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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갯가길을 찾아 떠난 돌산도 여행



2014년 3월9일 일요일 오전 11시18분
돌산대교 아래 우두리항에서 돌산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여수갯가길 탐방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속하는 법정리인 '우두리'는
본래 마을의 산이 소의 머리 모양이어서‘쇠머리’라고 부르던 이름의 한자 표기이다.
일제강점기에 이 마을 주민들 중 소처럼 힘과 고집이 센 장사가 많이 태어나는고로
일제에 항거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여 일제 침략자들이 마을 이름을
우두리(牛頭里)에서 우두리(右斗里)로 바꿔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바 있으나,
1995년 주민의 청원으로 본래의 한자 이름을 되찾은 바 있다.




돌산공원 중심부까지의 400m 거리인 오르막길에서는 활짝 핀 매화꽃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지난 해 하반기 개통된 여수갯가길 1코스는 돌산대교에서 시작되어 총 12개 구간으로 나눈
총 거리 22.52km 거리인데, 오늘은 그 중 일부인 제9구간 종점인 마상포까지의
14.93km 를 탐방키로 계획을 세웠으나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인지라 마음의 채비를 단단히 한다.




1987년에 조성된 부지면적 28만 7,600m²인 돌산공원에는 돌산대교준공기념탑,어업인위령탑 외에도
이와같은 타임캡슐이 공원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1998년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의 3개 시군이 통합되어 여수시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통합 추진과정의 자료를 비롯하여 현시대의 시민생활·사회문화 자료 및 문물 803점을 타임캡슐에 담아
1999년 10월 15일 매설하였는데, 이 타임캡슐은 2098년 4월 1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오전 11시27분
지난 1984년 12월에 완공된 후 30년 가까이 섬마을이었던 돌산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던
너비 11.7m, 길이 450.2m 의 돌산대교를 뒤로 하고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음을 옮긴다.




오전 11시32분
동백나무를 비롯 비교적 키 작은 관목숲길을 벗어나자 눈 앞에 시원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 건너 여수시 자산공원에서부터 이곳 돌산도로 이어진 저 다리는 제2의 돌산대교격인
길이 744m 거북선대교이다.
지난 2012년 여수 엑스포개최 시기에 맞춰 개통된 저 다리는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갯가의 사전적 의미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물가를 말함이다.
갯가는 예전부터 바닷가 주민들의 삶의 원천이었기에 갯가에 나가야만 고달픈 삶을 이어갈 수 있었고,
갯가로 나가는 길은 이처럼 숲을 헤치고 산을 넘어야만 가는 길도 있었으리라.
이곳 여수 갯가길 또한 사람이 다니기 힘든 바닷가 절벽 구간은 이처럼 숲길로 이어진다.




오전 11시53분
이곳 여수갯가길은 처음 찾는 이들일지라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푸른 색으로 그려진 거북이 그림 이정표만 따르면 길이 이어진다.
거북선대교 교각 아래를 따라 동쪽으로 길을 따르다보니 어느새
우리나라에서 크기로 보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구 15,000 여명이 사는 돌산도 북쪽 해안을 지난다.
뒤쪽인 서쪽으로는 거북선대교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전 11시56분
출발 지점에서 1.77km를 걸어온 1구간 종착점인 신추마을 바닷가에서 잠시 한숨 돌린다.
눈 앞으로 얼마 여수에서 열렸던 엑스포 주행사장 부근의 엑스포 공원에서 이어지는
여수의 상징인 오동도가 긴 방파제에 연결되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듯이 보인다.

이곳 신추마을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별도로 기록된 것을 찾지 못했다.
다만, '신추'라는 땅 이름은 여수 지방 여러 곳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거문도·소거문도·개도·낭도·돌산 등의 주로 해안 지역에 전해오는 땅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센추’라고도 하는데, 하얀 풀이 많은 지역으로 알려진 ‘신추’나 ‘센추’라고 하는 이들 지역의
공통적인 지형의 특징은 해안가의 바위가 절벽이나 급경사의 비탈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곳 신추마을에서 1.92km 떨어진 진목마을까지가 제2구간이다.
키 작고 줄기가 가느다란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대밭 옆을 지나
해변을 뒤로 하고 언덕길을 오른다.




좌측으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을 길을 지나는 중
나이를 상당히 먹었음직한 산수유 나무를 만난다.
산수유 나무 중에서는 상당히 키가 큰 나무. 수많은 가지마다 산수유 꽃이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매화나 벛꽃에서와 같은 화사함과 진한 향기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
은은하고 고상한 기운을 풍기는 산수유는 차분한 느낌을 전해 준다.
산수유 열매는 8월부터 녹색의 핵과가 형성되어 10월이면 진한 붉은색으로 익은 아름다운 산수유 열매를 볼 수 있다.
10월 중순의 상강(霜降) 이후 서리가 내린 다음에 수확하는데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여 육질은 술과 차 및 한약의 재료로 사용한다.
씨에는 렉틴(Lectins)이 들어 있어 인체에 유해하므로 반드시 씨를 제거토록 해야 한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과 함께 비교적 일반에게 잘 알려진 한약 중 하나인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에 산수유를 비롯한 여섯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키 큰 산수유나무 부근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오동도로 이어지는 방파제가 뚜렷이 보인다.
방파제 뒷편으로 가까이 보이는 봉우리는 아마도 해발 385m 인 마래산일게다.
매년 봄이면 분홍빛 진달래로 온 산을 물들이는 전국적인 명성의 영취산(진례산)도
마래산 너머 멀리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낮 12시 11분
다시 마을길을 벗어나 잠시 숲길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눈 앞에 이와같은
대나무숲 터널이 나타난다. 전체 길이는 100m 가 조금 넘는 것 같다.
전남 담양의 죽녹원에서 엄청나게 키가 큰 대나무 숲을 지난적은 있지만
이처럼 사람 키를 조금 넘을 정도의 대나무 숲 터널을 지나는 경험은 흔치 않다.




이곳의 대나무는 우리가 흔히 아는 키가 크고 굵은 대나무는 거의 없고,
낚싯대 등으로 쓰이는 가늘고 키가 작은 대나무로 신우대,조릿대 등으로 불리우는 종류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곳 여수 지방에서 나는 조릿대의 품종을 "신이대"라고 부른다고 들은바 있는데,
대나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차이점은 알수 없다.
하지만 옅은 녹색잎을 가진 가녀린 대나무 줄기가 어찌보면 귀엽게도 여겨진다.




낮 12시 24분
숲길이 끝나고 해안가에 도달한다. 신추마을에서 진목마을까지 이어지는
제2구간 1.92km 의 종점이 이곳 진목마을이다.
진목마을 입구에서 선홍빛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나무 한 그루가 길손을 반갑게 맞는다.

봄철에 피는 매화나 벚꽃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피었다가 짧은 시간에 떨어지는데 비해 동백은 그렇지 않다.
또한 동백꽃이 질때는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진다. 낙화(落花)가 아닌 절화(切花)이다.
그래서 애절한 마음을 동백꽃에 비유한 시와 노래가 많다.
또한 동백이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머리가 뚝 떨어지는 것과 같다하여 병문안 때 가지고 가지 않는다.




진목마을 해변은 모래밭은 거의 없고 이와같은 몽돌밭이다.
북쪽으로는 방파제로 이어진 오동도와 주변의 푸른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이곳 진목(眞木)마을은 마을 주변에 참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예전에는 "참남금이"이라고 불렸으나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진목(眞木)으로 개칭되었다 한다.
"참남금"이라는 아름다운 우리 이름을 멋대로 바꾼 그들은 참 나쁜 사람들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수평선상에 수많은 화물선들이 줄을 지은듯 정박해 있다.
아마도 여수산업단지에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들인듯 싶다.
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땅은 경남 남해도이다.
우측 끝의 산봉우리는 봉수대가 있는 설흘산이고, 그 아래 바닷가에는
일반에 널리 알려진 가천 다랭이마을이 있다.




낮 12시39분
진목마을을 벗어나며 제3구간이 시작된다. 3구간 종점인 밀듬병까지는 1.59km이다.
해변을 벗어나 숲길로 오르며 해안가 높은 곳에 자리한 이와같은 감시 초소를 또 만난다.
오랫동안 우리 젊은이들이 밤잠을 잊고 나라를 지키던 저곳.
외부의 시멘트 벽은 온통 금이 가 성한 곳이 없고
무성한 잡초 더미가 세월의 흐름을 지키려는듯 옛추억을 감싸 준다.




참나무가 많아 진목(眞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얘기가 실감이 날 정도로 유난히 참나무가 많은 숲길이 이어진다.
이곳 바닷가 사람들은 이런 길을 통해 물이 빠지는 썰물 때 산을 넘어서 해산물을 채취해 먹거리를 마련해 살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 먹거리들을 '갯것'이라 불러왔다.




낮 12시47분
진목마을에서 밀듬벙으로 향하는 중간지점에서 산길을 벗어나자
이처럼 아늑한 몽돌밭이 나타난다.
시원한 갯바람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진 몽돌밭에 앉아 점심식사와 휴식을 즐긴다.
바위에 달라 붙은 자연산 굴은 좋은 간식거리가 되기도 한다.




오후 1시21분
점심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 다시 발걸음을 이어 도착한 곳은 3구간 종점인 밀듬병 해안가이다.
‘밀듬벙’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려고 애썼으나 찾지 못했다.
다만 젓갈을 담는 큰 멸치를 이곳 여수 지방에서는 '징어리', ‘밀’이라고 하는데,
그 멸치 떼가 밀물 때 둠벙처럼 움푹 파인 곳에 들어왔다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으면 그물로 건져내었다고 해서 ‘밀듬벙’이라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




밀듬벙을 벗어나며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제4구간은 범바위까지 1.39km 거리이다.
나무 가지 사이로 조금 전 머물렀던 밀듬벙 마을을 뒤돌아보니
마을 앞 해변의 모습이 오목하게 생긴 것이 마치 둠벙처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후 1시45분
4구간 종점인 범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색깔이 환상적이다.
아찔한 바위 절벽 위로 세찬 바닷바람이 몰아친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바다 빛에 매료되어 한참을 머물다 걸음을 옮긴다.




범바위를 벗어나면서 제5구간이 시작된다. 5구간은 용월사까지 1.73km 거리이다.
바다쪽으로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인지라 안전 로프가 길게 이어져 있다.
조금 전 머물렀던 지점을 뒤돌아본다.
범바위란 저 바위 절벽 전체를 칭함일까? 아니면 파도에 부딪치는 해안의 바위를 칭함일까?




바위 절벽 정상 부근을 가까이 살펴본다.
큰 암반에서 떨어져 나온 날카로운 바위덩이들이 금방 아래로 쏟아져 내릴듯 위태로운 모습이다.
아찔함을 느끼며 급경사 내림막길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오후 2시19분
5구간 종점인 용월사 입구에서는 갯가길이 잠시 콘크리트 포장도로와 연결된다.
도로변 사스레피 나무의 꽃봉오리들도 조만간 꽃망울을 터뜨릴 태세다.
우리나라 원산인 이 사스레피 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지방 바닷가 산기슭에서 흔히 접하는 나무이다.
키가 3m 이내로 크지 않은 이 나무의 잎,줄기,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류머티즘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그 옆에는 개나리도 샛노란 꽃을 피우기 위한 봉오리가 금방이라도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
매년 봄철이면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일면 천대받는듯한 감도 없지 않은 개나리.
하지만 꽃말이 희망, 깊은 정 등인 우리나라 원산의 이 개나리는 약용식물이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말린 것을 '연교'라 하는데, 한열(寒熱)·발열·화농성질환·종기·습진 등에 처방한다.
또한 개나리 열매껍질에서 추출한 물질에는 항균 성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월사 주불전인 무량광전 앞 뜰에는 해수관음상이 동쪽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1985년 세워진 태고종 소속의 이곳 용월사의 주불전의 현판은 '무량광전'이다.
무량광전은 원래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으로 극락전,무량수전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해수관음상 앞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는 깊고도 푸르다.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와 멀리 수평선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배.
지난 일주일간 도시생활에서 찌든 마음 속의 때를 말끔히 벗겨 낸다.




10여년 전인 지난 2000년에 만들어 세웠다는 해수관음상은 이곳 용월사의 첫째가는 상징물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바라는 대로 언제 어디서든 고통속의 중생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
관세음보살이라 하는데, 아마도 저 해수관음상은 세찬 파도와 맞서 싸우며 살아가는
뱃사람들을 위한 관세음보살이라 할 수 있으리라.




오후 2시32분
용월사가 뒤로 내려다 보이는 산길로 올라서며 월전포까지의 1.83km 제6구간이 시작된다.
갯가길이라는 이름만으로 우리가 도시에서 걸어다니는 길을 생각하고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는
오르막과 내리막 산길이 연이어지고 몽돌밭을 걸어 지나야하는 힘든 길을
3시간 여 동안 8km 이상 걸었으니 힘에 부칠만한 시간이다.
이곳 여수 갯가길을 찾는 많은 이들이 용월사까지 걸은 후 차량편으로 되돌아가는 이유를 알듯 하다.
하지만 매주 주말이면 산행을 떠나는 나에게는 그리 힘들지 않은 기분 좋은 길이다.





 

오후 2시46분
우측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산 사면을 따르는 숲길이지만
걷는 방향 좌측으로는 이처럼 그림같은 남해바다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는
두 눈을 아주 즐겁게 해주는 길이다.
용월사를 떠난 한동안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던 갯가길은 이제 서쪽 방향을 향해 이어진다.




오후 2시52분
넓고 평평한 해안가 큰 암반 끝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초소가 만들어진 바위 앞에 당도한다.
지도상에 표시된 초소바위인듯 하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10여명의 탐방객들이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새 휴식을 끝내고 모두 떠난 모양이다. 텅빈 초소바위가 외로워 보인다.




초소바위 위에서 남쪽 바다를 바라다 본다.
손에 닿을듯 가까운 바다 위에 작은 섬 3개가 두둥실 떠 있다.
저 작은 섬들이 바로 월전포 앞바다의 삼(三)섬이라 칭하는 외치도, 혈도, 내치도의 모습이다.
오래 전 얘기 듣기로는 저 섬을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에서 사려고 했지만
저 섬들이 여러 사람의 공동 명의로 되어 있어 사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오후 2시57분
제6구간 종점인 월전포에 도착해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작은 선착장 바로 앞에 비교적 규모가 큰 멸치 가공업소가 자리한 월전포.

월전포(月田浦)의 원래 이름은 '달밭금', '달밭구미'였다.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곳이 꼭 달을 받고 있는 모양이어서 '달을 받는 곳' 달받금이가 되었다.
이 또한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바꾸면서 달받이가 소리나는 대로 달밭이 되어 '월전포'가 된 것 같다.
아름다운 우리 이름을 되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오후 4시20분
오전 갯가길 탐방을 시작할 때의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 이유로해서
안심개까지 7구간 1.14km, 하동삼거리까지 8구간 1.27km 및
마상포까지의 9구간 2.37km. 총 4.78km 거리는 다음 기회에 찬찬히 둘러보기로하고
주마간산격으로 내달려 9구간 종점인 마상포 해변에 도착한다.

해변 가까이에는 머잖아 바다 한가운데에 설치할 굴 양식장을 위한 "채묘장"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다.




햇빛을 듬뿍 받는 남쪽을 향해 앉은 해변 가장자리 공터에는
4월 초가 되어야 제대로 피기 시작하는 유채꼿이 화사한 망울을 터뜨리고
짙은 향기를 내뿜는다.
5시간 여동안 15km 남짓을 걸어온 피로가 일시에 풀리는듯 하다.




해변가에서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행하는 길목
작은 집 담장이 요즘 보기 힘든 탱자나무로 이루어진 모습을 발견한다.
비록 이른 봄인지라 늦가을이면 노랗게 여물어 가시를 피해가며 매달리는 탱자 열매는 볼 수 없지만
젊은 시절 시골길을 지날 때 자주 접하던 탱자나무가 반갑기 그지 없다.




길고 억센 가시가 나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는 귀신도 뚫지 못한다는 옛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탱자 열매는 향기는 좋지만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하는 일 없이 허송세월하거나 게으름을 피울 때 "탱자탱자 논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오후 4시30분
마상포 해변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도로변에서 잔잔한 남해바다를 내려다 보며 귀가 채비를 한다.
마상포(馬上浦)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기록에서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의 옛 이름이‘몰산개’였었고 그 이름을 한자화한 것이 마상포(馬上浦)이니
아마도 예전 이 부근에 말을 방목한 목장이 있었을게다. '몰’은 말[馬]의 고어(古語)이다.
나쁜 일본인들 때문에 우리의 지방 역사까지 잊혀져가는 모습에 울화가 조금 치민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위안삼아
행복햇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탐방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