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23일 일요일 오전 9시50분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많기로 유명한 화양구곡 탐방과 더불어
그 남쪽에 위치한 도명산 산행을 위해 도착한 곳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소재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분소 주차장.
아침부터 찌푸린 하늘 아래 옅은 구름이 주위 산야를 뒤덮고 있다.
국립공원 입구임을 알리는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한 후 도명산 산행로로 접어들기까지
한동안은 이와 같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르는 길이다.
다행스럽게도 녹음 짙은 활엽수들이 하늘을 뒤덮듯 자라는 덕분에
공기는 무척 맑게 느껴진다.
도로 우측은 아름드리 고목들이 짙은 숲 그늘을 이루는 너머로 화양천 맑은 물이 흐른다.
짙은 숲 향기를 코끝으로 맡으며 화양천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를 귓가로 들으며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전 10시12분
화양천을 가로지르는 제2화양교를 지나며 좌측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립같이 아름답다.
자그마한 수중보 너머로 우렁찬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맑은 물 저멀리 멋진 바위들이 물에 비친다.
아마도 이곳 화양구곡의 제2곡인 운영담(雲影潭)인듯 싶다.
멋진 경치를 가까이서 보고파서일까?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진다.
오전 10시15분
운영담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멋진 풍경을 음미한다.
도열하듯 늘어선 석벽 아래에 강물이 깊은 담(소)을 이루고 있어 석벽이 물에 투영되는 모습이다.
하늘의 구름이 물 위에 비쳐 아름답다하여 그 이름을 얻은 운영담(雲影潭) 주변에는
넓은 모래사장까지 펼쳐져 있어 있어 조용한 피서를 즐기는 가족단위 행락객들에게 특히 좋을듯 싶다.
이 지점은 주차장이 있는 화양분소에서 1km를 지나온 지점이다.
운영담과 도로를 마주한 건너편 언덕에는 '우암 송시열 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계승하고 완성한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은거했던 화양서원 자리라고도 하는데,
비록 임진왜란 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고는 하나 중국 명나라 황제였던
신종,의종의 위패를 모신 '만동묘'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알기에 얄팍한 자존심이 되살아나며
내부로 발을 들여놓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송시열 유적지에서 채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화양천 물가에는 이처럼 예사롭지 않은 암반이 자라 잡고 있다.
이곳 화양구곡의 제3곡인 읍궁암(泣弓岩)이다.
조선 제17대 왕인 효종(재위 1649∼1659)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서 8년간 볼모생활을 한 일이 있는데,
즉위 후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하고 군제의 개편, 군사훈련의 강화 등에 힘썼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하자 우암 송시열이 새벽마다 이 바위에 엎드려 통곡했다는 곳이다.
요즈음 북한 핵문제 및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행동을 생각하며 불현듯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내용이 있다.
서양에서는 스페인,동양에서는 중국 사람들이 가장 간사하고 믿지 못할 족속들이라는 것인데,
젊은 시절 어는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몽테스키의 '법의 정신' 이었던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 107호인 "화양서원묘정비'이다.
묘정비란 서원 앞에 세워 서원의 건립 취지와 그 서원의 주인,
모시는 인물에 대한 문장을 기록해 두는 것으로 이 비는 숙종 42년(1716년)에 세운 것이었으나
조선 말기 대원군에 의한 서원 철폐 조치로 땅 속에 묻혔던 것을 광복 이후에 땅 속에서 파 내어 다시 세웠다 한다.
오전 10시 22분
진행 방향 좌측인 화양천 너머 물가에 멋진 고풍스런 건물이 한 채 눈에 들어온다.
제4곡인 금사담(金沙潭)과 그 위 암반에 세워진 암서제(巖棲齊)의 모습이다.
금사담(金沙潭)이란 이름은 물속 강바닥이 모래로 돼있어 햇볕이 들면 금빛을 띈다하여 붙은 이름이며,
강변의 넓고 거대한 암벽위에 세워진 암서제(巖棲齊)에서는 이곳에 은거하던 우암이 책 읽기를 즐겨하던 곳이라 한다.
그러나 우암이 살아 있던 그 시절에서 3백여년이 지난 현재는 울창하게 자란 나무숲으로 인해
멋진 암반의 형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이 사진처럼 이른 봄철에 찾아야 그 옛날 우암이 보았던 그 모습을 볼 수 있을듯하다.
이 사진은 2012년 4월 중순에 찍은 것이다. 암서제와 그 옆의 암반이 웅장함을 더해 준다.
금사담 주변은 온갖 형상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맑은 물과 더불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누구나 반할만한 멋진 곳인지라 오래모래 머물고 싶어진다.
오전 10시 24분
암서제를 뒤로하고 산행길을 이어간다.
조선후기 유학자 우암 송시열이 친구따라 이곳 화양동에 들어왔다가 경관에 반해서 9개월 동안이나 은거하는 동안
중국의 무이구곡을 닮았다하여 9곡의 이름을 손수 지었기에 화양구곡이란 명칭이 붙었다는 이곳.
더구나 주자학에 심취했던 송시열이 주자의 운곡정사를 본떠서 그 가운데다 집을 지은것이 암반위의 저 암서제다.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숲길에서 이날 가장 많이 만난 특이하게 생긴 이 야생화의 이름은 까치수염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일본,만주 등지에 분포하는 이 야생화는 6~8월에 꽃을 피우는데
봄철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며 여성의 월경을 고르게하고 어혈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며,
뿌리만 채취하여 생즙을 내어 마시면 골수염과 관절염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화양분소에서 1.5km를 지나온 지점인 화양 제3교 앞에서 지나온 뒷쪽을 돌아다 본다.
조금 전 지나온 암서제가 조그맣게 보인다.
택리지에도 이곳 화양동계곡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파곶물이 여기에 와서는 더욱 넓어지고 돌과 바위도 또한 더욱 기이하다."라는 기록이다.
여기서 '파곶'이란 이곳 화양구곡 중 제9곡인 '파천'을 일컬음이니
우암이 죽은지 1년 후 태어난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우암의 9곡 작명을 알고 택리지에 기술한듯 하다.
이곳에서 도명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3.2km이다.
산행로 입구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멋진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화양구곡 중 제5곡인 첨성대(瞻星臺)의 모습이다.
큰 바위가 첩첩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하여 '첨성대'랑 이름을 얻었다는데
천체관측 운운하는 얘기는 과장이 좀 심한듯하다.
층층이 쌓인 바위 부분을 가까이 살펴 보니 참 기묘한 형상이긴 하다.
더구나 맨 위의 바위는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듯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데, 같은 버스로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 40여명은 이미 종적을 감춘 상태이다.
하긴 제2곡인 운영담 부근에서부터 그들을 볼 수 없었으니 아마도 이곳 화양구곡을 어렵게 찾아와서
구곡의 모습이나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심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간듯 싶다.
아무 생각없이 발만 움직이는 기계도 아니고...참 한심하면서도 불쌍한 사람들이다.
도사가 도를 깨달았기에 도명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저 아무 생각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들과 동행할 가치가 없을듯 하여
지난 2011년 2월 초 올랐던 도명산 정상부의 모습을 떠올리며 발길을 돌려 화양제3교를 건너간다.
이제는 채운암까지 둘러봄은 물론 오늘 산행 예정구간에서 누락된 제9곡인 파천까지 둘러보기로 작정한다.
남쪽 방향인 도명산 산행로로 접어든 일행들과 떨어져 동쪽으로 향하면
이와같은 큰 암반을 만나게 된다. 제6곡인 능운대(凌雲臺)의 모습이다.
계곡변에 커다란 바위가 층을 이뤄 구름을 뚫을듯이 솟아있다 해서 얻은 이름이라는데,
지금은 그럼 느낌이 전혀 없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백년이 훨씬 지난 옛날의 모습을 찾기란 어려울 터.
더구나 멋진 경치를 즐기는데 방해를 하는 시설물들이 이곳 화양구곡에는 너무 많다.
이곳 능운대처럼 사찰에서 걸어둔듯한 연등(석가탄신일이 지났으면 철거해야하지 않을까?) 은 물론
명소마다 "흡연금지" , "수영금지" 등 현수막을 제멋대로 걸어놓아
경치를 감상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런 흉측스런 시설물들을 피해가며 사진을 찍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능운대 뒷편인 북쪽 오르막 산길을 잠시 오르면 채운사 경내에 도착하게 된다.
송시열(宋時烈)이 효종의 북벌계획에 호응하여 700명의 무사들을 양성하던 곳에
1655년(효종 6년) 혜일선사(慧日禪師)가 절을 창건하여 환장사(煥章寺)라 했던 곳이 이곳이다.
그 후 조선시대 말기까지는 7, 8동의 당우를 갖추고 있었으나 절이 의병들의 활동근거지가 되자
왜병들이 불태워 대웅전만이 남게 된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대웅전 서쪽 옆 한단 아래에는 요사채로 쓰이는 듯한 건물이 한 채 있는데,
현판에는 '채운암(綵雲庵)'이라 새겨져 있다.
이유인즉슨 바로 앞 도명산(道明山) 골짜기인 첨성대 부근에 고려 때 창건된 채운암(綵雲庵)이 있었는데,
1948년의 큰 홍수로 도괴된 뒤 두 절을 합치기로 하고, 그 재목을 옮겨 이 요사채를 세우고 절 이름을 채운사라 하였다.
또한 본래의 채운암은 1277년(충렬왕 3)에 도일(道一)이 창건하여 수도암(修道庵)이라 하였던 것을
혜식(惠植)이 중창하면서 채운암이라 하였다 한다.
대웅전 앞 뜰에서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조금 전 지나쳐 온 첨성대가 중앙에 보이고 그너머로 도명산에서부터 낙영산 가령산으로 이어지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 마루금이 옅은 구름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전 10시50분
채운사를 떠나 화양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너무나 호젓하다.
주차장이 있는 화양분소에서 2km 이상 떨어진 곳이다보니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까지 오기에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그 덕분에 이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물속으로 들어가 땀이 나는 몸을 편히 식힐 수 있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 반바지에 물속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아쿠아 등산화를 신고 오길 잘했다.
계곡가에서는 남쪽지방에서는 겨울에도 고사하지 않고 잘 자라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식물중의 하나인 기린초도 노란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다.
이 기린초의 잎은 봄부터 가을 사이 아무때나 잎을 따서 건조시켜 달여마시면
인삼과 비슷한 강장효과 및 알로에와 비슷한 영양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오전 10시58분
화양분소에서 2.2km를 지나온 지점에서 '와룡암'이라는 안내 간판을 만난다.
와룡암(臥龍岩)은 이곳 화양구곡 중 제 7곡을 이름이다.
그러나, 안내 간판 앞에서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계곡으로 내려가 물 속에 발을 내 딛은 후에야 비로소 이름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용이 누워서 꿈틀거리는 모양과 흡사하다하여 와룡암(臥龍岩)이란 이름을 얻은 곳.
오래 전 누군가가 큰 바위에 글씨를 새겨 놓았다.
와룡암에서부터 잠시동안 계곡물길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남동쪽 멀리 속리산 북쪽 자락인 해발 984m 청화산과 해발858m 백악산 사이 골짜기에서 시작되어
이곳으로 흘러내리는 화양천의 맑은 물은 얼음장처럼 차다.
이 물은 3km 남짓 더 흐른 후 화양 제1교 부근에서 달천과 합쳐지고
이어서 충주시내를 지나며 남한강에 합류하게 된다.
오전 11시 5분
화양분소에서 2.5km를 지난 지점에서 화양계곡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난다.
이름이 학소교인 디라를 건너 남쪽으로 산행길을 2.8km 이어가면
도명산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학소교 입구에서 가까이 보이는 학소대를 눈 앞에서 보기 위해 학소교를 건너지 않고
계속 동쪽으로 이어지는 화양계곡을 따라 계곡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옛날 언제인가 청학(靑鶴)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 하여 학소대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곳.
바위 틈을 뚫고 자라는 소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이곳이 제8곡인 학소대(鶴巢臺)이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 봉화의 청량산,충북 제천의 월악산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는 학소대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무수히 많은 것을 보면
유난히도 학(鶴)에 대한 애착이 강한 우리 민족인 것 같다.
학소대를 떠나 1.2km를 지나온 지점이니 화양분소에서는 3.7km 를 왔다.
파천(巴串)이라는 안내간판을 따라 물가로 내려온 곳.
물 속의 작은 모래 알갱이는 물론 아주 작은 물고기의 움직임까지 선명히 보일 정도로 물이 맑은 곳이다.
물가 한켠의 비스듬히 드러 누운 바위에 파천(巴串)이라는 글이 새겨진걸 보니
이곳이 제9곡인 파천임을 알것 같다.
파천(巴串)은 넓다란 바위면이 흰색을 띄고 있어 마치 바위가 티없는 옥과 같다하여 얻은 이름이라 한다.
누군가는 꿈틀대는 용의 비늘이 반짝이듯 보인다고도 하고..
"巴串" 이라는 한자는 '파천' 또는 '파곶'으로 불리운다.
파(巴)는 화(華)와도 서로 통하는 의미로 꽃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도 지녔다고 한다.
오전 11시53분
너무나 아름답고 조용한 곳에서 물 속에 몸을 담근 채 오랜 휴식을 취하니
지난 일주일간의 피로와 온갖 스트레스가 단번에 날아가는듯 하다.
오랜 휴식을 취한 후 2시간 전 일행들과 어울려 산행길에 나서느라 들리지 못한
화양구곡 중 아직 찾지 못한 제1곡을 찾아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낮 12시34분
오전에 지나쳤던 와룡암 부근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화양계곡 너머로 암반으로 이루어진 멋진 산봉우리들이 눈 하나 가득 들어온다.
가까이 보이는 봉우리가 도명산이고 그 좌측으로 낙영산도 눈에 들어온다.
이곳 화양동계곡은 깨끗한 물,그리고 경사가 급하지 않은 자연환경을 가진듯하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가족단위의 행락객이 많이 눈에 띈다.
낮 12시57분
주차장이 있는 화양분소 근처에까지 돌아왔다.
이 부근에는 이처럼 물가를 따라 이어지는 자연탐방로가 만들어져
어린 아이들도 자연을 즐기는데 위험이 없도록 되어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부모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인듯 싶다.
오후 1시 5분
오전에 산행을 시작한 화양분소 부근 주차장에서 반대쪽인 화양1교쪽으로 되짚어 길을 나선다.
600m 떨어진 화양구곡 제1곡인 경천벽을 찾기 위함이다.멋진 자태의 고목이 눈길을 끈다.
이 고목들이 있는 부분만 중앙분리대를 만들 정도로 볼품이 있어 보이는 나무임은 분명해 보인다.
화양분소에서 경천벽까지 되짚어 가는 600m 남짓의 이 길이 이날 지났던 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길이었다.
향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도로에 사람도 차량도 구경하기 힘든 너무나 호젓한 길이었다.
때 마침 점심시간인지라 드나드는 차량조차 끊긴 때문이었을게다.
오후 1시11분
화양구곡 제 1곡인 경천벽 앞에서 한동안 머물며 300여년 전 우암이 아홉 곳의 명소를 찾아
이름을 붙이던 그 심정을 헤아려 보려 애써 본다.
이곳 제1곡은 층암괴석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형상이라해서 '경천벽(擎天壁)'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허나 오랜 세월이 지나며 바위 틈을 비집고 자라는 나뭇가지와 녹음 우거진 나뭇잎으로 인해
바위의 모습이 살아나지 않음이 아쉽다.
참고로 이 사진은 2012년 4월 중순에 이곳에서 찍은 경천벽의 모습이다.
아직 나뭇잎들이 돋아나기 전이어서인지 층암괴석의 모습이 그런대로 눈에 들어온다.
모든 사물은 보는 거리와 각도에 따라서는 물론 보는 때에 따라서도 그 모습이 달라짐을 배운다.
경천벽 앞에는 이처럼 전망대에 의자 등 간편한 휴식시설까지 마련되어 있지만
이곳 화양동계곡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전망대 앞에 세워진 안내판마저 곤충의 배설물로 덮여있는 등 관리마저 부실하다.
이곳은 분명 속리산국립공원구역이므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관리하에 있는 곳이다.
하긴 오전 산행을 시작하면서 화양분소의 안내 직원에게 경천벽까지의 거리가 600m 임을 아는 내가
넌지시 경천벽까지 거리가 600m 정도 되느냐고 시험삼아 질문을 던졌을 때
" 아니요! 훨씬 먼 거리인데요!" 라는 답변이 나올 정도로 무식하고 무사안일한 관리를 하고 있으니..
오후 1시28분
3시간 반에 걸친 화양구곡 탐방을 마치고 오전에 탐방을 시작한 화양분소 입구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주차장 한 켠의 고목나무를 둘러 싼 돌탑이 나를 반긴다.
고목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 식물 중 능소화 잎도 보인다.
얼마 후인 7월이면 주황빛 능소의 미소를 보게될 이곳은 오래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풍년 농사, 집안의 평안을 빌던 '서낭당(성황당:城隍堂)'이다.
위 지도상에 붉게 밑줄 친 부분이 화양구곡 9개소 각각의 위치이며,
녹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걸어서 탐방한 구간이다.
수많은 산악회,동호회에서 화양구곡과 도명산,낙영산을 찾는다.
제발 수많은 인원을 인솔하는 운영진들은 도명산,낙영산을 산행하는 정확한 시간을 숙지하기 바라며,
또한 9개 명소의 위치도 모른 채 믿고 따라 온 많은 탐방객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제발 사전에 철저히 공부를 한 후에 많은 인원을 통솔 해 길을 나서기 바란다.
혹여 본인이 처음 가는 곳이거나 모르는 부분은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