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웅치면에 자리한 용추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철쭉군락지로 잘 알려진 일림산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에서 일림산 정상까지 거리는 3.8km 이다.
수년 전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사격선수들이 베이징의 고온다습한 기후에 대비해
적응훈련을 한 전북사격장이 위치한 전북 임실군의 거대한 댐인 용추제에 비교하면
비록 초라한 규모이긴 하나 이 저수지의 이름도 어엿한 용추제이다.
상상의 동물인 용(龍)을 유난히 좋아하는 배달민족의 후예가 지은 이름이니 오죽하랴.
거의 매년 철쭉이 필 무렵이면 이곳 일림산을 찾았던 내 경험에 비추어 아직 철쭉은 봉오리만 겨우 맺혔을 터.
붉게 핀 영산홍의 화려한 모습을 철쭉 대신 즐기며 걷는 길이다.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다다랐다.
용추계곡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의 이름은 용추교이다.
용추교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따뜻한 봄 햇살이 반팔 셔츠의 드러난 맨살을 간지르는 상쾌한 날씨이다.
이처럼 울창한 편백나무 숲을 지나는 피톤치드가 듬뿍 뿜어져 나오는 환상적인 길이다.
해발고도 200m 를 넘는 이 지점에서 일림산 정상까지는 이제 3.1km가 남았다.
편백나무는 높이 40m, 지름 2m에 이를 정도로 크게 자라는 나무로
흔히 일본말인 '히노끼'로 불리기도 하는 나무로 향이 좋아 침대등 생활 주변 가구로 많이 사용된다.
특히 우리 몸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진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10여분 이상 이어지던 편백숲이 끝나며 신우대라고도 불리는 조릿대 군락을 지난다.
옷자락을 스치는 댓잎의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그 느낌은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준다.
간혹 대부분 뽕짝 가요인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산행을 하는 몰상식한 인간들이 있다.
물소리,새소리,바람소리를 들으며 이어지는 행복한 산행길에서 반드시 추방해야할 몸쓸 짓이다.
일림산 정상까지 1.8km를 남긴 지점의 작은 쉼터에서 한숨 돌리며 이마의 땀을 씻어낸다.
이곳 일림산 산행로에는 이와같은 작은 쉼터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기에
노약자들이나 등산 초보자들도 여유있는 산행을 할 수 있음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철쭉 나무는 이제 막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할 뿐 꽃 소식은 요원하다.
간혹 양지바른 곳에만 이처럼 꽃이 피기 시작할 뿐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면한 남해 바다의 해풍을 듬뿍 먹고 자란 철쭉 봉우리들이 탐스럽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철쭉 군락의 붉은 기가 온 몸에 전해진다.
철쭉은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 하며,
산에서 나는 산철쭉은 '수달래', 물가에서 피는 것은 '물철쭉'이라 한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에서는 철쭉꽃 축제라 부르지 않고 수달래 축제라 부른다.
이제 해발고도가 600m 를 넘어섰다.
높은 지역이어서인지 이 부근에는 아직 꽃이 지지 않은 진달래 꽃들도 간혹 눈에 띈다.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예전에는 떡국에 반드시 꿩고기를 넣었으나
꿩고기를 구하기 어려운 민가에서 꿩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었던 연유로 유래한 이 말이
오늘은 '철쪽 대신 진달래' 라는 말로 바뀌게 된다.
철쭉이 피지 않았으니 같은 분홍 빛 꽃인 진달래를 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해발고도 614m 인 골치산으로 향하는 막바지 오르막 길은 철쭉 나무들로 터널을 이루는 곳이다.
그러나 이제 막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는 철쭉 터널은 삭막하기만 하다.
지난 수년간 이곳을 지나며 분홍빛 철쭉꽃에 묻혔던 몽환적인 기분을 떠올리려 애쓰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 부근에서 찍은 사진이다. 말 그대로 철쭉 터널을 헤치며 지나는 모습이다.
남쪽 멀리 일림산 정상을 바라보지만
600m 떨어진 일림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은 아직 피지 않은 철쭉 봉오리로 인해
옅은 분홍빛만이 점점이 눈에 띌 뿐이다. 그도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살펴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국내 최고의 철쭉 밀집지역이라는 일림산 정상부를 이루는 산 사면이 삭막하기만하다.
내년에는 꽃이 만개한 시기를 잘 택해서 찾아야지 하는 다짐만 해 볼 뿐이다.
이 부근에서 찍은 사진이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대리만족할 뿐이다.
일림산 정상석 앞은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수많은 산행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인파를 비집고 정상석 사진을 한 장 남긴다.
10여년전 보성군이 '일림산' 표석을 이곳에 세우고 철쭉제를 열었는데,
'삼비산'이라는 이름을 주장하는 장흥군민의 반발로 철거되었다가
지난 2005년 전남도에서 지명심의위원회를 열어 산 이름을
'일림산(日林山)으로 확정한 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곳 일림산을 장흥군에서는 상제의 황제 셋이 모여 놀았다 하여 삼비산이라고 불렀었다.
또한 황비가 내려왔다 하여 천비산(天妃山),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황비가 놀았다 하여 천비산(泉妃山),
안개가 자욱하다 하여 현무산(玄霧山) 등으로도 불리기도 했었다 한다.
일림산 정상을 떠나 동쪽으로 300m 떨어진 봉수대 3거리 전망대 부근 공터에서
동행한 일행들과 점심식사를 곁들인 휴식을 취한다.
물 맑은 남해 바다가 펼쳐진다.
옅은 안개로 인해 바다 너머 고흥군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날씨가 좋았으면 고흥군을 대표하는 팔영산도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을텐데..
오래 전 바다였던 저곳을 간척하여 농토로 만들어 식량을 생산한다.
그런 연유로 인해서 '득량(得:얻을 득. 糧:양식 량)'이라는 명칭을 얻은 곳이다.
바라보기만 해도,생각만 해도 배가 불러 온다.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 우리나라가 살 길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우리의 주식인 쌀 생산만은 자급자족을 해야한다.
핵무기는 없어도 살아 남을 방법은 찾겠지만, 식량이 없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점심식사와 휴식을 끝낸 후 4.6km 떨어진 한치재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동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2년 전 5월 초 한치재에서 시작하여 일림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행을 한 경험이 있기에
이 길이 걷기 편하고 아름다운 산길임을 알고 있다.
다만 우리 일행은 오늘은 한치재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3.5km 떨어진 대한다원 제2다원이 있는 회령리로 하산할 예정이다.
일림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627고지 전망대에서 잠시 멈추며 경치를 즐긴다.
흰 파도 넘실대는 바다는 언제 바라보아도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한 달여 전에는 저 아래 바닷가에 가까운 전남 보성 오봉산 산행을 하며 온종일 바다를 보았건만
실증이 나지 않는 존재가 바다인 것은 아마도 우리 생명의 기원이 되는 존재가 물이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97.5%가 바닷물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평탄한 능선길이 끝나고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비교적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또한 용추계곡을 거쳐 일림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바위가 없는 육산이었던데 반해
이 부근은 그리 크지 않은 바위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안전장치로 만들어 놓은 굵은 밧줄에 의지해 하산길을 이어간다.
분홍빛 진달래 또는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추억만들기에 여념없는 산행객들의 표정에서 행복을 읽는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분홍빛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곳.
벼랑 아래쪽으로 연무에 가린 바다는 보이지 않고, 녹음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들과
논밭의 곡식들만 눈에 들어온다.
사진 중앙부 나무숲에 둘러싸인 곳이 유난히 녹색으로 빛난다. 저수지는 아닌 것 같아 망원렌즈로 부근을 살펴본다.
향긋한 녹차향이 이곳까지 전해지는 느낌이다.
녹차밭을 바라보고, 녹차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이제 조금 전 벼랑 아래로 내려다 본 녹차밭이 있는 대한다업(주) 보성제2다원까지 남은 거리는 1.5km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철쭉 군락 사이를 지나는 멋진 하산길이다.
3시간 반 가까이 이어지는 산행길의 피로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산길이 끝나며 다원으로 들어선다.
우리나라 녹차 생산량의 4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전남 보성군의 수많은 차밭.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녹차를 생산하는 대한다업(주)의 제2다원의 전체 모습을 한참 바라본 후 걸음을 옮긴다.
우리 나라에 차가 처음으로 전래 된 것은 신라 선덕왕때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오며
차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 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남록주변에 심어 재배한 것이 효시라고 기록에 전하고 있다.
운치를 더해주는 저 넓은 녹차밭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
4시간여의 산행으로 피로해진 두 발의 피로를 풀기에 안성맞춤일듯 싶다.
그 후 일본 ·실론 ·자바 ·수마트라 등 아시아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는 중국에 이어 일본이 세계적인 녹차 생산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빠짐이 좋은 토양과 습도가 비교적 높은 지역이어야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3대 녹차 생산지역은 경남 하동,제주도, 그리고 이곳 전남 보성군이다.
물론 새로 돋은 가지에서 딴 어린잎을 차 제조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모두 동일하다.
우선 흔히 말하는 녹차는 발효하지 않은 것이며,
홍차는 85% 이상 발효한 차를 말함이다.
오늘날 인도 고산지대나 스리랑카가 홍차의 주산지이다.
색깔에 따라서 청차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만들어졌으나, 1890년경부터는 타이완[臺灣]에서 많이 생산하게 되었다.
제품의 빛깔이 까마귀같이 검으며, 모양이 용(龍)같이 구부러진데서 연유하여 우롱차(烏龍茶)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드넓은 차밭에서 차 잎을 따는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의 굽은 허리가 걱정된다.
찻잎을 따는 시기는 대개 5월 ·7월 ·8월의 3차례에 걸쳐 잎을 따는데,
5월에 딴 것이 가장 좋은 차가 된다고 한다.
늦은 귀가 후 내집 소파에 앉아 향긋한 녹차 한 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 생각을 하며
휴일 하루 행복했던 일정을 마감한다.
대한다업(주) 제1다원에서 지난 2008년 5월4일 낮에 찍은 사진이다.
그곳 제1다원은 관광객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 및 휴식처가 마련되어 수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