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12일 일요일 오전 11시36분
매년 이맘 때면 붉게 핀 철쭉꽃이 산 정상부를 붉게 물들이는
충의의 고장 경남 의령군의 한우산 산행을 위해 궁류면 벽계리 벽계저수지 부근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해발고도 200m 를 조금 넘는 지점인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신록의 푸르름이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한우산 정상에서 북쪽 방향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로 잘 알려진 계곡은 찰비계곡이다.
찰비계곡의 물은 벽계동 마을을 거쳐 벽계저수지로 흘러드는데 반해
지금 오르는 산행로는 백운동계곡 또는 백학동계곡이라 부르는 물즐기를 따라 이어지는 산행로이다.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함을 이처럼 산행로를 뒤덮으며 자라는 싱싱한 수목으로 가늠이 가능할 정도로 울창한 숲이 이어진다.
근래 들어 비가 잘 내리지 않은 갈수기임에도 전형적인 육산인 한우산 정상에서부터 흘러내려
벽계저수지로 직접 흐르는 백학동계곡의 물은 맑고 깨끗하다.
경쾌한 물소리를 내며 보기만해도 시원스런 물줄기가 바위틈을 타고 흐르며 작은 폭포를 이룬다.
흐르는 물이 맑고 깨끗함은 이처럼 활기차게 움직이는 무당개구리의 존재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경우 주로 산속의 맑은 물에서 서식하는 무당개구리.
다만 이 무당개구리는 피부에서는 흰색의 독액이 분비되는데,
이것이 인체의 점막에 닿으면 강한 자극을 주는고로 맨손으로 만지는 일은 삼가야한다.
계곡가를 따르는 산행로 주위의 온갖 활엽수 중에서는 이처럼 예쁜 꽃봉오리를 지닌 나무도 있다.
괴불나무 꽃봉오리이다.
처음에 흰색으로 꽃이 피었다가 그 색깔이 노랗게 변하는 인동덩굴과 같은
인동과인 이 나무의 꽃도 처음에는 이 꽃봉오리처럼 희게 피었다가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게 된다.
두개씩 마주보기로 달리는 열매의 모양이 개불알을 닮았다하여 괴불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니 이름의 유래는 조금 망측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가을철에 탐스러운 붉은색 구슬처럼 익는 열매는 그 모양이 아름다운 편이다.
산기슭이나 응달진 골짜기에서 잘 자라는 이 괴불나무의 경우 가을이면 작은 구슬처럼 붉게 익는 열매를 식용하기도하며
나무잎은 이뇨·해독·종기치료·감기·지혈 등에 약용으로 쓰인다.
마치 봄을 잊은듯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던 날씨가
5월 초순을 지나며 여름날을 방불케하는 더운 날씨이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잠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풀어 본다.
다시 이어지는 산행길.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숲길이다.
이 야생화의 이름은 '산괴불주머니'이다.
예전 우리네 어린 아이들이 옷고름에 붙이고 다니던 장신구인 괴불주머니를 닮아 그 이름을 얻은 이 야생화는
해독작용이 있으며,진통제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 산지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제비꽃도 군락을 이루며 피어난다.
이 야생화는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고, 풀 전체에 해독·소염·소종·지사·최토·이뇨 등의 효능이 있어
황달·간염·수종 등에 쓰이며 향료로도 쓰인다.
유럽에서는 아테네를 상징하는 꽃이었으며 로마시대에는 장미와 더불어 흔히 심었다고 전해진다.
6월부터 8월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을 두고 꽃을 피우는 엉겅퀴도 벌써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한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는 엉겅퀴는 뿌리를 약용으로 하는데,
엉겅퀴에 함유된 실리마린(silymarin)이라는 성분은
간과 담낭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약초 성분 중 가장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큰 바위는 물론이고 작은 돌조차 거의 찾기 힘든 온통 흙으로만 이루어진 전형적인 육산인지라
산행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도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편안한 산길이다.
간혹 이처럼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는 구간에서는 시원한 산바람도 불어준다.
나무 숲 그늘에 숨어 있는 작은 야생화를 발견한다.
산행중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은대난초'다.
이 식물은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마치 외딴 산속에서 고이 자란 아리따운 숫처녀의 느낌으로 다가 온다.
그 자태에 걸맞게 꽃말이 "탄생"인 이 은대난초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에 분포한다.
해발고도 500m 를 훌쩍 넘은 지점에는 자그마한 무덤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행로 좌측인 동쪽 아래로 궁류면 운계리 마을 정경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곳이다,
일명 삿갓나믈이라고도 불리우는 우산나물도 이제 한창 땅 위로 솟아나기 시작한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서는 풀 전체를 '토아산(兎兒傘)'이라 하여
거풍,제습,해독,소종 증세에 쓰이며 특정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특히 이 우산나물은 여타 독성이 거의 없는 몇 안되는 약용식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오후 1시2분
이제 해발고도는 700m를 넘어섰다.
한동안 이어지던 오르막 산길이 끝나고 걷기 편한 완만한 경사의 숲길이 이어지며
처음으로 활짝 핀 철쭉꽃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오후 1시6분
해발고도 700m 를 훌쩍 넘는 지점에는 산행로를 가로지르는 임도가 만들어져 있고,
많은 관광객들은 승용차를 이용해 이곳을 거쳐 한우산 정상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 이르기도 한다.
자그마한 정자 쉼터를 지나 한우산을 향해 산행길을 이어간다.
이제 한우산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1.6km이다.
오후 2시19분
해발고도 750m 정도 지점의 헬기 이착륙장 부근 공터에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끝낸 후 이어지는 산행길.
정남향으로 이어지던 산행길이 남서 방향으로 바뀌며 눈 아래로 온통 붉게 물든 철쭉 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해발고도 766m 지점인 삼거리에 전망용 정자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눈 아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부터 전망 정자까지는 철쭉 군락사이로 목재 데크로 만든 탐방로가 이어진다.
활공장 부근 넓은 초원은 온통 진분홍빛 철쭉꽃이 활짝 핀 채 나를 기다린다.
2주전 전남 보성의 일림산에서 꽃봉오리만 맺힌 철쭉 군락에 실망하고 돌아섰던 아픈 기억을 일시에 보상받는 느낌이다.
오후 2시26분
이곳 한우산에는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을 위한 활공장이 여러 곳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은 제2활공장이다.
남동쪽으로 의령군 가례면의 산골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한 작은 쉼터가 마련된 활공장을 뒤로하고 산행길은 이어진다.
군락을 이루며 피어난 철쭉꽃의 빛깔이 유난히 진하다.
많은 벌떼가 꿀을 찾아 꽃으로 모여든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벌이 파란 하늘에 검은 선을 긋는다.
활공장에서 정자삼거리로 향하는 오르막 계단에서 발걸음이 무척 더디게 이어진다.
뒤돌아본 부드러운 능선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매년 이맘때 철쭉꽃을 찾아 떠나는 황매산,일림산,지리산 바래봉 등에서
엄청난 인파에 시달리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처럼 한산한 산행길에 놀란다.
산행객이 거의 없음이 너무나 다행스럽다. 여유를 느낀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땀 흘리는 힘든 산행을 피해 저 아래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한우산 바로 아래 위치한 주차장까지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오후 2시38분
해발고도 766m 지점의 삼거리 정자 주변은 온통 붉은 철쭉꽃에 파묻혀 있다.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붉은 홍조를 띈채 미소를 듬뿍 머금는다.
정자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해발고도 897m 인 자굴산이고,
서쪽으로 향하면 한우산이다.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한우산을 향해 산행길을 이어간다.
서쪽으로 640m 떨어진 주차장에 만들어 놓은 정자 이름은 한우정이다.
해발고도 800m 를 조금 넘는 한우정까지는 붉은 철쭉꽃이 마치 레드 카펫을 깔아놓은듯 여겨진다.
오후 2시51분
수많은 차량으로 극심한 혼잡을 빗는 한우정에서 잠시 멈춘다.
휴일을 맞아 대부분 가족단위인 수많은 관광객들은 이곳까지 차량을 이용해 도착하여
10분 남짓 거리인 한우산 정상까지 둘러본 후 다시 차량을 이용해 벽계리로 내려간다.
한우정에서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본다.
북쪽 산 사면은 온통 철쭉꽃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 하지만,
철쭉은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고도 하며,
산에서 나는 산철쭉은 '수달래', 물가에서 피는 것은 '물철쭉'이라 한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에서는 철쭉꽃 축제라 부르지 않고 수달래 축제라 부른다.
주차장이 위치한 한우정에서 한우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무척 붐비는 구간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곳까지 오르는 차량은 소형차만인지라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단체 관광객들이 없이 대부분 가족단위의 관광객이라는 점이다.
관광버스를 이용한 단체 관광객들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술 취해 비틀거리는 흉한 몰꼴이나
고성방가가 난무하는 등 꼴불견이 범람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한우산 정상을 지나 하산길로 들러서면 더 이상 이처럼 아름다운 화원을 볼 수 없게됨을 아쉬워하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한우정 주위로도 온통 진분홍 철쭉꽃이 화사한 빛깔로 그 자태를 뽐낸다.
철쭉이라는 이름은 확실한 것은 아니나 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는 뜻의
‘척촉(擲燭)’이 변해서 된 이름이라는 얘기도 들은바 있다.
철쭉을 먹이식물로 하는 곤충으로는 진달래류의 잎을 먹고 사는
'극동등에잎벌'의 애벌레가 있는데, 철쭉 잎 속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철쭉도 진달래과의 식물이다.
해발고도 836m 인 한우산 정상석 앞에서 잠시 멈춘다.
누군가는 '한우산'이라는 이름만으로 수입 쇠고기가 아닌 한우(韓牛)가 많은 산으로 알았노라고 한다.
허나 이곳에서 벽계저수지로 이어지는 계곡 중 하나의 이름이 '찰비계곡'이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는데.
차가운 비가 내린다는 의미로 숲이 깊어 한 여름에 내리는 비도 차갑게 느껴진다는 연유로
"한우(寒:찰 한,雨;비 우)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정상석 앞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려 보지만 짙은 안개로 주변 산 능선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날씨만 좋았으면 지리산 동쪽 능선을 비롯하여 최고봉인 천왕봉도 뚜렷이 보였을텐데...
31년 전인 1982년 4월26일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소속의 27살 난 우모 순경이
밤 늦은 시간부터 새벽까지 8시간 동안 카빈 소총과 수류탄으로 마을 주민 56명을 살해하고
34명에게 총상을 입힌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던 참극의 현장을 감추려는 안개일까?
당시에 희생된 수많은 주민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어 본다.
한우산 정상을 떠나 2km 떨어진 산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이제 산행길의 방향은 북향이다.
키 작은 억새군락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친근감으로 다가 온다.
오후 3시19분
친근감으로 다가오는 억새숲을 지나며 피부로 내리 쪼이는 햇살이 뜨겁게 느껴질 즈음
산행길은 고맙게도 시원한 나무 숲 속으로 이어진다.
짙은 풀냄새가 코를 찌른다. 만물이 가장 활발히 소생하는 5월에만 느낄 수 있는 신록의 향기이다.
오후 3시50분
산성산 정상석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한우산 정상에서 다시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리는고로
한우산에서 이곳 산성산까지 이어지는 2km구간에는 인적이 거의 없다.
또한 이 정상석도 최근에 만들어 놓은듯 하다.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벽계저수지 인근 벽계마을까지 거리는 2.3km이다.
이제부터는 걷기 편한 완만한 내리막 경사 숲길이 이어진다.
어찌 보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길이지만
6명의 우리 일행은 그 지루함을 대화로 풀어가며 웃음꽃과 함께 행복한 하산길을 이어간다.
오후 4시28분
30여분 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던 하산길은
이처럼 예쁜 집이 처음으로 길손에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마을길로 들어서며 산길은 끝난다.
사방을 둘러 봐도 온통 크고 작은 산봉우리만 보이는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과 그곳을 중심으로 사면을 이루는 능선이 무척 부드럽다.
그래서일까? 아늑함으로 나를 포근히 감싸 안는 느낌을 받는다.
산골마을인 때문에 넓은 농토가 부족함을 이와같은 계단식 논에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남 남해군의 가천마을에만 다랭이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남해안 지방의 작은 섬이나 지리산 자락의 산골마을 어디에서나 이와같은 다래이논을 만날 수 있다.
도로 변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찔레꽃 향기를 맡는다.
산기슭이나 볕이 잘 드는 냇가, 골짜기에서 주로 서식하는
장미과의 낙엽활엽관목인 우리나라 원산의 찔레꽃은
꽃말이 "고독"이어서인지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대중가요에 종종 등장하는 꽃이다.
오후 5시2분
5시간 반에 걸친 한우산 산행을 끝내고 귀가차량이 기다리는 벽계저수지에 도착해
산행길에 피로해진 발을 찬물로 씻으니 피로가 일순간에 가시는듯하다.
저수면적 14만 8760㎡로 산골마을의 저수지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이곳은
지난 1979년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곳으로
붕어,잉어 등이 잘 잡히는 낚시터로는 물론 야영장 설치 등으로 관광지로 발전하는 중이다.
벽계(碧:푸를 벽,溪)라는 이름 때문인지 저수지 물이 무척 맑고 깨끗해 보인다.
오후 6시2분
물 맑은 벽계저수지 변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동행한 일행 중 후미 그룹을 기다리며 시원한 음료수와 과일로 갈증과 허기를 떼우며 휴식을 취하는 동안
잔잔하던 저수지 수면은 석양 무렵이 되면서 조금씩 불어오는 강바람으로 인해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지금이 가을이었다면 저 수면위의 파문을 "추파(秋波)"라고 부르며
고혹적인 여인의 매혹적인 눈웃음쯤으로 여겼을텐데 하는 쓸데업쇼는 생각을 하며
행복했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위 지도상에 붉게 표시된 부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