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서북 능선 끝자락에 자리 한 바래봉 산행을 위해
전북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 소재 '전북학생교육원'을 뒤로 하고 오르막 경사길을 힘주어 올라간다.
해발 600m 남짓한 주차장에서 시작해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5분 여 올라야 산행로가 시작된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비교적 가파른 오르막 포장도로가 끝나고
해발 고도 700m 정도에서 비로소 산길로 접어든다.
하늘을 찌를듯한 낙엽송이 강한 피톤치드를 내뿜는 울창한 숲 길이 마음에 든다.
매년 6월에 접어들어야 만개하는 싸리꽃의 분홍빛이 화사하게 숲길을 치장한다.
이제 산행 들머리에서 1.1km 를 지난 지점이니 오르막 경사가 끝나는 세동치까지는 0.7km 남짓 남았다.
해발고도는 800m 를 훌쩍 넘어 900m 에 육박한다.
울창한 활엽수림이 이어지던 숲길은 다시 아름드리 낙엽송 숲으로 바뀐다.
잔뜩 흐린 날씨에 습도가 높아서인지 상의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숨소리가 점점 커진다.
해발고도 1,000m를 넘어서며 오르막 경사는 더욱 가파르게 변한다.
급경사지역임지라 나무 계단과 계단 난간 역할을 하는 굵은 밧줄이 1시간 동안 지친 다리에 도움을 준다.
주위에 들리는 소리는 산행객들의 거친 숨소리뿐이다.
해발고도 1,120m 인 세동치에 도착해 잠시 한숨 돌린다.
연분홍빛 철쭉이 반겨주는 세동치에는 시원한 바람도 솔솔 불어온다.
이곳 세동치까지 남동쪽 방향으로 이어지던 산행로는 이제 바래봉을 향해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이제는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다만 남서쪽으로 4.3km 떨어진 정령치에서 산행을 시작한 산행객들과
나처럼 전북학생교육원에서 산행을 시작한 산행객들이 합쳐지는 이곳 세동치부터 심한 정체가 이어진다.
여기서 바래봉까지의 거리는 5.1km이다.
눈 앞으로 보이는 1,140봉과 같은 자그마한 봉우리를 여러 개 오르락 내리락 해야하는 길이니
결코 만만한 여정은 아니다.
울창한 숲 사이로 1,140봉을 오르는 산행객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는 산행객의 행렬이 먹이를 물고 줄지어 다니는 개미떼와 흡사하다.
해발고도 1,100m를 조금 넘는 지점에서 남동쪽으로 눈을 돌려본다.
날씨가 좋았으면 지리산 주능선을 이루는 명선봉,형제봉,제석봉,천왕봉 등이 한 눈에 들어왔겠지만
구름 낀 흐린 날씨는 멋진 조망을 허락치 않는다.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의 대부분은 이와같은 녹음 짙은 활엽수림의 터널이다.
다만 간간히 연분홍 빛 철쭉꽃이 눈길을 사로잡을 뿐이다.
마치 멀지 않은 곳에 철쭉 군락지가 존재함을 암시하듯이.
진행 방향 우측인 남동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때 이른 더위로 인해 이미 절반 이상 져버린 철쭉꽃 아래로 흰 점이 몇개 찍힌듯한 상부운 마을이 보이고
그 바로 뒷편으로는 해발 1,225m 삼정산,영원령을 중심으로한 능선이 옅은 구름에 휩싸인 채 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
능선 너머 중앙부 멀리 계속 나가면 지리산 최고봉인 해발 1,915m 지리산 천왕봉이다.
그러나 구름 속에 갇힌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제석봉,촛대봉의 모습은 지난 날 산행시의 기억으로만 떠올려 본다.
도로에서 4km이상 떨어진 곳. 1650년경 장수황씨가 속세를 떠나 처음 정착했다는 곳이다.
산기슭에 집들이 띄엄띄엄 몇 호씩 있어 마치 뜬 구름같이 있다 하여
‘뜰 부(浮)’자와 ‘구름 운(雲)’자를 써서 부운(浮雲)이라고도 하며,
첩첩산중에 항상 구름이 머물러 있어 구름 속에 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부운이라고도 한다.
해발고도 1,115m 지점인 부운치에서 걸음을 멈춘다.
남동쪽 부운마을에서 3km 거리인 부운치에는 비교적 넓은 공터가 여러 곳 있다.
동행한 일행들과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다.
점심식사와 휴식을 끝낸 후 다시 산행길은 이어진다.
이제 바래봉까지 남은 거리는 3km이다.
오후 시간이 되며 산행객들은 부쩍 그 숫자가 불어난듯하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정도로 좁은 산행로인지라 추월은 불가능하다.
자연 진행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특산인 병꽃나무에 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주로 산지 숲속에서 자라는 이 나무의 꽃은
노랗게 피었다가 점점 색깔이 붉어진다.
야생화인 "벌깨덩굴"이 군락을 이루며 연이어 나타난다.
잎 모양이 깻잎을 닮았다해서 이름을 얻은 이 야생화는
꽃이 피는 방향이 모두 같은 방향인 것이 특징이며
마치 잎을 벌리고 혀를 내민듯한 이꽃은 높은 산지에서 잘 자라며
해발고도 1,500m이상에서도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발 1,000m 정도로 낮아진 능선길을 한동안 걸은 후
1,123m 봉에 올라서 진행 방향인 북쪽을 바라보니
3시간동안 이어진 지금까지의 산행길과는 판이한 별천지가 펼쳐진다.
붉게 핀 철쭉 군락들이 멀리 1.9km 거리의 팔랑치까지 마치 도로 표시를 한듯 이어진다.
수많은 산행객들이 천상의 화원에서 만발한 철쭉꽃에 파묻혀 있다.
자그마한 산 전체를 뒤덮는 전남 보성의 일림산 철쭉이나
조금은 짙은 색으로 넓은 황매평전을 뒤덮다시피 피어나는
경남 합천,산청의 황매산 철쭉과는 달리
이곳의 철쭉은 그 색깔이 무척 다양하다.
연분홍에서부터 짙은 붉은색까지.
수많은 산행객들은 넋을 잃고 천상의 화원을 바라보느라,
또 삼삼오오 모여 추억남기기에 열중하느라 오랫동안 꼼짝을 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붉게 보인다.
멀리 눈 앞에 보이는 봉우리인 팔랑치 부근 1.5km정도 구간에
철쭉이 집중적으로 피어나 천상의 화원을 만들어 낸다.
밀집한 구상나무와 더불어 간간히 자라는 주목 등이 아우러진 환상적인 구간이다.
어느곳으로 눈을 돌리든 한 폭의 멋진 풍경화가 연이어 펼쳐진다.
붉게 핀 철쭉 꽃이 이미 절반은 져 버린 후인지라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5월 마지막 휴일을 맞아 이제 1년 후에나 만날 수 있게될 철쭉의 향연을 즐기기 위한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 너머 멀리 마치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게 여겨지는 둥근 모습의 바래봉 정상부가 옅은 구름 뒤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 바래봉 부근의 철쭉 군락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팔랑치의 철쭉군락지로 들어서면서는 이미 거의 다 져버린 철쭉꽃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변덕스런 날씨를 탓할 수밖에 없다.
철쭉꽃이 만개했을 때 이곳을 찾으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음이다.
바래봉과 팔랑치를 찾는 산행객이나 관광객들이 사진찍기를 가장 많이 하는 장소인
이른바 포토존에서의 경치도 실망감을 안겨 줄 뿐이다.
팔랑치(八郞峙)는 과거 마한(백제국 창건 이전의 부족국가)시절
변한(가야국)과 진한(신라의 이전국가체계)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
8명의 장수를 배치하여 지키던 수비성터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철쭉꽃이 만개하는 시기를 잘 맞춰 이곳을 찾으면 이런 멋진 경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상나무 너머로 바래봉 정상부의 모습이 선연히 나타난다.
바래봉이란 본래 발산(鉢山)이라 하였으며,
바래란 나무로 만든 승려들의 밥그릇인 바리란 뜻으로
봉우리 모양이 비슷하게 생긴데서 유래했다하며,
속칭 삿갓봉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던 곳이다.
큰 나무가 없이 철쭉을 비롯한 키 작은 나무들만 자란다.
이유는 지난 1969년 축산 선진국인 호주의 도움을 받아
이 일대의 나무를 베어내고 초지를 조성하여 면양을 사육하는 시범목장을 설치한데서 비롯된다.
당시 시범목장이었던 운봉목장은 1972년부터 1976년까지 호주에서 면양 2천 7백여 마리를 들여와 방목하였는데,
면양들은 독성이 있는 철쭉을 먹지 않아 일반 잡초는 없어지고 철쭉만 남았다 한다.
바래봉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상나무가 부쩍 많이 눈에 띈다.
소나무과의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구상나무는
한라산,무등산,지리산,덕유산 등의 해발 5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자생한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며 수형이 아름다워 많은 품종이 개발되어
공원수, 기념수, 크리스마스트리용 등 으로 매우 인기있는 수종이다.
구상나무의 영어 표기는 'Korean Fir'이다.
바래봉 정상까지 0.6km를 남겨준 지점에 도착하는데 산행 들머리에서 4시간 이상 걸렸다.
수많은 산행객들로 인한 산행로의 체증 때문에 예정 시간보다 많이 늦어졌다.
할 수 없이 바래봉 정상부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4.5km거리의 용산마을 주차장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바래봉 정상부의 모습이다.
멀리 지리산 주능선이 흰 구름 아래 그림처럼 펼쳐진다.
좌측 끝 중봉의 호위를 받으며 천왕봉이 늠름하게 자태를 뽐내는 중에
우측으로는 제석봉,촛대봉,덕평봉,명선봉,토끼봉,반야봉,노고단,만복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좌측에 해발 1,875m의 중봉, 그리고 우측에 해발 1,806m의 제석봉을 거느린
해발 1,915m 지리산 천왕봉의 위용이 느껴진다.
해발고도 600m 지점에 이르러 하산길은 완만해지며
눈 앞으로 운봉읍내 전경이 펼쳐진다.
운봉(雲峰)이라는 이름은 넓은 벌판위에 섬처럼 들어서 있는
조그마한 봉우리들 때문에 운봉이라고 불러졌다고 전해진다.
또한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이 있는 용산리는
옛날 바래봉 북서쪽에 있는 해발 1,150m 덕두산 중턱의 용마름산이 헤엄치듯 움직이자
어느 도사가 칼로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산줄기를 잘라
용이 멈춰선 형국에 이룬 마을이라는 전설이 서린 동네이다.
5시간 반동안 이어진 산행이 끝나고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한달여 동안 이어지고 있는지리산 운봉바래봉 철쭉제"를 위한 임시 음식점들은
관광객들을 맞느라 부산하다.
비록 철쭉 개화시기가 조금 지난지라 만개한 상태의 철쭉꽃은 보지 못했지만
그나마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지난 일주일간 도시에서 찌든 때를 말끔히 벗겨 낸
가뿐함으로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위 지도상에 붉게 표시된 부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