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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관'이라는 옛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얻은 대봉산 산행기


2012년 11월25일 일요일 오전 10시20분
대봉산 산행을 위해 도착한 산행 들머리인 지소마을 앞을 흐르는 물이 맑고 깨끗하다.
행정구역상 경남 함양군 병곡면 원산리인 이곳의 해발고도는 대략 500m 정도이다.
아침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졌던 추운 날씨이지만 햇살이 비치며 기온은 빠르게 올라 간다.




대봉산 주봉인 천왕봉을 향해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향해 잠시
소형 차량이 지날 수 있는 임도를 따른다.
산행객이 거의 찾지 않는 산이어서인지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낙엽송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길섶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그나마 콘크리트 길의 삭막함을 조금은 덜어 준다.




오전 10시34분
지소마을에서 500m 를 걸어온 지점이니 이제 천왕봉까지 남은 거리는 3.2km.
해발고도 580m 지점에서 콘크리트 임도를 버리고 낙엽이 온통 바닥을 뒤덮은 산길로 들어선다.
마치 산행로가 시작됨을 알려주기라도하듯 잔뜩 긴장한 다람쥐 한 마리가
숲속 바위에 앉아 산행로 방향으로 몸을 향한채 일광욕을 즐긴다.




상록수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숲길은 온통 헐벗은 나무들 뿐이다.
상록수 없이 활엽수로만 이루어진 숲은 요즈음 같은 늦가을이나 초가을에 가장 걷기 편한 길이다.
한여름동안 짙은 녹음을 우리에게 제공해주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내린 활엽수의 퇴색한 낙엽들이
온통 숲길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솜털처럼 푹신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걷는 숲길.
만약에 구름 위를 걸을 수 있다면 그 느낌이 이와같지 아니할까?




오전 11시3분
40분 가까이 부지런히 걷다보니 추운 날씨임에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간다.
해발고도 750m 지점 너른 공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천왕봉과 계관봉을 잇는 주능선상의 중간 지점인 해발고도 1,100m 정도의
주능선에서 시작되어 지소마을로 흐르는 물줄기를 이루는 계곡을 따라 오르는 산행로.
이처럼 맑은 물이 듣기 좋을 정도로 속삭이며 흐르는 이 골짜기에는 '두순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제 지소마을에서 1.8km를 왔으니 천왕봉까지는 아직 1.9km가 남았다.




오전 11시28분
천왕봉까지 1.3km 남짓 남겨둔 지점에서부터 한동안 무성한 조릿대 군락을 지난다.
녹색으로 빛나는 댓잎 사이를 헤치며 지나는 길.
옷깃을 스치는 댓잎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뚜렷이 들릴 정도로
20여명 남짓한 우리 일행 외에는 다른 산행객이 거의 없는 한적함이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오전 11시58분
천왕봉까지 650m 남긴 지점의 해발고도 1,030m 남짓한 지점에 작은 샘이 있다.
지금까지의 산행로 옆을 따라 흐르던 작은 계곡인 두순골의 발원지쯤으로 여겨지는 샘터 부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40여분. 다리에 조금씩 피로감이 느껴진다.




낮 12시7분
해발고도 1,111m 로 표기된 이정표가 있는 대봉산 주능선에 올라 우측 방향으로 천왕봉을 향해 발길을 이어간다.
주능선까지 오르는 길은 북동방향이었으나 이제부터는 남동방향으로 산행길이 이어진다.
키 큰 나무는 눈에 띄지 않고 온통 키 작은 철쭉과 억새풀로 뒤덮인 부드러운 능선을 따른다.
눈 앞으로 둥그런 모양의 봉우리 우측 끝으로 작은 돌탑 여러개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500m 거리에 있는 천왕봉이 저곳이다.




진행 방향 우측인 남쪽으로 눈을 돌려 본다.
책 속에서 문자로만 읽어왔던 첩첩산중이라는 단어를 체감하게 하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해발고도 1,000m 를 훌쩍 넘는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빈틈없이 늘어선 모습이다.
옅은 구름은 그 봉우리들을 넘나들며 가을 나들이를 즐긴다.




뒷쪽인 북서쪽으로 눈을 돌려본다.
부드러운 능선 저 너머로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멋진 봉우리가 눈길을 끈다.
천왕봉에 오른 후 들릴 예정인 계관봉의 모습이다.
그 우측의 뾰족한 바위 봉우리의 이름은 첨봉이다.




낮 12시24분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씩 쌓아 올렸음직한 여러개의 돌탑이 서 있는 천왕봉에 도착했다.
이곳 천왕봉 정상에도 인적이 거의 없다.
20 여몀의 우리 일행들은 조용하고 편안한 휴식과 점심식사를 즐긴다.
지난주 올랐던 영암 월출산에서 경험한 마치 시장바닥처럼 혼잡스럽던 산행길에 비하면
오늘 산행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다. 한적하고 편한 산행을 원하는 분들에게 권하고픈 산이다.




오후 1시14분
비교적 긴 시간동안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해발고도 1,228m 천왕봉 정상에서 남쪽을 바라다 본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을 옅은 구름이 휘감은 풍경 너머로 멀리 30km 남짓 떨어진 지점에 길게 드리운 마루금이 보인다.
바로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을 북쪽에서 바라 본 모습이다.
천왕봉 정상석 우측 바로 옆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해발고도 1,915m 인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이고
그 우측으로 제석봉,촛대봉,덕평봉,명선봉이 계속 이어지고 반야봉,노고단의 모습까지 눈에 들어 온다.




남동쪽 눈 아래로는 마평,광평리 방향으로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진다.
저 아래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에는 금년 7월부터 문을 연 대봉산 자연휴양림이 자리 하고 있다.
공해에 찌든 도시인들이 더 많이 삼림욕으로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에는 같은 정상석의 반대쪽에서 이제부터 찾아 갈 계관봉 쪽을 바라다 본다.
이곳 대봉산(大鳳산)의 옛 이름은 '괘관산(掛冠山)'이었는데 일명 '갓걸이산'이라고도 불리는 산 이름을 풀어보면
벼슬을 마친 선비가 갓을 벗어 벽에 걸어 놓았다는 뜻인바 큰 인물이 나지 못하게 일제 때 붙인 이름이라해서
지역민들이 뜻을 모아 대통령과 같은 큰 인물이 날 수 있도록 산이름을 대봉산으로 고쳤다 한다.
아울러 과거 천왕봉이었으나 일제 때 천황봉으로 고쳤던 이곳  봉우리는  천왕봉으로 원래 이름을 찾았고,
잠시 후 들리게 될  괘관봉은 계관봉(鷄冠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지난 2009년 4월7일자로 국토지리정보원의 고시에 의해 확정되었다 한다.




1.3km 떨어진 계관봉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이곳 대봉산의 주봉 역할을 하는 이곳 천왕봉보다 25m 가 높은 계관봉 정상에 오른 산행객 두어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 옛날 대홍수가 일어나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산 정상부가 갓을 걸어 놓을 만큼만 남았었다는 전설이 있어
괘관산(掛冠山), 혹은 갓걸이산으로 불리웠다 한다.




천왕봉을 떠나 계관봉으로 향하는 해발고도 1,100m를 넘는 능선길에서는
이처럼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은 곳이 간혹 눈에 띈다.
매년 11월에 접어들면 아이젠을 배낭에 챙겨 넣고 다니는 입장인지라
산행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 당부 말씀을 드린다.
조금 귀찮더라도 11월 이후 4월 중순까지는 배낭 속에 아이젠을 반드시 넣고 다니시길 바라며
아울러 해가 빨리 지는 계절에는 비상시를 위한 '헤드랜턴'도 필히 지참하시라고.




오후 1시38분
계관봉을 불과 100여m 남겨둔 지점. 동쪽 벼랑 끝에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작은 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비록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흔히 접하기 어려운 천년 묵은 철쭉나무이다.
높이 2m에 불과한 이 나무의 수령이 1,000년을 넘었다니 가히 놀랄만하다.
그 연유로 지난 2006년 고유번호가 붙은 함양군 보호수로 지정된 족보 있는 철쭉나무다.
우측 끝으로는 조금 전 머물렀던 천왕봉이 보인다.




오후 1시51분
해발고도 1,253m 계관봉 정상석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내 사진 한 장을 남긴다.
괘관산(掛冠山), 혹은 갓걸이산으로 불리우던 이곳  이름이 '계관봉(鷄冠峰)'으로 바뀐 이유는
계관봉 북쪽인 함양군 서하면 쪽에서 이 봉우리를 바라보면 마치 닭벼슬처럼 생겼기 때문이라 한다.




계관봉 바로 옆에 우뚝선 바위 봉우리가 멋진 자태를 뽐낸다.
이 봉우리에는 첨봉(尖峯)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흔히 여러 산에서 뾰족한 바위봉우리에 붙이는 이름이다.
전남 해남의 덕룡,주작산 산행시에도 첨봉을 만난 일이 있고,
경남 남해의 응봉산,설흘산 종주산행시에도 첨봉을 만난 일이 있다.
전남 진도의 최고봉인 첨찰산에 오른 일이 있는데, 봉수대가 있는 첨찰산 정상부의 형태도 뾰족한 모습이었다.




계관봉 정상석 앞에서 남쪽으로 조망해 본다.
좌측 끝으로 조금 전 올랐던 1.3km 떨어진 천왕봉의 모습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지리산 주능선의 장관이 눈길을 끈다. 정상부의 구름이 많이 걷혔다.




구름이 잠시 걷힌 틈을 이용해 지리산 천왕봉 정상부 주위를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본다.
이곳에서의 거리가 대략 30km 정도 되는 곳이지만 해발 1,915m 천왕봉의 장엄함이 느껴진다.
구름을 뚫고 솟아 있는 천왕봉 주위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우리가 사는 도시지역은 아직은 늦가을이지만 저곳은 이미 겨울이 시작되었다.




오후 1시56분
계관봉을 떠나 다시 대봉산 주능선길로 300m를 되돌아온 지점에는 9부능선이라 표기된 이정표가 서 있다.
그런데, 천왕봉에서 1km, 계관봉에서 300m 떨어진 이곳의 해발고도는 계관봉보다 높은 1,262m 이다.
이런 연유로해서 천왕봉 정상석에는 '대봉산 천왕봉'이라 표기했음에도
더 높은 계관봉 정상석에는 그냥 "계관봉"이라고만 표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는 통신시설을 위한 안테나가 서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대부분 산 정상부의 통신시설 주위에서 보게되는
어지럽게 얽혀있는 전선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곳 안테나는 태양열 발전으로 가동되기 때문이다.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바람직한 일로 여겨진다.




오후 2시19분
한동안 남서방향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경사의 걷기 편한 낙엽 양탄자길이 이어진다.
오래 전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구르몽'의 싯귀가 절로 떠오른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워낙 산행객이 드문 한적한 산이다보니 하산길의 산행로가 분명치 않다.
이제는 거의 다 져버린 억새밭을 지나며, 산길의 흔적을 애써 찾으며,
20여명의 일행 대부분은 천왕봉에서 바로 하산길로 나서고 계관봉을 거쳐 하산하는 우리 일행 몇몇이
여유로운 담소를 나누며 하산길을 이어간다.

또 하나의 싯귀가 떠오른다.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무에게도 밟혀지지 않은 채 낙엽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아, 나는 훗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오후 2시27분
계관봉을 떠나 남서방향으로 이어지는 해발고도 1,100m를 넘는 대봉산 주능선길에는 '9부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해발고도 1,100m 지점에서 능선길을 벗어나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두순골쪽으로 접어들며 마지막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본다.
나처럼 어리석은 인간도 산에 올랐다 나오면 지혜로운(智) 사람으로 달라진다(異)해서  이름을 얻은
"지리산(智異山)"인데, 오늘처럼 지리산 주능선을 여러 차례 바라 본 나도 조금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을지?




오후 2시53분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오느라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할 즈음
맑은 물이 흘러 내려 자그마한 소를 이룬 두순골 물가에 도착해 한숨돌린다.
맑은 물에 손을 씻고 세수까지 한다.
얼음장처럼 찬 물이 뼛속까지 시원하게 하니 4시간 이상 이어진 산행으로 피곤해진 몸이
다시 활력을 찾는다. 더구나 이제부터는 걷기 편한 완만한 내리막 경사길이다.




오후 3시13분
산길이 끝나고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로 들어선다.
5시간 여 전에 지났던 해발고도 580m 지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지소마을 어귀까지는 500m  남짓 남았다.
고도가 높은 곳의 낙엽송은 잎이 모두 떨어진데 반해 이곳은 아직 원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마지막 가는 가을을 눈으로나마 즐긴다.




병곡 면소재지인 원산리에서 2km 남짓 떨어진 자연마을인 이곳 지소마을은
인적도 거의 없거니와 이처럼 멋진 소나무 등 눈을 즐겁게하는 자연적인 요소가 산재해 있다.
여류롭고 상쾌한 산행을 마친 후의 행복감으로 걷는 걸음은 마치 날아갈듯 가뿐하다.




오후 4시10분
지소마을 한켠 두순골 맑은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는 물가 공터에서
산행을 마친 일행들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 간단한 음료와 간식으로 갈증과 허기를 떼운 후
행복했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치고 귀가길에 오른다.

이곳 지소마을이 속한 원산리는 60여 가구에 인구 120여명 남짓한 전형적인 산골마을로
다랭이 논에서 수확하는 쌀 외에  밤, 매실, 산나물,약초 등이 주생산 품목인데,
옛날에는 마을 이름을 원팅 또는 원통(員通)이라 했는데,
이는 고을 원님이 이 마을을 통과하여 지나간 뒤부터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고 있으며,
현재의 원산(元山)은 1914년 일제 강점기 때 행정구역 개편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