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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 5~6구간 탐방기


2014년 3월16일 일요일 오전 10시47분
북한산둘레길 5,6구간 탐방을 위해 첫 걸음을 시작한 곳은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110번 버스 종점이다.
지난 2011년 6월 말 개통된 총 거리 71.5km의 북한산둘레길은 총 21개 구간으로 나뉘어있다.
지난 달 이맘 때쯤 1~4구간을 다녀온 이후 한달여 만에 다시 북한산 둘레길을 찾았다.
북한산국립공원 정릉탐방안내소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경사를 오르다 보면
북서쪽 히늘 아래 바위 봉우리가 눈길을 끈다.




눈길 끄는 바위 봉우리를 망원렌즈로 당겨본다.
봄철 아침 나절의 옅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인해 선명치는 못하지만
해발 714m 보현봉의 위용이 드러난다.
비봉·문수봉과 함께 북한산 남쪽의 주봉을 형성하는 보현봉의 명칭은 마주보고 있는 문수봉의 동남쪽에 있다 하여
4대보살(미륵·문수·관음·보현)의 위치에서 동남쪽에 있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 한다.
하지만 대남문에서 보현봉을 거쳐 평창동으로 내려가는 보현봉능선은
추락 위험이 높은 암릉구간이 있어 등산 초보자에게는 무척 위험한 구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릉탐방안내소에서 100 여m 더 오르다 북한산 둘레길은 좌측으로 난 길을 따르게 된다.
곧장 오르면 2.5km 거리의 보국문, 3km 거리의 대동문으로 향하는 산성길로 이어지며,
북쪽으로 계속 오르다 보면 북한산 최고봉인 해발 836m 백운대에서
사시사철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접할 수 있음이다.
백운대,보국문,대동문은 모두 다녀온 곳이지만 오늘 지나갈 둘레길은 나로서는 초행 길이다.




오전 10시56분
산길로 접어들며 북한산둘레길 제5구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5구간에는 명상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제부터 형제봉 입구까지 2.4km 거리의 명상길이 시작된다.
안내서에 의하면 트레킹 난이도가 "상"급으로 표기되어 있는걸 보면
아마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여러 차례 반복될듯 하다.




오전 11시2분
난이도 "상"급이라 알려진대로 이와같은 오르막 계단이 연이어 이어진다.
주로 평지로 여행만 다니던 이들에게는 조금은 힘든 구간일 수도 있을듯 하다.
그러나, 해발고도 1,000 m 이상의 높은 산을 많이 올라 본 이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구간이다.




오르막 계단을 끝까지 오르자 북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북서쪽 멀리 밝은색 암반으로 이루어진 뾰족한 봉우리가 보현봉이고
그 우측인 동쪽 방향으로 오밀조밀한 형태의 마루금이 길게 능선을 이어간다.
저 능선을 산꾼들은 대성능선이라 부르는걸로 기억한다.




오전 11시14분
출발 지점인 정릉탐방안내소에서 0.5km 를 지난 지점에서부터 걷기 편한 숲길이 이어진다.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오르막길을 올랐던 이들도
이제야 비로소 명상길이라는 길 이름에 걸맞게 동행한 일행들과 삼삼오오 걸음을 맞추고
미소 띈 얼굴들을 마주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운다.


오전 11시26분
출발 지점인 정릉주차장에서 1.1km 를 지난 지점에는 이와같은 배드민턴 코트를 비롯한
간단한 운동기구와 더불어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잠시 멈추어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오전 11시31분
정릉탐방안내소에서 1.5km를 지나온 지점에는 이처럼 넓은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탐방객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마련되어 있고,
둘레길 안내 표지판에는 화장실 표시가 되어 있고, 작은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지만
어인 일인지 사용하지 못하게 폐쇄된 상태이다. 적절한 조치가 요망된다.




오전 11시47분
쉼터를 지나 잠시 이어지던 걷기 편한 숲길은 다시 급경사 오르막 계단길로 이어진다.
정릉탐방안내소에서 1.8km 남짓 지난 이 지점 부근은 성북구 정릉동과 종로구 평창동의 경계 지점이다.

정릉동의 옛날 이름은 "살한이"였는데, 이는 옛적 이곳을 오고 가던 짐꾼들이 이 골짜기에 들어서면
살을 에는 듯이 차가워서 붙인 이름으로, ‘살을 에는 듯이 추운 한데(바깥)’라는 뜻으로
삼국시대 이전 이 지역이 마한(馬韓)에 속해 있을 때의 우리말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던 중 "살한이"라는 이름을 한자화하면서 "사을한리(沙乙閑里)라는 명칭으로 변하는 과정을 거쳐
1409년(조선 태종 9년) 태조 이성계의 제2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의 능인  '정릉(貞陵)'이
오전에 출발한 정릉탐방안내소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 5km 정도 지점에 옮겨지면서부터
점차 동네 이름을 정릉으로 부르게되었다 한다.




낮 12시
행정구역상 종로구 평창동으로 접어들며 내리막길이 이어지던 중
거대한 암반 두개가 마치 대문인양 양쪽으로 늘어선 앞에 '구복암'이란 작은 표지석이 서 있다.
미륵불을 본존(本尊)으로 삼고 있는 '대한불교법상종(大韓佛敎法相宗)'의 서울 본사인 구복암이
저 두개의 암반 사이로 들어가면 자리하고 있음이다.




혼자가 아닌 여러 일행들과 동행한 처지이기에 구복암 경내를 둘러보지 않고 지나친다.
참고로 '구복암(龜福庵)' 경내 사진 1매를 첨부한다.
구복암은 1960년 주지 남궁이 창건한 사찰인데,
경내에는 거북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복암이라 명명하였다 전해진다.
북한산 남쪽 능선인 이곳에 쪽두리같이 생긴 묘한 바위가 있고 그 밑에 거북모양의 큰 바위가 있어서
두 바위 사이에 절을 지은 것인데, 쪽두리 바위 밑 암벽에 감실(龕室)을 내고 칠성각을 만들었다.




구복암 입구를 지나 걸음을 이어가다 보니 입구에 서있는 큰 바위 중 좌측 바위 한쪽 면에
'나무미륵대불'이라고 새겨 놓은게 보인다. 자연경관을 저렇게 훼손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구복암에서 저 큰 암반을 별도로 구입하여 저곳에 옮겨 놓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흔히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왔다.
이는 아미타불에 귀의(歸依)한다는 의미인데
정토종(淨土宗)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을 진심으로 염(念)하면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구복암이 속한 법상종은 미륵불을 본존으로 삼는 교파인고로
"나무미륵대불(南無彌勒大佛)"이라 새겨 놓은듯 싶다.




낮 12시7분
가파른 내리막 산길이 거의 끝나고 눈 아래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보이는 지점에서
기묘한 형상의 바위 옆을 지난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유난히 바위들이 많다.
이곳 평창동, 그리고  경계를 이루는 동쪽 정릉4동 및 서쪽 구기동 일대에는
거북 모양의 바위를 비롯 각종 형상의 바위가 많은데, 이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강을 떠나 북한산으로 기어오른 큰 거북이와 산신령 사이에 얽힌 설화의 근원이 아닌가 싶다.




낮 12시13분
5구간. 정릉주차장-형제봉 입구사이 명상길. 2.4km가 끝났다.
평창동쪽 5구간 시작점 앞에서 잠시 한숨 돌린다.
이곳 이정표에는 오전 출발 지점인 정릉탐방안내소까지 거리가 2.5km로 표기되어 있다.




5구간 종착점 바로 앞에서 제 6구간인 평창마을길이 시작된다.
안내 자료에 따르면 거리는 5km,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난이도는 "중"으로 나와 있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6구간 탐방길로 들어선다.




5구간은 구간 전체가 산 허리를 따르는 숲길이었던데 반해
6구간은 구간 전체가 북한산 남쪽 기슭의 평창동 주택가를 따르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이다.
따라서 여름철 더운날은 이 구간 탐방을 피하는 것이 상책일듯 싶다.




낮 12시19분
'대승불교본원종총무원'이라는 긴 이름의 현판이 걸린 건물 앞을 지난다.
일반인들은 조계종,태고종,천태종 까지는 간혹 들어본 일이 있겠지만
한국 불교 종단이 총 27개나 된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1989년 창종된 "대승불교본원종(大乘佛敎本願宗)"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와 각행원만의 교리를 받들어
전법도생과 호국안민을 종지로 하는 한국의 불교 종단으로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을 본사(本師)로 하고, 아미타불을 존사(尊師)로 삼는다.
종조는 고려 말기의 승려인 태고(太古) 보우(普愚)로 알려져 있다.




5구간이 나무숲이 우거진 풀냄새 가득한 산길로 코를 즐겁게 한 길임에 반해
이곳 6구간은 빼어난 산세와 조망으로 인해 눈을 즐겁게 하는 길이다.
해발고도 463m와 461m 인 두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형제봉이 북쪽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길이 평창마을길이다.




북서쪽으로는 형제봉 능선 너머 멀리 해발714m 보현봉의 흰 봉우리가 뚜렷이 보인다.
등산 자켓을 벗어 배낭 속에 갈무리한지는 이미 오래 전.
긴팔 티를 벗고 반팔 차림으로 걸어도 전혀 한기를 느끼지 않는 따뜻한 봄 햇살을 듬뿍 받으며 걷는다.




보현봉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금방이라도 바위 조각들이 굴러 떨어질듯 위태롭게 보인다.
* 그날 보현봉 정상부를 바라보며 느꼈던 위태로움이 현실로 나타난 사건이 이곳 북한산에서
그것도 내가 이 지점을 지나기 1시간 여 전에 발생한 뉴스를 어제 접하고 소름이 끼쳤다.
북한산 인수봉에서 무게 500kg의 바위가 아래로 떨어져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매년 이맘 때인 봄철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는 시기가 낙석사고에 대한 주의가 가장 요망되는 시기이다.




좌측인 남쪽으로는 평창동 일대 고급주택가가 한 눈에 펼쳐진다.
평창동(平倉洞)의 지명 유래는 조선시대 인조반정(1623년;인조 1년)이후 설치된
중앙 군영(軍營)이었던 '총융청(摠戎廳)'의 창고인 '평창(平倉)' 이 있었던 연유로.
또 그 이후에 지은 선혜청(宣惠廳)의 대동미(大同米)를 보관하는 평창이 있었던 연유에 기인한다.




낮 12시25분
멀리 대승불교본원종총무원 건물이 나뭇가지 사이로 뚜렷이 보이는
시원한 길 옆 나무숲  아래에서 간단한 간식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하며 휴식을 취한다.
엊그제까지만해도 아침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3월 중순에 접어들며 봄이 어느새 우리 가까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오후 1시1분
점심 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 본격적인 평창마을길 탐방길이 시작된다.
초입부터 이처럼 웅장한 저택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 옛날 선혜청의 평창은 대동미(쌀), 대동포(옷감), 대동전(돈)을 보관하던 곳이다.
그래서일까? 이곳 평창동은 서울에서도 부자동네로 알려져 있다.
장충동,성북동,한남동 등과 더불어.




오후 1시10분
6구간 평창마을길 시작 지점에서 1km를 지난 지점. 아주 특이한 모습의 도로변 건축물 옆을 지난다.
건물 앞 표지판에는 이 건축물에 대한 수상 이력이 표기되어 있다.
2009년 한국실내건축가협회에서 베스트 디자인 상,
2010년 아시아 실내디자인학회 금상..등등..
그렇다면 이 외부 모습 때문에 받은 상이 아니라 내부 모습 때문에 상을 받은건데, 내부를 볼 수 없으니...




바로 옆 거대한 자연 암반과 조화를 이루는듯한 건물 모습을
지나오면서 뒤돌아 보니 내부 모습이 더욱 궁금해진다.
내부 모습에 대한 궁금증은 나의 또 다른 숙제로 남겨 둔다.




 


 

평창동에는 거대한 저택만 있는게 아니라 이처럼 특이한 주택들도 곧잘 눈에 띈다.
윗층을 거대한 물고기처럼, 또는 특이한 해저 생물체처럼 보이게 하는 건물도 눈길을 끈다.




이곳 평창마을길은 북쪽으로 형제봉능선이 지나는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급경사 지역이다.
북쪽이 바위산이고 남쪽으로 하루 종일 햇볕이 드는 곳이다.
자연 지형지물을 이용한 건축이 이루어지다보니 도로가 아닌 골목길은 이처럼 아찔할 정도의
고도 차이를 보인다. 이 길에는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이라도 세웠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사람 키의 여러 배 이상 높은 담장이 한참 걸어도 끝나지 않을 정도의
대 저택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혹자는 돈 많은 사람들을 무조건 나쁘게 여기기도 하지만, 어쨌든 많은 돈을 벌어 부자인 사람들은
나 자신보다 적어도 돈을 벌어 모으는 재주만은 뛰어남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 전 지나온 큰 담장이 붉은 벽돌이었던데 반해 이번 담장은 흰색이다.
높디 높은 담장 위의 보안을 위한 전기 담장이나 담벼락의 CCTV 카메라에 신경 쓰지않는다면
하나의 마름다운 건축물로 여겨도 될듯 싶다.
이 담장도 수십년,수백년이 지나면 다른 하나의 유형문화재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




일반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이처럼 멋진 자연경관을 갖춘 주택지가 흔치는 않을게다.
주택가 중심부를 지나는 길이지만 소음이 전혀 없고,공기 또한 무척 맑은 곳이다.




바위산 자락에 이루어진 주택가이다보니
이처럼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야 길이 이어지는 곳도 자주 나타난다.
하긴 이 동네에 사는 이들은 나들이를 하려면 자동차, 그것도 힘 좋은 큰 배기량의 자동차가 필수이겠지만
오르막을 오르느라 힘이 들면 뒷걸음으로 오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각양각색의 주택들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으니까.




오후 1시45분
평창동에는 돈 많은 이들이 사는 대저택만 많은게 아니라 수많은 사찰도 몰려 있다.
그 수많은 사찰 중 하나인 '청련사(靑蓮寺)' 경내에서 잠시 머문다.
대부분 탐방객들은 무심코 지나치지만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조각상을 보니 흔히 접하는
조계종,천태종 등과는 뭔가 다른듯하다.

알고보니 우리나라 불교종단 27개 중 하나인 "대한불교조동종(大韓佛敎曹洞宗)"의 총본산이 이곳이다.
1989년 창종된 "대한불교조동종(大韓佛敎曹洞宗)"은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하고
동산양개선사(洞山良价禪師)를 종조(宗祖)로 받드는 종파라 한다.




청련사를 벗어나자 마자 뒷편 나무 숲 사이로는 또 다른 사찰이 보인다.
많아도 너무 많다. 그 나라의 지적 수준을 가늠한다는 국내 서점의 총 갯수가
지난 2003년 3,600여개소에서 2013년 2,300여개소로 급격히 줄어들어 마음이 아픈데,

국내의 사찰 갯수는 지난 2008년 문공부 통계에 의하면 조계종 소속 2,368곳.
기타 26개종단 소속 8,032개소로 합계 만여개소가 넘는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2만개소가 훌쩍 넘는다고도 한다.
여기에 전국 교회 개수가 6만을 넘는다고 하니..

교회,절 등 종교시설 갯수가 거의 10만에 육박하는 나라에
국민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서점이 고작 2천여개인 나라..
이 나라의 미래가 이찌될지?  걱정이 병이될까 두렵다.




우측으로 멋진 주택가를 끼고 걷는 좌측 아래로 멋진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집일까 살펴보니 이곳도 사찰이다. 사찰 이름은 '보각사'.

저곳 보각사에서 보유한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조각승 진열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62㎝, 폭 28㎝의 중소형 불상인 '목조여래좌상'은 지난 2012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바 있다.




보각사가 자리한 터는 무지한 내가 보아도 양지 바른 멋진 곳이다. 돈 냄새가 물씬 풍긴다.
건물 외형을 보더라도 부티가 난다. 아마도 이곳 평창동 일대의 부자들이 돈을 꽤 내 놓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2012년 4.11 총선을 며칠 앞둔 어느날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어느 유력 정치인은
아침에 이곳 보각사에 들러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그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일이 기억난다.




고급 주택가이어서인지 지나는 길이 무척 깨끗하다.
자칫하면 지저분해지기 쉬운 공터에는 이와같은 조형물이 서 있다.
가난한 달동네나 한적한 농어촌 퇴락한 담벼락에는 근래들어 미술 전공 학생들이
자원봉사 차원에서 벽화를 그려 치장을 해 주는게 유행인데,
돈 많은 이 동네에서는 그럴 필요는 없을듯 싶다.




보현봉 봉우리의 흰빛, 그리고 특이한 형태의 주택.
그 앞에 세워진 독특한 모양의 고급 외제차를 한번에 접할 수 있는 곳이
이곳 평창마을길이다. 계속 이어지는 아스팔트 차도이긴 하지만 지루하지가 않다.




이곳 평창동 주택가에는 불법주차로 인한 차량 통행의 어려움이 전혀 없는 곳이다.
우리 동네처럼 누군네 집 차가 어떤 차이고 번호가 어찌되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저 구중궁궐같은 저택의 육중한 담장 안에 각종 차량들은 고이 숨어 있다.
60번 마을버스 정류소라는 팻말을 지나치다 보긴 했지만 도대체 승용차조차도 지나는걸 구경하기 힘든 곳이다.




오후 2시12분
종로구 평창동 주택가를 벗어나 잠시 걸음을 옮기니 이내 6차선 도로변에 들어선다.
세검정에서 구기터널을 지나 은평구 불광동으로 이어지는 진흥로. 이곳은 종로구 구기동이다.
200m 전방의 구기터널 삼거리 부근이 북한산둘레길 제6구간 평창마을길의 종착점이다.




6구간 종착점인 구기터널 삼거리에 도착해 북쪽인 이북5도청으로 향하는 길쪽을 올려다 본다.
이곳 삼거리에서 직진하는 서쪽 길은 구기터널을 지나 불광동으로 이어지게된다.
멀리 바위로된 산 마루금이 눈길을 끈다.




바위 능선 부근을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룬다.
맨 좌측 해발 535m 향로봉에서 우측으로 해발 560m 비봉, 567m 승가봉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비봉능선의 멋진 모습이다.
자세히 살펴 보면 위태로워 보이는 바위 능선을 따라 수많은 산행객들이 줄지어 산행길을 이어간다.




오후 2시17분
구기터널 삼거리 부근 인도 한켠에는 이와같은 북한산둘레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7구간부터의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북한산둘레길 5,6구간 탐방을 마감한다.

이날은 매월 1회씩 모이는 고교동기회의 산행 모임인지라 부근의 유명 음식점인
"ㅇ모님해장국" 이라는 음식점에서 오랫만에 입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다.
평소 주말 산행시 김밥 한두줄 외에는 일체 간식을 않는 습관이 있지만,
수십년지기 고교 동기들과는 허물이 없는고로
수육,간천엽,두부김치,김치전,술국 등 온갖 메뉴로 배를 채우고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입장이면서도 시원한 맥주를 곁들인 행복한 휴일을 보낼 수 있었다.
모임이 파한 후 나홀로 새벽에 떠났던 대전 집까지 여러차례 교통편을 갈아타며 돌아왔건만
북한산 자락의 맑은 공기를 마신데다 수십년간 교류한 악동들과의 만남이 주는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이다.



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탐방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