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4일 일요일 오전 11시 48분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에 위치한 용문사 주차장에서 호구산 산행을 시작한다.
해발고도 100m 를 조금 넘는 주차장 한켠에는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동상이 서 있다.
김만중의 동상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따라 눈길을 돌리면
우리나라의 수천개 섬 중 제주,거제,진도,강화에 이어 섬의 크기가 다섯번 째인 남해 섬
중앙부에 위치한 앵강만에 떠 있듯 자리 한 작은 섬인 '노도'가 보인다.
나이 52세 때인 1689년(조선 숙종 15년) 노도에 유배된 그는 3년 후 55세의 나이로
유배지인 노도에서 생을 마감한다.
노도를 뒤로하고 용문사를 향해 오르막 길을 오르며 호구산 산행은 시작된다.
오전 11시54분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첫째 문을 상징하는 용문사 일주문 옆 야산 사면에는
진정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진달래가 분홍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사랑의 희열,신념,청렴,절제 등의 꽃말을 지닌 진달래꽃은 소월의 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오랜 옛적부터 우리 민족의 애(哀)와 한(恨)을 담고 있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꽃이다.
이곳 호구산의 이름은 납산,원산 등등 제각각으로 산행 중 지나치게 인색한 몇 안되는 이정표에 조차
보이지 않던 '호구산'이라는 이름이 용문사 일주문 현판에는 명확히 표기되어 있다.
호구산 정상 봉우리에서 용문사쪽으로 뻗은 지맥의 형태가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이라 해서 '호구(虎丘)산' 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낮 12시 1분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된 사찰이면 의례 만들어져 있는 부도군(浮屠群)이 이곳 용문사에도 있음은
용문사가 남해군에서 가장 큰 사찰이라는 얘기가 피부에 와 닿는 부분이다.
돌담을 쌓아 별도로 구획한 모습에 고색창연이라는 글귀로 표현함이 적당할듯 하다.
부도군을 지나며 길섶에서 피어나는 예쁜 흰 꽃을 만난다.
들별꽃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의 이름은 '개별꽃'이다.
'개'라는 접두어는 ‘야생’, ‘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꽃 모양이 하늘의 별을 닮았다고 해서 별꽃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잎과 줄기는 위장병, 치질 등에 효과가 있는 이 개별꽃은
꽃이 닫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제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라 한다.
제꽃가루받이는 유전적 다양성은 없으나 곤충에 의해 가루받이가 되지 않은 경우
후손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작은 개울 위를 가로지른 돌다리에 붙은 '천왕교'라는 명판 글씨를 일별하며 천왕문을 들어 선다.
천왕문 내부 좌 우측으로 목조 사천왕상이 각각 2구씩 배치돼 있다.
일반적으로 천왕문 안의 사천왕상은 마귀를 밟고 있는 형상이지만
이곳의 사천왕상은 부정한 양반이나 탐관오리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이로 미루어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직 민초들의 곁에 있고자 했던 용문사의 참모습인듯 한데,
과연 요즈음 이런 참된 종교인을 쉽게 볼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3대 지장도량의 하나로 불리는 용문사 대웅전 앞에는 매화꽃이 만개 직전이다.
802년(신라 애장왕 3년)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이 절 승려들이 승병으로 참여하여 왜군과 싸운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 호국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숙종(재위:1674∼1720) 때 나라를 지키는 절이라며 수국사(守國寺)로 지정된바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용문사를 벗어나 백련암으로 향하는 산길에서 이번에는 또 다른 봄 야생화를 만난다.
꽃말이 보물주머니,비밀 등인 현호색(玄胡索)이다.
한방에서는 덩이줄기를 정혈제·진경제 및 진통제로 쓰는데, 약재로 쓰는 덩이줄기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의약품인 활명수에는 현호색이라는 약재가 꼭 들어간다.
무리지어 핀 현호색 군락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또 다른 야생화를 만난다.
꽃말이 '질투' 또는 '바람난 여인'인 일명 가재무릇으로도 불리우는 얼레지다.
잎을 나물로 하고 비늘줄기를 약용한다.
낮 12시16분
1919년 3.1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용성 스님과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
성철 스님이 머물러 수행을 했다는 백련암 경내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백련암의 주불전인 보광전 앞의 백목련이 절반쯤 망울을 터뜨린 가운데
입구의 매실나무 몇그루에 피어난 매화꽃에서 진한 향기가 전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벚꽃과 매화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매화꽃은 이처럼 꽃자루가 없이 나뭇가지에 꼭 붙어서 피어난다.
또한 통상 다섯장인 꽃잎의 가장자리가 이처럼 둥글다.
(* 참고로 이 사진은 2010년 4월10일 마산 무학산 자락에서 찍은 벚꽃 사진이다.)
벚꽃은 위 사진에서처럼 한곳에서 대여섯개의 꽃자루가 길게 나와 꽃을 피운다.
그러나 매화꽃은 가지에 바로 붙어서 하나 또는 두 송이 정도의 꽃을 피울 뿐이다.
따라서 바람에 하늘거리는건 벚꽃이지 매화가 아니다.
또한 향기가 약한 벚꽃에 비해 매화는 향기가 진하게 나는 특징이 있다.
또한 벚꽃은 잎 가장자리가 둥글지 않고 사진에서처럼 톱니가 있다.
이곳 백련암의 주불전은 우리나라 사찰에서 보기 드문 보광전이다. 잘 모르는 이들은 대웅전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사찰의 주불전으로 가장 많은 것이 대웅전인데,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다.
대적광전(비로전 또는 화엄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며,
극락전(무량수전 또는 아미타전)의 경우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다.
남해 보리암의 주불전,청송 주왕산에 있는 대전사의 주불전도 보광전인데,
봉안하는 주불의 종류는 명확치 않은듯 하다.
백련암을 벗어나 염불암으로 향하는 길 양편의 동백나무가 선홍빛 동백꽃을 잔뜩 품고 있다.
한국,중국,일본 등의 따뜻한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주로 분포된 동백의 꽃말은 “신중,허세 부리지 않음”이다.
붉은 선혈을 연상시키는 동백 꽃.
봄철에 피는 매화나 벚꽃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피었다가 짧은 시간에 떨어지는데 비해 동백은 그렇지 않다.
또한 동백꽃이 질때는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진다. 낙화(落花)가 아닌 절화(切花)이다.
그래서 애절한 마음을 동백꽃에 비유한 시와 노래가 많다.
또한 동백이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머리가 뚝 떨어지는 것과 같다하여 불전에 바치거나 병문안 때 가지고 가지 않는다.
낮 12시22분
용문사 스님들의 수행처로 알려진 염불암을 지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걸린 대웅전 옆으로 석축을 쌓은 긴 담장 안으로 큰 건물이 두채 지어지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경기가 좋지 않아 힘들다는데, 종교시설들은 불경기일수록 호황인듯 하다.
공사하는 인부들에게 물어보니 대궐같은 건물 두채가 모두 '요사채'라고 한다.
요사채라함은 사찰 내에서 전각이나 산문 외에 승려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바
승려들이 식사를 마련하는 부엌과 식당, 잠자고 쉬는 공간이거나
또한 기도하러온 신도들이 잠깐 쉬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공간이기도하다.
건물을 너무 크게 돈 들여 짓는 것을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모두 못마땅해 하실게 뻔한데...
염불암을 지나면서 시작된 본격적인 오르막 산길에서 동행한 일행들 모두 힘겨워 한다.
더구나 이처럼 발 디디기가 무척 불편한 너덜길이 20여분 이상 이어지니 모두 기진맥진이다.
이제 해발고도 450m 정도 지점이니 조금만 더 힘을 내면된다.
힘든 몸을 화사하게 피어나는 분홍빛 진달래가 위로해 준다.
먹을 수 없는 철쭉과 달리 참꽃이라 부르기도 하는 진달래는
먹어도 되는 꽃이다.
꽃잎 하나를 따서 입 안에 넣고 가볍게 씹어 본다. 피로가 가시는듯 하다.
오후 1시3분
해발고도 560m 정도 지점에서 급경사 오르막 너덜길이 끝나고 잠시 조릿대 군락이 이어진다.
약한 바람에 사그락거리는 댓잎 소리를 들으며 피로한 다리에 힘을 불어 넣는다.
오후 1시9분
급경사 오르막길이 끝나고 서쪽 방향의 송등산과 동쪽 방향의 호구산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잠시 멈추어 한숨 돌린다.
그동안 북서쪽으로 향하던 산행길은 이제 북동쪽 방향으로 이어진다.
아직은 이른 봄철인지라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호구산 정상부를 이루는 암반 일부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후 1시19분
호구산 정상석 앞에 앉아 잠시 한숨 돌린다.
산을 오르며 벗어둔 자켓을 입지 않아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포근한 봄날씨에 바람 또한 잔잔하다.
정상석에는 산 이름을 "납(猿)산"이라 표기하고 있고, 정상석 뒷면에 '일명 호구산'이라 새겨져 있다.
이 봉우리를 북쪽 방향에서 바라보면 마치 원숭이가 엎드린듯 하다 하여 '원산(猿:원숭이)'이라 불렀으며
그 후 원숭이를 뜻하는 우리 고어인 '납'으로도 불렀다 한다.
아침부터 구름 낀 날씨에 옅게 낀 연무가 걷히지 않음이 조금 짜증스럽다.
남쪽 아래로 보이는 앵강만을 중심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보지만 시계가 선명치 못하다.
남동쪽으로는 오늘 하산길로 택한 돗틀바위 바로 앞의 550봉 너머로 멀리 보리암이 있는 금산 정상부의 능선이 보인다.
그 우측으로는 앵강만 가운데 자리한 노도가 보이고 그 우측인 남서쪽으로는
바닷가에 위치한 다랭이마을 윗쪽으로 설흘산 정상부의 윤곽만 보인다.
해발고도가 626.7m 로 표시된 정상석 너머로 보이는 북쪽의 시계도 좋지 않다.
날씨가 좋았으면 멀리 삼천포대교의 모습도 선명히 보였을텐데.
아랫쪽으로 보이는 농촌마을은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인데,
다정(茶亭) 마을은 차(茶)나무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석 서쪽으로는 옛 봉수대 터를 복원해 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으로도 나오는 이 봉수대는
동쪽의 금산 봉수대 및 남쪽의 설흘산 봉수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던 곳이다.
둘레 25m, 직경 8.1m 인 이 봉수대 내부에는 가로 0.6m, 세로 0.5m 의 아궁이를 갖추고 있다.
봉수대 너머로 보이는 금산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보지만
연무로 인해 멋진 암반의 자태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지난 해 12월 금산 산행시 접했던 그 모습만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남쪽 아래로는 앵강만 바다위에 외로이 떠 있는 노도가 눈에 들어오고
그 우측으로는 다랭이마을을 내려다보듯 뾰족하게 솟아있는 설흘산 정상부도 보인다.
사면이 쪽빛 바다로 둘러싸인 경남 남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꼽히는 앵강만은
마치 나비가 두 날개를 펼친 형상의 남해 섬 남쪽 아랫 부분이다.
앵강만은 꾀꼬리 앵(鶯)자에 물 강(江)자를 쓰고 있지만 어원은 명확치 않다.
꾀꼬리가 많이 울어 눈물이 강을 이뤘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또 주변에 있는 곳골이 꾀꼬리의 순 우리말인 곳고리에서 유래됐지만
일제가 민족정기를 흐리기 위해 한자식으로 바꿨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역시나 연무로 인해 봉수대의 윤곽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참고로 이 사진은 지난 2009년 2월14일 오후 설흘산 산행시 찍은
설흘산 정상부 봉수대의 모습이다. 날씨만 좋았으면 이런 모습으로 보였을텐데..
또한 이 사진은 지난 2012년 5월6일 오후 설흘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앵강만의 모습이다.
오늘도 날씨만 좋았으면 쪽빛으로 빛나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의 앵강만을
온 몸으로 느꼈을텐데 그러지 못함이 너무나 아쉽다.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호구산 정상부는 비교적 넓은 공터로 되어 있다.
북쪽 바다와 남쪽 바다를 조망하는 산행객들을 위한 대형 안내판이 2개 세워져 있는데,
그 중 남쪽 방향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이처럼 쓰러져 방치되어 있다.
쓰러진지 꽤 되었음직한 흉한 몰골과 위험한 시설물이 마음에 걸린다.
'군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남해군 담당공무원의 직무유기를 탓하고 싶다.
오후 1시56분
호구산 정상부 너른 공터에서 동행한 일행들과 함께 점심과 휴식을 취한 후 하산길에 나선다.
이제는 남동방향이다. 눈 앞으로 550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돗틀바위 윗 부분이 조금 모습을 드러낸다.
오후 2시16분
550봉 봉우리를 넘어서자 눈 앞으로 돗틀바의의 멋진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난다.
지도상에 '돗틀바위'라는 표기만 있을뿐 이름에 대한 유래를 찾지 못했다.
돗자리를 짜는 기계를 '돗틀'이라고 불렀었는데, 그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해 볼 뿐이다.
돗틀바위 부근을 가까이 살펴본다.
40여명 일행 중 앞서간 몇몇이 걸음을 멈추고 멋진 조망을 즐긴다.
휴일 하루 대도시의 삭막함을 벗어나 자연을 찾은 기쁨을 만끽한다.
해발고도 500m 남짓 되는 돗틀바위에서 한동안 머물며 조망을 즐긴다.
비록 연무로 인해 쪽빛으로 빛나는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지는 못하지만
이제 잠시 후 본격적인 하산길에 들어서면 더 이상 보지 못할 모습이기에.
오후 2시54분
한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던 급경사 내리막 산길이 끝나며 비교적 완만한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울창한 상록수 군락이 이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무를 편백나무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외형만 편백나무와 흡사할 뿐 이곳의 나무는 삼나무이다.
나뭇잎을 자세히 살펴 보면 삼나무 잎은 이처럼 바늘처럼 생겼다.
편백나무 다음으로 피톤치드 배출량이 풍부하다는 일본 원산인 삼나무.
우리나라 우주센터가 자리 한 전남 고흥 외나로도의 봉래산 기슭에는
수령 80년 이상 된 3만여그루의 삼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2009년 6월 그곳을 찾았을 때 1920년대 일본인들이 시험림으로 조성한 삼나무들이
이제는 높이가 30m이상의 거목으로 자라 난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오후 2시59분
해발고도 210m 정도 지점에서 산길을 벗어나 임도에 들어선다.
북서쪽 하늘 아래 40여분 전 지나온 돗틀바위가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임도 양측으로는 우람한 자태의 상록수 군락이 이어진다.
나뭇잎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 전 만났던 삼나무와는 형태가 완연히 다르다.
최근 들어 아토피 치료,암치료 등으로 각광받는 편백나무다.
소나무의 4배에 달하는 피톤치드를 내뿜는 편백나무가 유난히 많이 자라는 보물섬 남해에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은 이유를 알듯하다.
오후 3시5분
아름다운 앵강만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남향으로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 한
공동묘지를 지난다. 아마 이런 곳을 명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북쪽으로 산이 병풍처럼 북풍을 막아주고 남쪽으로 경사진 양지 바른 곳.
더구나 앞으로는 바다나 강이 내려다 보인다면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없으리라.
이름 모를 수많은 망자들의 무덤이 옹기종기 모인 용소공동묘지 뒤로는 돗틀바위가 병풍처럼 우뚝 서 있다.
이곳 용소마을에는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저수지에는 미륵이 탄생하여 맨처음 몸을 씻었다는
곳이라하여 '용소(龍沼)'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산행을 시작할 때 들린 용문사 또한
이곳 용소라는 이름에서 기원한 것이라 한다.
이곳 용소공동묘지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는 돗틀바위의 모습이 제대로된 참모습이 아닌가 싶다.
오래 전 옛날 농토가 거의 없는 외딴 섬지방이었던 이곳 남해에서는
가파른 경사의 한뼘 산등성이에 다랭이 논을 만들고,
왕골이나 골풀을 구해다 돗자리를 짜 연명하던 힘든 삶이었을게다.
저 바위 모습을 보고 돗틀을 머리에 떠올렸을 그네들의 부지런한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삼나무,편백나무 숲을 지나며 마치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한 고산지대를 지나는 느낌이었지만
한동안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이 나무를 보는 순간 이곳이 따뜻한 바닷가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이 상록수는 '사스레피나무'라는 이름이며,가지와 잎을 태운 잿물은 염색재료로 쓴다.
일본, 대만, 중국, 인도 등의 바닷가 산기슭에서 주로 서식한다.
오후 3시21분
이제 3시간 반여에 걸친 호구산 산행이 끝나가는 시간이다.
한적한 바닷가 작은 마을의 저 모퉁이만 돌면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봄은 이제 코 앞에까지 다가 왔다. 벚꽃도 이제 망을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주차장 입구 양지 바른 밭둑에서는 이처럼 예쁜 작은 꽃이 피어나며 봄을 알린다.
남사당패의 무등놀이 때 어깨 위에서 춤추는 어릿광대의 모습을 닮은 이 꽃 이름은 '광대나물'이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으며,풀 전체를 토혈과 코피를 멎게 하는 데 사용했다 한다.
오후 3시25분
광대나물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밭둑 바로 옆 양지 바른 공터에는 개나리가 만개했다.
우리에게 봄 소식을 가장 빨리 전하는 꽃 중 하나인 우리나라 특산의 개나리는
그 이름으로 인해 천대받는듯 하다. 또한 혹자는 나리꽃과 같은 종류가 아닌가 하지만
전혀 다른 물푸레나무과의 식물이다.
병충해에 강하고 배농,해독,항균작용을 가진 약용식물로 쓰였던 개나리.
개나리꽃을 바라보며 봄은 이미 문턱을 넘어섰음을 실감하고 휴일 하루 행복했던 일정을 마감한다.
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
덧붙여 참고로 남해군 섬 전체 지도에 앵강만과 호구산의 위치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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