온 후 북쪽을 향한 산행길은 이어진다.
쪽빛으로 빛나는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 너머 보이는 땅은 전남 완도군이다.
바다 가운데 흰색으로 빛나는 다리가 보인다.
해남군 북평면 달도리와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 사이에 지난 2012년 새로 개통한 완도대교의 모습이다.
완도는 빙그레 웃을 완(莞)자와 섬 도(島)자를 써서,
고향을 생각하면 포근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완도대교를 망원렌즈로 당겨 자세히 살펴 본다.
지난 2011년 11월 하순 이곳 달마산 산행시 보았던 모습과는 달리 완도대교 하나만 서 있는 모습이다.
당시 최신 공법으로 지어져 완공 직전이었던 4차선 멋진 다리.
그 바로 옆에 오래 전부터 이용해 오던 2차선 다리.
그리고 그 중간에 지난 1960년대 초반 임진강 철교를 옮겨와 재조립했던 역사의 유물인 철교.
3개의 다리가 나란히 서 있던 곳인데, 지금은 지난 2012년 새로 만든 다리만 보이고 나머지는 철거된 모습이다.
* 참고로 이 사진은 지난 2011년 11월27일 오후 1시39분
이곳 달마산 최고봉인 해발 489m 불썬봉 부근에서 찍은 당시의 완도대교 모습이다.
낮 12시 16분
이제 도솔봉이 저만큼 뒤로 멀어져 간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해발고도 400m 대의 능선 바위 틈을 뚫고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가 따뜻한 봄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난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바위 능선을 따르는 길이 조심스럽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지 않고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두며 걷는 것 또한
산에 오르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큰 행복이다.
낮 12시43분
험한 산길을 2시간 가까이 걸어온 덕분에 다리에 조금씩 피로감이 밀려올 즈음
따뜻한 봄볕 아래에서 달콤한 일광욕을 즐기는 이처럼 하얗고 예쁜 꽃을 만난다.
들별꽃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의 이름은 '개별꽃'이다.
'개'라는 접두어는 ‘야생’, ‘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꽃 모양이 하늘의 별을 닮았다고 해서 별꽃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잎과 줄기는 위장병, 치질 등에 효과가 있는 이 개별꽃은
꽃이 닫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제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라 한다.
제꽃가루받이는 유전적 다양성은 없으나 곤충에 의해 가루받이가 되지 않은 경우
후손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낮 12시51분
도솔봉을 떠난 후 능선을 따르는 길은 연이어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또한 진달래꽃의 빛깔이 점점 진해지는듯 하다.
여수 영취산이나 강화도 고려산의 진달래처럼 온 산을 뒤덮듯 붉게 핀 진달래는 아니지만
바위틈을 비집고 점을 찍듯 피어나는 진달래의 모습 또한 색다를 아름다움으로 다가 온다.
진행 방향인 북쪽으로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바위 능선이 끝을 모르는듯 이어진다.
모서리진 바위들을 피해가며 조심스레 걷는 길.
그나마 분홍빛으로 빛나는 진달래꽃과 푸른 하늘, 그리고 그보다 더 빛나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온몸의 피로를 조금 감해주는듯 느껴진다.
오후 1시4분
해발고도 422m 떡봉에서 잠시 머문다.
동쪽으로 바닷가 마을 답지 않은 넓은 들이 시원한 풍경을 펼쳐 놓는다.
아마도 북평면 평암리의 장말둥들이 저곳이 아닌가 싶다.
떡봉이라는 이름이 어떤 연유로 붙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별도의 정상석 없이 불선봉까지 남은 거리가 3.4km 임을 알려주는 나무로 된 이정표에
떡봉이라 표기해 놓았을뿐이다.
비교적 평탄하고 넓은 바위로 된 봉우리여서 떡이란 이름이 붙은걸까 생각하며
잠시 머물렀던 떡봉을 떠나 다시 북쪽 방향으로 산행길을 이어간다.
오후 1시51분
떡봉에서 10분 남짓 걸어 도착한 하숙골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30여분간 이어진 산행길은 두 발은 물론 두 손까지 써야하는 구간이 많다보니
속도가 무척 더디다. 하숙골재의 위치가 도솔봉에서 3.1km 지난 지점이고,
그곳에서 불선봉까지 거리가 2.8km이니 달마산 최고봉인 불선봉까지는 아직 2km 이상 남았다.
이름 모를 작은 바위 봉우리에 올라서니 눈 앞으로 큰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아마도 지도상에 표시된 460 봉인듯 싶다. 기운을 내어 다시 걸음을 이어간다.
작은 바위 봉우리를 넘어 460봉으로 오르는 구간은
이와같은 굵은 밧줄을 매어 놓은 곳이 여러 곳이다.
오르고 내리는 산행객들이 교행할 때는 서로 기다려 주며 조심스런 산행길을 이어간다.
460봉에 올라서면 북동 방향으로 471봉이 손에 잡힐듯 보인다.
저곳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제 깎아지른듯 가파른 바위 절벽을 따라 만들어 놓은
좁은 철계단을 한참 내려 갔다가 다시 저곳에 올라야 한다.
가파른 철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며 북쪽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년 고찰 미황사 경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저 미황사 동쪽으로는 달마산 최고봉인 불선봉에서부터 남쪽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이
마치 병풍처럼 미황사를 감싸 안은채 버티고 서 있다.
오후 2시10분
471 봉에 올라 조금 전 지나온 460봉쪽을 바라보니 경치가 일품이다.
바위 틈을 비집고 올라와 수줍은듯 분홍빛을 터뜨리는 진달래꽃의 조화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앞에 걸어 놓은듯 하다.
오전에 지나 온 도솔봉 옆의 통신탑이 460봉 너머로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산행을 이어 갈 북쪽으로는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진다.
북동 방향으로 눈에 들어오는 완도대교가 점점 가까이 보이는 것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들 너머 멀리 북쪽으로 2km 떨어진 불선봉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정상부 돌탑 부근에서 조망을 즐기는 몇몇 산행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불선봉 좌측 너머로 멀리 보이는 세개의 멋진 바위 봉우리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해남군 삼산면에 위치한 두륜산 정상부의 모습인데, 맨 우측 봉우리가 두륜산 최고봉인
해발 703m 가련봉이고, 작은 봉우리를 중간에 두고 좌측 봉우리가 일명 능허대로도 불리는
해발 685m 노승봉이다. 두륜산 산행 경험이 있는 이들도 이런 멋진 자태는 보지 못한 이들이 많다.
13km 떨어진 거리의 두륜산 정상부를 이처럼 선명히 볼 수 있는 오늘 날씨에 감사하고픈 심정이다.
달마산 정상인 불선봉까지 1.6km를 남긴 지점. 이처럼 멋진 바위가 버티고 있는 곳인
대밭삼거리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달마산 정상으로 향하는 북쪽 산행길을 버리고
미황사 부도전이 있는 서쪽 길을 택해 하산을 시작한다.
30여분 전 460봉을 오르며 발을 헛디뎌 집채만한 바위면에 오른쪽 무릎이 강하게 부딪쳤었는데,
바위는 깨지지 않고, 오른쪽 무릎이 부어 오르며 아파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년 째 매주 산행을 다니며 이 정도의 부상은 수없이 당해 본 지라 걱정은 되지않지만,
당장 월요일인 내일 아침부터 왕복 16km를 자전거로 출퇴근해야 하고,
다음 주말에도 또산행을 떠나야하기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가장 최근 다녀온 불선봉의 모습을 다시 되새겨 본다.
이 사진은 지난 2011년 11월 27일 오후 1시 37분에 찍은 불선봉 정상부의 모습이다.
달마산 최고봉인 이곳 해발 489m 불썬봉에는 옛날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완도의 숙승봉과 장성 북일 좌일산에서 서로 통신을 주고받던 곳으로
극심한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이 산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 한다.
"불썬봉" 이라는 이름은 전라도 사투리로 '불을 켰던(썼던)봉' 이라 해서 붙여졌다 한다.
'달마산(達摩山)'이라는 이름은 산 아래에 자리한 미황사측의 홍보 자료에 의하면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서 그 유명한 소림권법을 창안했다고도 전해지는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였던 달마대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한다.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알 수 없게 된 달마대사가 해동으로 건너와 안주한 곳이
이곳 달마산이라는 얘기인데...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이다.
오후 2시 33분
대밭삼거리에서 미황사 부도전으로 향하는 하산길은 이처럼 산죽군락으로 뒤덮인 길이다.
10분 이상 걸어 내려오는 동안 옷자락을 스치는 산죽군락은 끊이지 않는다.
더구나 인적조차 전혀 없는 적막한 길. 마음이 차분해진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지에 분포하는 산죽은 키가 1m 정도로 일반 대나무에 비해 아주 작은 품종인데,
조릿대를 만드는데 많이 썼던 이유로 조릿대로도 불리운다.
미황사에서 남쪽으로 0.7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부도전에 도착하며 산길은 끝난다.
총 21기의 부도와 다섯기의 탑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곳 동부도전의 특징은
각각의 부도에 조각된 그림들이 특이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연꽃이 조각되어 잇지만, 새, 도룡뇽, 게,물고기, 용 등
다양한 조각들을 살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도(浮屠)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을 이름인데,
거의 대부분 사찰의 경우 부도는 사찰 입구인 일주만 부근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곳 미황사의 부도는 사찰 중심부에서 700m 쯤 더 들어가야하며,
더구나 수많은 부도를 관리하는 건물인 부도전까지 세워져 있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부도전을 떠나 미황사로 향하는 숲길 양켠에서는 봄 햇살을 받은 진달래가 방긋 웃는다.
사랑의 희열,신념,청렴,절제 등의 꽃말을 지닌 진달래꽃은 소월의 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오랜 옛적부터 우리 민족의 애(哀)와 한(恨)을 담고 있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꽃이다.
먹을 수 없는 철쭉과 달리 참꽃이라 부르기도 하는 진달래는 먹어도 되는 꽃이다.
꽃잎 하나를 따서 입 안에 넣고 가볍게 씹어도 본다.
오후 3시31분
미황사의 주불전인 대웅보전 앞에 도착해 4시간 반동안 걸어온 발의 피로를 푼다.
보물 제 947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보전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전면,측면 각 3칸의 팔작 지붕 다포 계열 구조인 대웅전의 소박함이 마음에 든다.
단청이 벗겨진 시기가 언제쯤인지는 모르겠으나,
화려한 원색의 단청보다는 목재 자체의 소박한 나무색이 훨씬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배흘림 기둥이 올라 앉은 주춧돌에 거북,게 등으로 추정되는 바다생물이 새겨져 있음 또한 특이하다.
달마산의 날카로운 바위들을 마치 사천왕처럼 거느린 대웅보전 앞을 벗어난다.
대웅보전 뒷편의 병풍같은 바위 능선 맨 좌측 봉우리가 달마산 최고봉인 불썬봉이다.
749년(신라 경덕왕 8년)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미황사는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金人)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일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쓴 것이라 한다.
오후 3시 58분
지나치게 큰 규모에 조금은 못마땅한 마음이 드는 일주문을 지나며 미황사 경내를 벗어난다.
철 모르고 일찍 피어났던 벚꽃이 주말을 맞아 몰려온 한파에 움츠러든채 꽃잎만 무수히 떨어뜨리며 서 있다.
일주문 [一柱門] 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 째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비록 믿는 종교는 없으나 그 뜻을 마음 속으로 새기며 행복했던 휴일 일정을 마치고 귀가 길에 오른다.
위 지도상에 녹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지난 2011년 11월27일 산행한 구간이며,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