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산성을 거쳐 강천산으로 이어지는 단풍산행을 위해 도착한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산성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북쪽 금성산 능선 자락은 간밤에 내린 비가 그치며
낮은 구름들이 빠른속도로 움직인다.
해발고도 200m 가 채 못되는 대형버스 주차장에서부터 도로를 따라 20여분 경과하니
도로를 벗어나 금성산성으로 향하는 산책로로 들어선다.
아직은 보슬비가 조금씩 흩뿌리는 궂은 날씨인지라 피부로 느끼는 공기가 무척 차다.
하지만 물기를 잔뜩 머금은 숲길은 맑은날 보다 선명한 원색으로 눈에 비친다.
120여년 전인 1894년 12월 전봉준의 지휘하에 동학농민군 1,000여명이 20여일간 관군과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전원 희생 또는 체포된 금성산전투를 기리기 위한
동학농민혁명군 전적비를 지나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주차장에서 1.5km 남짓 지난 곳으로 해발고도는 300m가 조금 넘는 지점이다.
마치 인체의 모세혈관처럼 뻗어내린 소나무 뿌리를 바라보며
당시 동학농민군의 끈질기고 처절했던 투쟁의 역사를 되새겨 본다.
자연 암반을 토대로 세워져 있는 보국문(補國門) 앞에 도착한다.
보국문은 호남지방의 3대산성 중 하나인 금성산성의 외남문을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
내남문과 더불어 문루가 보존되어 있던 2곳 중 한 곳이다.
천혜의 절벽과 자연 산세를 이용해 축성한 산성인지라 외적의 침입을 방어함에는 훌륭해 보인다.
이제 보슬비는 멎었지만 쉴새없이 부는 강한 바람이 옅은 안개를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안개로 인한 불량한 시계가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눈 앞에 팔작지붕 구조의 내남문이 보인다.
총 길이 859m 인 내성의 남문인 내남문은 충용문(忠勇門)이라는 다른 이름을 얻은 곳이다.
지붕 구조가 흔치 않은 우진각지붕 구조임이 확연히 보이는
정면 3칸,측면 1칸에 면적 8평 남짓한 저 보국문에서는
남서쪽으로 6km 떨어진 담양읍이 한 눈에 보여야 하지만 짙은 안개로 덮여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작지붕 구조의 충용문으로 들어선다.
지난 1991년 이곳 금성산성이 문화재인 사적 제353호로 지정된 이후 1994년부터 시작된
성곽복원사업에 힘입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충용문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곳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금성산성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본다.
금성산성의 확실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쌓은 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410년(태종 10)과 1653년(효종 4)에 수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내성 안으로는 1개 마을을 형성할만한 넓은 평야지대가 있는데,
1688년(숙종 14) 당시만 해도 성내 주민호수가 136호이며
담양·순창·창평·옥과·동복 등지에서 거두어들인 군량미가 1만2000석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894년의 동학운동 때 폐성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고,
1994년부터 본격적인 성곽복원사업이 시작된 역사적인 곳이다.
충용문을 떠나 금성산성을 따르는 담양 오방길 중 제2코스인 산성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걸음을 이어가던 중 동자암이란 이름의 아리송한 암자 앞을 지난다.
담양오방길이란 동양사상의 하나인 오행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화,수,목,금,토 의 오행은 5가지 색깔과 더불어 다섯가지 방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토(土)는 황(黃)색이며 중심을 뜻하고, 목(木)은 청(靑)색이며 동쪽을 가리키고,
금(金)은 백(白)색이며 서쪽을 가리키고, 화(火)는 적(赤)색이며 남쪽을 가리키고,
수(水)는 흑(黑)색이며 북쪽을 가리킨다.
금성산성 북동쪽은 오후 산행을 끝내게 될 강천사가 위치한 전북 순창군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빗물을 머금은 단풍 색깔이 선연히 빛난다.
자연 지형지물을 이용한 이용한 포곡식(包谷式) 성곽을 가진 금성산성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또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분지로 되어 있어 요새로는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당시의 아픈 상처를 오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의 아름다움으로 치유코자 한다.
낮 12시42분
주초석의 흔적으로 미루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루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문터 부근에서 비교적 긴 시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산행로 탐방을 시작한다.
아침까지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세찬 바람과 낮은 기온으로 심한 추위를 느끼는 지라
그리 많지 않은 산행객들은 성벽을 바람막이로 활용한다.
우리의 자랑거리인 문화재는 이처럼 실질적인 도움도 우리에게 베풀게 된다.
낮 12시51분
북바위로 향하며 조금 전 휴식을 취했던 동문터 쪽을 뒤돌아본다.
북문이 있던 자리는 다른 외곽 성벽보다 높게 솟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벽을 따라 형성된 옹성이 있고, 그 끝 부분에 높게 쌓은 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우측 멀리 뾰족 솟은 시루봉이 멋진 자태를 드러낸다.
북바위로 향하는 길은 성벽 위를 따라 이어진다.
조금 전 점심식사를 한 연후인지라 몸이 무거워진 탓에 오르막 경사를 오르는게 만만치 않다.
더구나 세찬 서풍이 얼굴을 때린다. 한겨울의 추위를 온몸으로 느낀다.
성벽길 좌측은 전남 담양군이고 우측은 전북 순창군이다.
낮 12시58분
옛날 이곳에 북을 걸어 놓고 쳤다해서 북바위란 이름이 붙은 멋진 바위 봉우리.
바로 앞의 이정표에는 '운대봉'이라고 잘못된 이정표가 서 있다.
운대봉은 이곳 북바위에서 북서쪽으로 500~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산행에 나서기 전 마음 먹기로는 이 멋진 바위봉우리인 북바위에 올라
북쪽으로 펼쳐지는 담양호와 그 너머의 가을철 보름달이 산봉우리에 걸리는 멋진 경치 때문에
그 이름을 얻은 추월산이 어우러진 비경을 눈에 가득 담고자했으나
짙은 안개로 인한 불량한 시계 때문에 1.73km 떨어진 구장군폭포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전북 순창군 팔덕면이다.
오후 1시39분
해발고도 300m 중반인 연대삼거리까지 하산하는 구간의 거리는 1km 미만이지만
급경사 내리막길인지라 산행 초보자들에게는 무척 조심스런 구간이다.
더구나 아침까지 내린 비에 젖은 낙엽들이 무척 미끄럽다.
비로소 편안한 길이 나타나며 세찬 바람도 씻은듯이 가시고 따뜻함을 느낀다.
덩달아 북쪽 하늘의 구름이 걷히며 파란 하늘빛이 눈을 시리게 한다.
이제부터는 물 맑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넓고 편안한 숲길이다.
이끼 낀 바위 사면을 따라 흘러 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가야금의 현을 타고 흐르듯
경쾌한 물소리를 내며 낮은곳으로 내달린다.
바위 사면의 이끼를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는 이처럼 작은 소를 이루며 고였다가
다시 아래로 물줄기를 따라 흐른다.
자그마한 소 주위는 온통 낙엽으로 뒤덮였다.
머잖아 저 낙엽들은 얼음속에 갇힌 채 겨울을 난 후 얼음이 풀린 봄철에나
넓은 물줄기를 타고 내려가 세상 구경을 하게 될게다.
이 물 맑은 계곡에는 '선녀계곡'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어 있다.
오후 2시15분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볼 수 있다고 알려진
강천산군립공원으로 발을 들여 놓으며 처음 만나는 곳은
구장군폭포 앞 공터에 조성된 성 테마공원이다.
토우조형물, 화강암으로 만든 남녀 상징물, 구리로 만든 가족조형물 등등..
이곳에 성테마공원을 만든 이유는 맞은편에 구장군폭포를 이루는 암벽의 모양새가
남녀의 은밀한 부위를 닮았다는데서 기인한다.
거북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 암반 상단부의 형상은 거북이 앉아 있는 모습이고,
좌측에는 다른 한 마리의 거북이 기어 오르는 모습이어서 라고 한다.
두 마리의 거북을 볼 수 있다면 그 눈의 소유자는 비교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일게다.
오래 전 설담과 뇌암이 수도하였다는 수좌굴(修座窟)이 보인다.
그 아래 작은 정자인 산수정과 어우러진 모습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물줄기의 최대 높이 120m, 폭 5m 인 이 폭포는 인공폭포이다.
좌측의 폭포는 남성을 우측의 폭포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홍보물에서는 설명한다.
남근과 여근 형상의 구장군폭포. 3가닥 폭포 물줄기 중 거북바위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세찬 가을 바람에 흩날린다.
짧은 가을 해는 벌써 서쪽으로 기울어간다.
가을 햇살의 배웅을 받으며 구장군폭포를 떠나 선녀계곡을 따라 단풍길로 들어선다.
구장군폭포를 벗어나면서부터 양쪽으로 단풍나무가 울긋불긋한 넓은 산책로가 이어진다.
지금까지 지나온 산길의 한적함은 끝나고 인파가 붐비는 산책길이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북쪽 강천산군립공원 매표소에서부터 구장군폭포까지 구간까지 왔다가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구간을 탐방하기 때문이다.
이곳 강천산군립공원 최고의 명물인 현수교 아래는 온통 원색의 물결이다.
지난 주 다녀온 전북 정읍 내장산의 단풍나무는 잎이 무척 큰 단풍나무가 주류를 이루는 고로
멀리서 보면 그런대로 봐줄만 하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색깔도 칙칙하고 보기에 흉하다.
그러나 이곳 강천산의 단풍나무는 잎이 아주 작은 얘기단풍으로 가까이서 보아도 그 때깔이 곱기도 하다.
건너야 할 저쪽 끝을 조망한다.
온갖 색깔로 울긋불긋 물든 암반 사이를 가로 지른 다리 아래를 바라보니 아찔한 기분이 든다.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주위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8각 정자가 절벽 끝에 나 앉아 있다.
120m 높이에 만들어진 저 현수교의 길이는 75m.
현수교 너머 돌계단을 오른 후 만나는 곳. 저곳의 이름은 '용머리폭포'이다.
천년을 살다 승천하지 못해 피를 토하고 쓰러져간 용의 머리 핏자국이 남아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갈수기인 지금은 물 흐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요즘처럼 인파로 붐비는 단풍철에는 지킬 수 없는 법.
그나마 아침까지 내린 비 때문에 탐방객이 줄어든 것을 고마워하며 조심스레 현수교를 건너 간다.
수년 째 매년 이맘 때쯤 이곳을 찾아 아름다운 단풍을 눈에 담은 경험으로 볼 때
금년의 경우는 예년에 비해 단풍나무 잎들이 일찍 떨어져 버렸음을 느낀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날씨가 우리를 힘들게 하더니
짧은 가을을 느낄 틈도 없이 추운 겨울이 우리를 힘들게 할 것 같다.
현수교를 건너 120m 아래 쉼터에서 잠시 머물며
선녀계곡물과 어우러진 붉은 단풍나무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해 본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며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작은 가지로 이어지는 물길을 막아버린
나무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본능이 화학반응에 의한 붉은색 아름다움으로 이어짐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강천사와 도로를 마주한 삼인대 입구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노란 잎으로 물든 나무 한그루
온통 단풍나무로 붉게 물든 틈바구니에서 노란 잎을 가지에 매단 채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잎들이 싱그럽다.
흔히들 붉은색 단풍과 노란색 단풍의 다른 색깔에 대해 무심코 넘기지만
은행잎으로 대표되는 노란색 단풍은 붉은색 단풍과 그 생성 기전이 완전히 다르다.
붉은색은 화학작용에 의해 붉은 색이 생성되지만
노란 잎은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속하는 크산토필류 중 주로 제아크산틴·비올라크산틴 등에 의한 것인데,
이들은 이미 초봄 새싹 때 잎에서 만들어지고 여름에는 엽록소의 녹색에 가렸다가
늦가을이 되어 엽록소의 분해로 다시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작은 비각이 하나 보인다. 이곳이 '삼인대'이다.
저 비각 속에는 전북유형문화재 제27호인 높이 157㎝, 너비 80㎝, 두께 23㎝의
삼인대[三印臺] 비(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1744년(영조 20) 4월에 세운 것으로 홍여통(洪汝通), 윤행겸(尹行謙), 유춘항(遊春恒) 등
군의 선비들이 발기하여 대학자인 이재 (李縡:1680∼1746)가 비문을 짓고,
민우수(閔遇洙:1694∼1756)가 비문의 글씨를 썼으며 유척기(兪拓基:1691∼1767)가 전서(篆書)를 썼다.
사진의 節義塔(절의탑)은 지난 2003년 '순창삼인선양문화회'에서
순창 300개 마을의 돌 2개씩을 모아 그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인 이곳 강천사는
887년(신라 진성여왕 원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동여지승람에 의하면 강천사의 원명은 복천사(福川寺) 또는 복천사(福泉寺)라고 하나
선조 때 학자 구봉 宋翼弼이 강천사에 유숙하며
숙강천사(宿剛泉寺)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으니 이미 선조 때에도
강천사라고 일부에서는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첫번 째 문은 일주문이다.
이미 강천사의 일주문인 강천문도 지났다. 그러나 일주문 안과 밖의 풍경은 변함이 없다.
전국적인 명성의 담양 메타세콰이어가로수길의 장관에 비하면 보잘것 없지만
잠시 메타세콰이어나무가 숲길도 지난다.
1940년대까지는 화석으로만 존재하던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 1945년 중국 사천성 양자강 유역 마도계(磨刀溪)에서였다.
이곳 강천산 계곡은 자갈밭으로 침수가 빠르고
개종되지 않은 순수한 토종 단풍나무로 잎이 작고 색갈이 고우며
서리가 내려도 지지 않는 일명 애기단풍이 식재되어 있어
단풍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이곳 강천산의 몇몇 명물 중 하나인 병풍폭포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폭포는 자연이 아닌 “인공폭포”이다.
아래는 폭포 앞 안내판에 쓰여진 글 귀이다.
“이 폭포는 병풍바위를 비단처럼 휘감고 있는 폭포로 높이 40m, 물폭15m, 낙수량이
분당 5톤이며, 작은 폭포는 높이 30m, 물 폭 5m로 전설에 의하면 병풍바위 밑을 지나온
사람은 죄진 사람도 깨끗해진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
5시간 반에 걸친 단풍산행을 마치고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하며
강천산군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으며 행복했던 휴일 산행을 마친다.
가을철 갈수기에도 이처럼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는 이유를 이곳을 자주 찾는 사람들조차 잘 모른다.
그 이유는 구장군폭포 위 해발505m 제2형제봉 아래 해발 300m 정도 높이에 만들어진 강천제2저수지 때문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인근 팔덕과 금과지역의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지난 1984년에 착공하여 1986년에 준공한 총 저수량 30만2천톤의 저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