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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울산바위를 거쳐 동해바다 속초까지



2014년 1월11일 토요일 오전 11시 52분
설악산 울산바위를 오르기 위해 찾은 곳은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의 설악탐방지원센터.
문화재 관람료를 지불하고 입구를 들어서니 웅장한 설악의 산세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유난히 눈이 적게 내린 이번 겨울이지만 눈 앞에 보이는 바위 능선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모습이다.




설악동 소공원 남쪽에 위치한 권금성으로 오르는 케이블카는 오늘도 쉴새없이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추운 겨울철이어서인지 매표소가 크게 붐비지는 않는다.
수년 전 가을 엄청난 인파로 인해 5시간을 기다려야 케이블카를 탈 정도여서
포기하고 돌아섰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오늘은 권금성과 정반대 방향인 울산바위까지 올라야하는 여정이다.
이곳에서 울산바위 정상부까지 거리는 3.8km 이고, 소요시간은 편도 2시간 정도로 예상된다.




기둥을 한 줄로 세워 짓는다 하여 이름이 붙은 일주문은 불교 사찰의 첫 번째 문이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진 이후에도 중요 관광지에서는 꼭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야 한다.
이곳의 경우는 신흥사에서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의 입장료를 징수하는데,
신흥사를 둘러보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입장료를 받는 이와같은 불합리한 문제는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곧이어 거대한 청동 좌불상이 눈길을 끈다.
국토통일을 염원하여 지난 1997년 10월25일 만들어진 신흥사 경내의 통일대불 모습이다.
이곳 부처님의 좌대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16 나한상이 모셔져 있고,
통일대불 청동좌불상의 몸 안에는 또 다른 부처님 세상인 내원법당이 조성되어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하고 안락하게 하리라는 서원을 발하여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갖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이 좌불상의 높이는 14.6m, 좌대높이 4.3 m, 좌대직경 13 m, 소요청동 108톤이라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는 1,500여년 된 고찰다운 긴 담장을 자랑한다.
이곳 신흥사는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북쪽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자리한 건봉사의 말사였으나
지난 1971년부터 조계종 3교구 본사가 되면서 도리어 건봉사가 이곳 신흥사의 말사가 된바 있다.

현재는 설악산 외설악 지역의 주찰로 가장 역사가 깊은 사찰인 신흥사는
처음 신라 진덕여왕6년 (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향성사라 불렀으며
앞뜰에 9층석탑을 세우고 석가세존의 사리를 봉안하였다.




신흥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극락보전에 봉안된 불상은 아미타전이나 무량수전과 같이 아미타불이다.
침고로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적광전 또는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봉안한다.

이곳  신흥사에는 창건 당시 주조한 1400년 이상 된 범종과 조선 순조께서 하사하신 청동시루,
경판(지방문화재15호), 보제루(지방문화재 104호향성사지3층석탑(보물 제443호) 및
삼불상, 명부전, 선제루, 칠성각 등이 남아있다.




낮 12시15분
신흥사를 벗어나 내원암골이라는 이름의 작은 개울을 건너 작은 암자를 만난다.
신흥사 소속 암자인 안양암이다.
해발고도 300m 정도인 이 지점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오르막 산길이 시작된다.




낮 12시21분
설악동 소공원에서 1.4km를 지나온 해발고도 340m 지점에서부터는
내원암골이라는 작은 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산행로가 이어진다.
울산바위 정상부까지 2.4km를 남긴 이 지점부터는 눈 앞으로
흰빛으로 밝게 빛나는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겨울날씨답지 않게 급작스레 따뜻해진 덕분에 계곡의 얼음이 녹아 내리며
맑은 물이 작은 소리를 내며 바위 틈을 따라 흐른다.
30여분간 걷는 중 이마에 조금씩 배어나는 땀을 차가운 계곡물로 가볍게 씻어낸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의 찬 물이지만 정신이 번쩍 든다.




낮 12시33분
울산바위까지 2.2km를 남긴 지점에 이르자 눈길이 미끄러운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눈이 녹은 부분은 그 녹은 물이 다시 얼어 빙판을 이룬다.
많은 산행객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이젠을 착용한다.
한 손에 무거운 카메라를 든 나 또한 안전을 위해 준비해 간 아이젠을 등산화에 단단히 부착한다.




낮 12시38분
흔들바위까지 0.6km를 남긴 지점에는 이처럼 눈덮인 아담한 암자가 외롭게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내원암이란 표지석이 세워진 신흥사 소속의 이 암자는 신흥사와 같은 해에 창건되어
‘능인암(能仁庵)’이라 칭했으나 불과 40여년 후 처음 화재로 소실된 이후 조선 인조 때부터
가장 최근인 1936년까지 네번에 걸친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는 법당과 요사채만 남아있는
기구한 운명을 간직한 작은 암자이다.




내원암을 지나면서 이어지는 오르막 산길은 온통 바위 투성이 길이다.
파란 하늘 아래 희게 빛나는 울산바위의 일부를 계속 눈으로 보며 오르는 산길이다.




남쪽에서 비치는 겨울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울산바위.
흰빛으로 빛나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의 멋진 모습.
자칫 멋진 바위의 모습에 정신을 팔고 걷다보면 발을 헛디디기 십상이다.




낮 12시59분
뒷편인 북쪽으로는 거대한 암반인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찬 북풍을 막아주는 곳.
주위로 온통 거대한 암반으로 둘러싸인듯한 계조암에 도착한다.
신흥사(神興寺)의 부속암자인 이곳은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신흥사의 전신인
향성사(香城寺)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자장 이후 동산(東山)·각지(覺知)·
봉정(鳳頂)이 주지직을 계승하였고, 원효(元曉)·의상(義湘)을 비롯한 많은 고승들이
계속해서 수도하였으므로 '계조암(繼祖庵)'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해발고도 500m 정도 지점인 이곳 계조암은 석굴사원으로서 그 구조가 특이하며,
오랫동안 자연의 석굴을 이용한 수행처로서 많은 수도승들의 주목의 대상이 된 곳으로
석굴 내에는 아미타불상과 나반존자상을 모셨다.




석굴 내부에는 이처럼 법당이 만들어져 있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계조암 앞 좁은 뜰에는 흔들바위가 놓여 있다.
흔들바위라는 명칭은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100명이 밀어도 한 사람이 민 것과 같이 흔들릴 뿐이라 하여 붙여졌으며,
와우암의 머리 부분에 있다 하여 우각석(牛角石) 또는 쇠바위라고도 한다.
원래는 쇠뿔처럼 2개의 바위가 있었으나 불가(佛家)의 영기가 왕성함을 시기한 풍수지리가가
1개를 굴러 떨어뜨렸다는 말이 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힘센 장정 여럿이 밀어도 꿈쩍도 않을뿐이다.




오후 1시7분.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 흔들바위까지만 올라온 후 다시 설악동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 덕분에 1km 거리의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하는 울산바위로 향하는 길은 붐비지 않아서 좋다.
흔들바위를 뒤로하고 울산바위로 향한다.




오후 1시21분
울산바위까지 대략 700m 정도 남겨둔 해발고도 600m 정도 되는 지점의
큰 바위에는 '울산바위전망대'라는 안내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미끄럽고 위험한 바위 위에 오른다. 다행스럽게도 바위 가장자리 낭떠러지를 따라
철제 난간이 마련되어있지만,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 총 길이 2km 여에 달하는 울산바위를 바라본다.
남쪽에서 비치는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바위이지만
한 눈에 모두 보기는 힘들다. 좌측 부분을 우선 바라본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30여개의 암봉을 이루는 거대한 바위.
이제 울산바위의 우측부분인 남동쪽 부분을 살핀다.




위의 좌,우 부분으로 나누어 찍은 두장의 사진을 이어붙인 파노라마 사진을 만들어본다.
이제야 그런대로 남쪽에서 바라보는 울산바위의 장관을 느낄 수 있음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기이한 봉우리가 꾸불꾸불하여 울타리를 설치한 것과 같으므로
울산(蔚山)이라 이름 하기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후 1시35분
울산바위전망대를 떠나 이어지는 길. 이제 남은 거리 600m 정도의 길은
거대한 암반을 타고 오르는 길인지라 이처럼 안전시설을 따라 이어진다.
바위 사면을 따라 이어지는 길. 바위 사이 골에서 불어오는 겨울 바람이 무척 세차다.




오후 1시51분
울산바위까지 남은거리가 400m 이며 해발고도가 680m 라는 이정표가 붙은 지점에서
10여분 이상 급경사 오르막 계단을 힘들게 올랐건만 위를 쳐다보니
마치 끝이 없는 길처럼 보인다. 간혹 지나치는 사행객들의 숨소리가 무척 거칠게 귓전을 울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백개의 급경사 계단 중간에는 여러 곳에 잠시 쉬어 갈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잠시 한숨 돌리며 멈추어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바위가 주를 이루는 설악산의 진면목이 눈 앞에 펼쳐진다.




오후 2시7분
울산바위 정상 바로 아래의 북서쪽 바위 절벽쪽으로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올라
북서 방향으로 눈을 돌려본다.
기암괴석 너머 좌측은 인제군이고, 우측은 고성군이다.
기암괴석 바로 뒤쪽인 미시령에서 우측으로 흰눈에 덮인 마루금은
아마도 외설악 북쪽 끝부분인 해발고도 1,200여m 대의 상봉,신선봉쯤이 아닌가 싶다.




뒷쪽인 남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울산바위 정상부의 멋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설악산의 지질은 화강편마암·결정편암·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편마암류가 부정합으로 덮인 중생대층에 대규모의 화강암이 관입하여
차별침식 및 하식작용으로 지금과 같은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경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울산바위 정상부를 바라보니 글 내용이 이해가 된다.




오후 2시12분
울산바위 정상부 전망대에 오른다.
등산 자켓의 후드를 뒤집어 썼음에도 바람 소리와 더불어 세찬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해발고도 873m 울산바위 정상의 태극기가 세찬 바람에 휘날린다.
산정상부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은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된다.
북한산 백운대에서, 경남 창원 무학산에서도.
조금 전 잠시 머물렀던 북서쪽 아래 전망대가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서
시원한 겨울 바람을 맘껏 들이킨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동해바다 푸른 물이 파란 하늘 아래 밝게 비친다.
사진 좌측 끝부분 미시령 터널을 지나온 56번 지방도로는 델피노 리조트, 한화 리조트를 거쳐
동해안에 인접한 속초의 영랑호변까지 이어진다.




이 사진은 미시령 터널을 막 지난 지점에서 바라 본
울산바위의 북쪽 사면 모습이다.
10월 초순 어느날 오후에 찍은 사진인지라 남쪽에서 비치는 햇빛 때문에
울산바위의 장관이 선명치 못함이 아쉽다.




이 사진은 5월하순 어느날 오전 델피노 리조트 부근에서 찍은 사진이다.
길이 2km에 달하는 울산바위의 장관을 느낄 수 있음이다.

울산바위의 멋진 자태에 얽힌 전설 한 마디를 옮겨 본다.
오래 전 옛날 산신령이 지금의 금강산이 있는 자리에 일만이천봉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울산에 있던 큰 바위가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걸이다 보니 설악산 부근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모두 다 만들어진 후라서 이 바위는 금강산에 가보지도 못하고
현재의 위치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델피노리조트 부근 도로변에서 바라본 2월중순 어느 눈 내린 날의 울산바위는
이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울산바위 정상부 한켠에 자리 한 간이매점은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이곳 울산바위를 비롯하여 비선대 등 설악산 주요 등산로 휴게소와 매점, 산장 등에
16세 때부터 각종 물품을 등짐을 져 운반해 주는 일을 하며 어렵게 사는 50대 후반의 임모씨가
지난 20여년간 수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주위의 장애인과 홀로 사는 노인 등
불우이웃들을 돕는 일을 해오고 있음이 알려져 지난 2012년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일이 있다. 그 훌륭한 분의 건강을 빌어본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설악산의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중앙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1,707m 인 대청봉이고,
그 우측으로 중청봉,소청봉. 그리고 이어서 공룡능선이 이어진다.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는
설악산의 장엄함을 오랫동안 망막에 각인한다.




오후 2시38분
울산바위 정상부를 떠나 되돌아 오는 길.
흔들바위 앞 간이 매점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인다.
오후 시간이 되며 흔들바위 주위의 관광객들이 더 많아진듯 하다.

흔들바위가 놓여있는 저 큰 바위를 일컬어 소가 누운 모양을 한 넓고 평평한 와우암(臥牛岩)
또는 100여 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여 식당암(食堂岩)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후 3시21분
3시간 반 남짓 소요된 울산바위 정상까지의 산행을 마치고
오전에 지나친 통일대불 몸 속의 내원법당을 둘러 보고자 했으나,
저 통일대불 뒷쪽의 입구에서부터 헌금을 강요하는듯한 신흥사 관계자의 못마땅한 행태와
내부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는 얘기에 종교와 돈의 역학관계를 곱씹으며 설악동을 떠난다.




오후 4시29분
귀가길에 틈을 내 잠시 들린 곳은 강원도 속초시의 청초호변 설악대교 아래 갯배 선착장 앞이다.
중앙시장 부근과 중앙부두길 주변으로 산재한 생선구이집에서 생선구이 맛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폭 50여m 정도의 물길을 분주히 건너 가고 또 건너 온다.




갯배를 타기 위한 행렬이 설악대교 교각 아래에
길게 줄 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가 하면




바로 옆 선창에서는 해진 후의 출어를 앞두고 그물 준비에 여념이 없는 노부부의
바쁜 손놀림이 분주하다.
불과 십 수년전만 하더라도 여성의 탑승이 금기시되던 작은 어선들이건만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 요즈음은 대부분 이처럼 노부부가 함께하는 일터로 바뀌고 말았다.




태백산맥의 미시령(彌矢嶺:826 m) 부근에서 흘러나오는 청초천이 동류하면서
학사평(鶴沙坪)과 소야(所野)평야를 이루고 조양동(朝陽洞)을 거쳐 한 곳으로 모여 이루어진
면적 1.38 ㎢. 둘레 5 km의 청초호(靑草湖)는 좁고 긴 사주(砂洲)에 의해
동해와 격리된 석호(潟湖)로 북쪽에 입구가 열려 있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수군만호영(水軍萬戶營)을 두고 병선(兵船)을 정박시킨 일도 있었던 청초호.
오래 전 청초호의 물길이 흘러 나가던 폭 50여m의 물길 위로는 금강대교가 놓여 있고
금강대교와 연결된 남쪽의 설악대교는 동쪽 방향으로 바닷길을 새로 뚫어 500톤급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바닷길 위를 가로지른다.




설악대교 북단 다리 위에는 자그마한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전망대 위에 올라 속초항과 동명항을 포근히 감싸주는 방파제를 둘러본다.
아치형 철골구조로 된 금강대교 너머로 보이는 국제여객터미널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왕래하는 대형 선박이 정박해 있다.
정원 750명인 승객과 182TEU(길이 20피트, 높이 8피트, 폭 8피트 짜리 컨테이너 1개)의
화물을 적재하는 16,000톤의 저 배는 꼬박 20시간이 걸려 블라디보스톡까지 가게된다.




이제 우측으로 눈을 돌려 방파제 너머 멀리 동해바다를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듯 시원해진다.
 "묶을 속(束)", "풀 초(草)"로 표기되는 '속초'의 지명 유래에 관한 여러 이야기 중
마치 풀단을 모아놓은 것 같은 조도의 모습으로 연유했다는 얘기도 전해지는
조도가 방파제 너머로 눈에 들어온다.




조도를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보니
그야말로 새들의 낙원인듯 싶을 정도로 수많은 새떼가 노닐고 있다.
짧은 겨울 해가 기울기 전에 잠자리를 준비하려는듯 분주히 조도 주위를 날아 오른다.
나 또한 귀가 시간이 임박해옴에 따라 겨울 찬바람 몰아치는 전망대를 떠난다.




오후 4시47분
짧은 겨울 해는 청초호 수면에 긴 꼬리를 남기며 설악산 너머로 기울어간다.
오랜 옛날 이곳 청초호에 살던 수컷 용과 북쪽으로  2km 남짓 떨어진
영랑호의 암컷 용 사이에 얽힌 전설을 떠올리며
휴일 하루 행복했던 속초에서의 일정을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