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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3대 관음도량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는 남해 금산 산행기


2012년 12월2일 오전 11시36분
한려수도 쪽빛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산.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 중 하나로 알려진 보리암이 있어 더 유명한 남해 금산 산행을 위해 도착한 곳은
행정구역상 경남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에 위치한 한려해상국립공원 복곡탐방안내소 주차장.
새벽부터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온 천지를 뒤덮는 뿌연 안개를 만들어 낸다.




오전 11시53분
대형버스 주차가 가능한 복곡제1주차장에서 3.2km 거리인 승용차 주차가 가능한 제2주차장까지
요금 1,000원인 25인승 셔틀버스를 이용해 해발고도 600m까지 10분만에 올라 왔다.
걸어서 오르려면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구간이다.

4~5년 전부터 매주 1회 이상 산행을 하면서 나 자신의 힘으로 오르지 않고 기계의 힘을 빌린건 처음이다.
주로 쓰던 카메라 렌즈가 고장나 1개월 반의 A/S 기간과 60여만원의 비용을 부담한게 어제인데,
다른 렌즈를 마운트해서 출발한 오늘 산행인지라 내리는 비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
제2주차장에서 보리암으로 향하는 완만한 오르막 경사의 0.9km 구간은 일반 관광객들을 위한 콘크리트 길이다.
불과 10여m 앞이 분간이 안될 정도로 안개가 심하다.




낮 12시
해발고도 640m 지점을 지나며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눈을 돌려 본다.
맑은 날씨였으면 전국적 명성을 가진 상주해수욕장을 비롯한 한려수도의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졌겠지만
짙은 비구름과 뒤섞인 안개로 인해 말 그대로 오리무중이다.




낮 12시5분
좌측 길로 들어서면 보리암까지 100m, 우측 길로 들어서면 금산 정상까지 230m 를 남긴 지점.
간이탐방안내소 겸 불교용품 판매점이 있는 곳에서 남동쪽 아래로 눈길을 돌려 본다.
빗방울이 조금 가늘어지기 시작하며 마치 거짓말처럼 짙은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눈 아래 남해군 미조항 너머 바다 위에 작은 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두미도,노대도 욕지도,연화도 등등..




시선을 우측으로 돌려 보면 남쪽 방향으로도 조망이 트인다.
좌측으로부터 해발 166m 로 나지막한 야산인 해운산 너머로 호도,애도,떼섬,밤섬 등의 작은 섬들이 보인다.
해운산 우측으로는 은모래를 가진 상주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수욕장 앞의 작은 섬들인 목섬,승치도,삼여도까지 뚜렷이 보인다.




대장봉 바로 아래에 자리 한 보리암. 그 중간에는 특이한 형태의 바위가 멋진 자태로 서 있다.
마치 금방 굴러 떨어질듯 위태로운 자태의 저 바위 이름은 형리암(刑吏岩)이다.
대장봉 아래에서 마치 허리 굽혀 절하는 모습으로 생겨 그 이름을 얻었다 한다.




낮 12시12분
이제 비는 거의 그쳐 간다. 우의를 벗고, 배낭우의도 걷어낸 후
보리암은 나중에 하산 길에 들리기로하고 우측 길을 택해 0.23km 떨어진 금산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이 부근에서 행정구역이 바뀐다. 남해군 이동면에서 남해군 상주면으로.




잠시 연이어 이어지던 낙엽으로 뒤덮인 산길, 그리고 산죽 군락으로 이어진 산길은
이내 바위 투성이의 암반길로 바뀐다.
크기도 제각각, 형태도 제각각 마치 수석전시장 한 가운데 서 있는듯 한 느낌이다.




더구나 이 크고 작은 바위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거의 모든 바위에 글귀가 각인되어 있다.
혹은 이름 석자가,혹은 마음 속 느낌을 짧은 글귀 몇자로.
만약 나 또한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 살았다면 석수쟁이를 대동하고 이곳을 지나며
저 암반 여백 어딘가에 내 이름 석자와 느낌을 몇자 새겨 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낮 12시18분
금산 정상에 도착하여 망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정상석 앞에서 스마트 폰으로 내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이곳 남해 금산의 해발고도에 대해서는 각종 등산지도나 책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681m, 혹은 701m.  705m .  등등.
그러나 정상석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문장암 뒷편에 지난 1987년 남해산악회에서 세운 작은 정상석이 있는데
그 정상석에는 681m로 새겨져 있다. 또한 내가 소지한 고도계에 나타난 수치도 681m에 가깝다.




앞 사진의 정상석과 마주 보고 있는 망대로 오르는 계단 입구의 이 바위의 이름은 문장암이다.
조선 중종 때의 한림학사였던 신제 주세봉 선생이 "由虹門上錦山(유홍문 상금산;쌍홍문을 거쳐 금산에 오르다)"라는
글귀를 새긴 연유로 필법이 기이하고 씩씩하여 이 산과 더불어 웅장함을 다툴만하였다 하여 '문장(文章岩)'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일명 '명필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바위 우측에 글씨가 선명이 보인다.

그런데, 남해금산 38경 중 제 2경인 이 비좁은 문장암 앞에서도 음식을 펼쳐 놓고 게걸스레 먹으며
다른 관광객,산행객들의 탐방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어쩔줄 몰라 한다.
몇 발자국만 내려가면 넓은 공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요란한 냄새를 피우며 게걸스레 먹어대는 이 몰상식한 사람들을 어떻게 계도해야하나?




망대에 올라 동쪽 방향을 바라다 본다.
구름 아래 저 멀리 바닷가에는 지난 해 여름 가족 여행 때 다녀 온 물건리 방조제가 있을테고,
그 너머 바다 건너 어렴풋이 보이는 곳은 지리망산과 옥녀봉이 있는 사량도 일게다.
 그 앞에 매년 이름 봄이면 동백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작은 섬 수우도가 있을테지만
옅은 안개로 인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년 봄에는 수우도와 사량도를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




남쪽 아래로는 상주해수욕장이 한 눈에 펼쳐진다.
이곳 금산은 예전에는 신라 원효대사가 보광사라는 절을 지어 보광산이라 불려오던 것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서 100일 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어 온 산을 비단으로 덮어 준다는 약속을 한 후
산이름을 "금산(錦:비단금,山)"으로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여 금산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한다.




남해금산 38경 중 제 1경인 망대. 안내간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씌어 있다.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로 사용되었으며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봉수대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대여섯 명의 몰상식한 인간들이 봉수대 중심부 돌 위를 식탁 삼아 음식들을 펼쳐 놓고 게걸스레 음식을 먹고 있다.
너무나 화가 나서 몇 마디 충고를 했다. 말로는 "미안합니다!" 를 연발하지만...
'쇠 귀에 경 읽기'일게다. 제 버릇 개 주랴?




금산 정상부를 벗어나 350m 떨어진 단군성전과 그 두배 정도 거리의 상사바위로 향하는 길.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해발고도 670m 정도의 낙엽 쌓인 길.
더구나 대부분의 산행객,관광객들이 금산 정상부와 보리암만 둘러 보는 여정을 택하는 덕분에
인적없는 호젓한 길을 여유롭게 걸어 본다.




낮 12시27분
주 등산로에서 북쪽으로 80m 벗어난 이 길로 들어가야 단군성전이 나온다.
매주 전국의 유명산으로 산행을 하며 느끼는 점이지만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너무 급히 서두른다.
오로지 그 산의 정상에 올랐다 내려가는 일만을 목표로 삼는듯 하다.
그냥 앞만 보고 갔다 오는 산행. 나중에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한다.
단군성전으로 향하는 길은 적막하기 이를데 없다.




인적없이 조용한 단군성전 경내.
'단군성전'이란 한글 현판이 붙은 건물 앞에서 잠시 멈춘다.
나  자신 믿는 종교는 없으나,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항상 마음 속으로 비는 사람이다.

단군성전 안내 간판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우리 겨레의 시조인 단군할아버지를 모시고 전하여 내려오는 성역으로서
한배검님의 가르침으로 일문대종사이신 김연섬선생께서 많은 공력을 거쳐 1995년에
재건립하였다.  ......."




단군성전 건물 앞에 서면 서쪽으로 아름다운 남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눈 아래 보이는 바다는 앵강만이다.
그 너머로 낮은 구름에 휩싸인 남해군 남면 해안가의 모습이 보인다.
그 구름 너머 좌측으로는 봉수대가 있는 설흘산이 있고, 그 아래로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암수바위가 있는 가천마을이 자리한 곳이다.
설흘산 봉수대에서 이쪽 금산 쪽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경치에 탄복했던 기억이 새롭다.




낮 12시45분
상사바위를 150m 남짓 남긴 지점에서 진행 방향인 남쪽과 서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보면 볼수록 또한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각양각색인 상사바위의 멋진 모습이
항아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 위로 불쑥 솟은듯 눈에 들어 온다.
이곳 금산 정상부를 이루는 바위 능선 중 가장 크고 웅장한 바위가 저 상사바위이다.




서쪽으로는 "꾀꼬리울음 바다"라는 애칭이 붙어 있는 앵강만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앵강만 너머 바닷가로 튀어나온 곳이 봉수대가 있는 설흘산이고 그 너머 멀리 뾰족한 응봉산 매봉이 보인다.
설흘산 너머에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이 있고,
그 멀리 응봉산 너머 바다에 길게 누운 섬은 여수항에서 남으로 뻗어나온 갓김치로 유명한 돌산도이다.

흔히들 그냥 설흘산이라 하지 않고 '설흘산봉수대(雪屹山烽燧臺)'라 불리는 저곳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소흘산(所訖山) 봉수’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訖(흘)'이라는 한자의 뜻이 "산이우뚝솟을 흘"이니 아마 산의 모양에서 이름을 얻은듯하다.




낮 12시54분
금산 정상에서 서쪽 1km 남짓 지점에 자리한 상사바위에 도착해 남쪽 아래를 내려다 본다.
좌측 끝에 멸치잡이 항구로 유명한 미조항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이 펼쳐지고
우측 끝으로는 항아리 모양으로 둥그런 모습을 가진 상주해수욕장과 더불어
내륙쪽으로는 상주면 소재지의 오밀조밀한 주택들이 눈길을 끈다.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상주해수욕장 주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행정구역상 남해군 이동면이었으나 상주해수욕장이 전국적 명성을 얻으며
상주인구가 불어나게 되고 그에 따라 상주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된 저곳.
이제는 여름철이면 교통 체증까지 유발하는 저곳 상주해수욕장.

오래 전인 1976년 여름 비포장 도로를 오랜 시간 달려 하룻밤을 머물렀던 상주해수욕장.
그 당시 울창한 송림과 고운 모래를 가진 인적없는 해수욕장의 자연미에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일까?  이곳 남해 출신 여인을 만나 가정을 꾸린지 이제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눈길을 동쪽으로 돌려보면 금산 정상부 주위의 기암괴석들이 한 눈에 보인다.
중앙부 제일 높은 금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사자암,저두암,좌선대가 눈에 들어오고,
금산 정상부에서 수직 방향 아래로는 화엄봉,일월봉,제석봉,향로봉이 줄을 잇는다. 한마디로 만물상이다.
화엄봉 바로 우측의 바위봉우리는 대장봉이고, 그 바로 아래 금방 떨어질듯 위태로운 형리암이 보인다.
형리암 바로 아래에 이곳 금산을 상징하는 보리암이 깎아지를듯한 단애를이루는 만장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잠시 후 방문하게 될 보리암 주위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금산의 보리암은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과 서해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의 하나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관음도량은 모두 바닷가에 세운다.
인도 남쪽 해안의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나 중국 주산열도의 보타도(補陀島).
또 바다가 없는 티베트에서는 키추(Kichu) 강 유역에 있는 라사(Lhasa)를 관음성지로 삼았다.
이처럼 보리암 역시 우리나라 남쪽 바다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의 염원을 하나로 모은 곳이다.
금산에는 불교와 관련한 전설이 산자락은 물론 섬 구석구석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후 1시14분
상사바위는 이곳 남해 금산 정상부 능선을 이루는 바위 봉우리 중 가장 크고 멋진 자태를 뽐내는 곳이다.
몇몇 관광객,산행객들이 조망을 즐기뿐 인적이 거의 없어 조용한 분위기에 젖어 점심과 휴식을 즐긴 후 상사암을 벗어난다.
산에 올라서까지 김치,각종 반찬 등 요란한 음식 냄새 풍기는게 싫어 항상 김밥 한 두줄과 생수만 휴대하는지라
시원한 바다 조망을 즐기며 여유로운 점심 시간을 가진다.




서쪽을 바라보며 상사바위를 떠난다.
멀리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설흘산 너머로 여수항과 그 남쪽으로 이어진 돌산도가 길게 뻗어 있다.
중앙부 바위능선 바로 아래로 보이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은 두모마을이고 그 앞의 작은 섬은 '노도'이다.
앵강만이 시작되는 아름다운 한려수도는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유배지인 노도를 품에 안고 있다.
작은 배를 저을 때 쓰는 '노(櫓)'처럼 생겨서 "노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은 섬.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이 조선조 숙종 때 귀양살이를 한 섬이 바로 저곳이다.




오후 1시26분
보리암으로 향하는 길. 화엄봉 뒤쪽으로 난 급경사 내리막 길을 따라 이어지는 바윗길에서
남쪽으로 일월봉 너머 상주해수욕장을 보며 지난다.
우측에 보이는 바위가 일월봉인데, 일월봉은 세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日)자형이고
보리암 방향에서 봉우리 전체를 멀리 보면 월(月)자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한다.




온통 바위로 된 급경사 내리막 길은 화엄봉 뒤를 지난다.
바위 모양이 한자 '화(華)'자를 닮았다 하여 '화엄봉'이라 한다고도 하고,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고도 전해 지는 화엄봉.
뒷편에서의 모습은 전혀 다름 모습이다.
모든 사물은 앞과 뒤가 다르니 한 면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함을 새삼 느낀다.




화엄봉 뒷편을 돌아 보리암으로 향하는 산길에서 바라보는 보리암 주변 경치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깎아지를듯한 바위절벽인 만장대 위에 자리한 보리암이 어찌보면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매년 늦가을이면 찾곤하는 전남 담양 담양호변의 추월산 정상 바로 아래에도 '보리암'이라는 이름의 암자가 있는데,
그곳도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저 보리암 [菩提庵]은 누가 언제 세웠는지 확실치 않다.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인도 중부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고 하는 설화가 있는가 하면,
의상과 함께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원효대사가 강산을 유행하다가 이산의 승경에 끌려 들어 왔는데,
온 산이 마치 방광(防光)하는 듯 빛났다고 한다.




오후 1시31분
남해 금산에서 인파가 가장 붐비는 곳이 보리암 주변이고,
그 보리암에서도 가장 많은 탐방객이 몰리는 곳이 이곳 해수관음보살상 주변이다.
뒷편에 보이는 멋진 바위봉우리의 이름은 대장봉이다.
남해금산 38경 중 제 3경인 '대장봉(大將峰)'은 그 모습이 웅장하고도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있어 그 이름을 얻었다.
저 대장봉 좌측 편에 "용호농주형"의 바위가 있는 까닭에 (남해금산 38경중 제30경인 농주암)
"용호농주(龍虎弄珠)"가 있으면 반드시 대장(大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관음보살상 좌측으로는 화엄봉에 이어 일월봉이 그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화엄봉의 바위 모양이 "(華)"자 모양이라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는 부분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전하는 부분은 잘못된듯 싶다.
화엄종은 의상대사가 포교한 것이니 원효대사가 아닌 의상대사일 것으로 추측한다.




바다쪽으로 눈을 돌리면 남서쪽으로 멀리 상사바위가 보이는 아래로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상사바위는 이곳 금산에서 가장 웅장하고 큰 바위이면서도 가장 로맨틱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저 바위는 조선 19대 숙종대왕 시대에 전라남도 돌산에 사는 청년이 남해에 머슴을 살러 왔는데 주인은 자태가 빼어난 과수댁이었다.
이 머슴은 주인 마님의 자태에 반하여 애간장을 태우다 상사병에 걸려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직전에 이를 보다 못한 과수댁이 사람이 없는 금산으로 돌쇠를 불러 내었다.
이 바위에서 상사를 풀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낭만적인 야화가 깃들여 있어, 이바위를 상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금도 상사풀이 할때 썼던 샘이 벼랑에 남아있고 이 바위를 구정암 이라 부른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상사바위에서부터 우측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바위 능선의 바위 봉우리들은 제작각 이름을 갖고 있다.
상사바위 우측부터 사자암,좌선대,제석봉,일월봉 등이 그것이다.




보리암을 벗어나 남쪽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오전 내내 비가 내리고 찌푸렸던 날씨였지만, 이제 파란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저 보리암 자리에 초옥을 짓고 수행을 하던 원효는 이곳에 보광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보광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감사의 뜻에서
사찰을 둘러싼 산의 이름을 금산이라 부르게 했으며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쓴 『보리암중수기』에 따르면
보조국사가 세운 뒤 정유재란으로 불탄 것을 선조 40년(1607)에 승려 신찬이 고쳐 지었고,
효종 1년(1650) 스님들이 힘을 모아 다시 지었다고 한다.
보리암이라고도 하는 이 암자는 1983년 주지 성묵스님이 현 법당을 복원하였다.




오후 1시42분
남해금산 38경 중 제 15경인 '쌍홍문(雙虹門)'을 지났으니
이제 산행이 끝나는 금산탐방안내소까지는 1.7km 정도 남은 거리이다.
쌍홍문은 웅장한 바위에 2개의 큰 굴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뚫려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절경으로
여름철에 서늘한 바람이 불며 상주 쪽에서 금산을 오르는 관문이다.
옛날 세존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으로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사찰이나 옛 문화유적을 방문해 돌로 만든 아름다운 반원형의 돌문을 접하게 된다.
그런 문을 무지개처럼 생겼다하여 '홍예문(虹霓門)'이라 부른다.
지난 해 가을에도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의 선암사 홍예문의 단풍과 석양에 물든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바 있다.
그런데 이 쌍홍문은 홍예문이 두개가 나란히 붙었다해서 얻은 이름임에도
멀리서 보니 마치 큰 동물의 얼굴에서나 봄직한 무시무시한 두 눈같은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온다.




홍예문을 지난 직후 우측으로 보이는 멋진 바위를 만난다.
남해금산 38경 중  제 16경인 사선대(四仙臺)이다.
신성선녀 모양의 바위가 4개 모여서 이루어진 이곳에서
옛날 삼신산(三神山)의 사선(四仙)이 놀다가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쌍홍문을 지나 이어지는 하산길은 이처럼 돌이 많은 급경사 구간이다.
크고 작은 자연석과 바닥에 수북히 쌓인 낙엽이 어우러진 멋진 모습을 연출하긴 하지만
비에 젖은 바위와 낙엽이 무척 미끄러운 조심스런 구간이다.




 

오후 1시56분
도선바위 부근 주차장까지 1km남짓 남은 지점에는 오래 전인  1981년 12월에
이곳 한려해상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개설한 오래된 약수터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얼마 전부터 대장균 등 각종 세균이 검출된 후
먹는 물이 아닌 산불 발생시 등의 긴급용으로 용도전환된 샘물이다.
간혹 잘 모르고 마시는 이들이 있으니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대목이다.




오래된 샘터를 지나면서 비로소 완만한 경사의 걷기 편한 낙엽길이 이어진다.
주차장까지 0.6km 정도 남은 지점이며 이곳의 해발고도는 230m 이다.
한동안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힘을 주느라 조금은 피로해진 다리에 휴식을 주며 편한 걸음으로 바뀐다.




오후 2시12분
길섶 공터에 꽤 오랜 기간 많은 이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을 법한 돌탑이 서 있다.
지난 여름 지리산 둘레길 구간 중 남원 구룡봉 아래에서 이보다 더 작고 초라해보이는 돌탑을 지난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사무락다무락'이라는 이름을 지어 멋진 이정표까지 만들어 놓았었다.

사무락이라 함은 "사망(事望)". 즉,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이며
다무락이라 함은 담벼락을 뜻하는 남원 사투리이니
'사무락다무락'은 지나는 길손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빌며 돌을 올려 놓아 쌓이게 된 돌탑을 말함이다.
이곳에도 뭔가 탐방객들을 위한 배려의 손길이 있었으면 싶다.




오후 2시39분
산행을 끝내고 상주해수욕장 바로 위에 위치한 금산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북쪽 하늘을 올려다 본다.
옅은 구름에 휘감긴 금산 바위 능선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오후 3시3분
오늘 산행에 동행한 일행들은 당초 출발한 금산 북쪽의 복곡탐방안내소로 하산을 했음에도
산행 경로를 착각한 나는 그곳에서 11km 떨어진 반대쪽인 남쪽에서 귀갓길에 합류키로하고 그들을 기다린다.
20여분 전에 비해 하늘의 구름이 많이 걷혔다. 파란 하늘이 마음까지 밝게 한다.




금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 중 가장 크고 멋진 바위인 상사바위를 망원렌즈로 당겨본다.
조금 전 사진의 바위 능선 중앙부의 가장 큰 봉우리가 상사바위이다.
2시간여 전 내가 올랐던 자리에 몇몇 산행객들이 올라 멋진 바다 조망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이번에는 상사바위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300mm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일월봉, 화엄봉의 멋진 자태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우측으로 대장봉 바로 뒷편의 금산 정상부가 보인다.
오전에 내린 비로 인해 끼니를 굶은 때문인지 맑아지는 하늘 아래 수많은 까마귀 떼가 맴돌기 시작한다.




오후 3시22분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중 산악구간인 금산을 떠나 귀가길에 오른다.
이곳 '한려해상국립공원'은 동쪽의 통영시 한산도에서부터 서쪽의 여수시 돌산도까지를 일컬음이다.

그리고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여수 돌산도에서 시작해 서쪽으로는
전남 신안군 홍도까지를 일컬음이다. 2년 전 다녀온 홍도의 붉은 빛 일몰의 장관을 다시 보고 싶어 진다.




오후 4시33분
귀가길에 잠시 머문 곳은 오전 산행을 위해 금산으로 향할 때와 오후 귀가길에 지난
경남 사천시 삼천포항과 남해군 창선면을 잇는 창선삼천포대교 부근 유람선 선착장 부근이다.
짧은 가을 해는 다리 너머 남해군 창선면의 해발고도 468m 인 대방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오후 5시45분
산행 후 허기진 뱃속을 맛깔나는 생선회와  얼큰한 매운탕으로 달랜 후
행복했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삼천포항을 떠나 귀가길에 오른다.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 난 삼천포대교의 야경을 사진으로 담지 못하고 떠남이 아쉽긴 하지만
단체행동이니 어쩔 수 없는 일. 다음 기회로 미룬다.

조명등이 하나씩 들어오는 저 다리의 공식 명칭은  "창선삼천포대교"로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대교(길이 436m), 초양대교(길이 200m), 늑도교(길이 340m), 창선대교(길이 150m), 단항교(길이 340m) 등
4개의 섬을 잇는 5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