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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를 품에 안은 명성산 산행기


 

2012년 10월 7일 일요일 오전 10시40분
가을철 억새축제로 유명한 명성산 산행을 위해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호수 주차장 부근에서
등룡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을 따르는 등산로를 택해 산행을 시작한다.
10월12일부터 시작될 축제 기간을 피해 찾은 명성산이지만 산행객과 일반 관광객이 뒤섞여
산행로 초입부터 많은 인파로 북새통이다.




비록 많은 인파로 붐비기는 하지만 오르막 산길이 비교적 넓은데다
이제 막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에 취하고 이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풍경에 취해 걷는 길은
행복한 미소가 절로 우러나는 길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노란색,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단풍이 점점 짙어진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날씨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가을철로 접어들며 아침과 낮의 일교차가 심한 청명한 날시가 이어진 탓에
금년 가을 단풍은 예년에 비해 무척 고우리라는 언론의 보도 내용에 수긍이 간다.




오전 11시 15분
산행 들머리에서 2km를 지나온 지점에서 아담한 크기의 폭포를 만나 잠시 걸음을 멈춘다.
등룡폭포라는 이정표가 붙은 곳이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이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올 가을 처음 접하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비록 아직은 단풍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라 초록빛을 띈 나뭇잎이 더 많기는 하지만.




이 폭포의 이름은 등룡폭포이다. 오래 전 옛날 저 폭포 밑에는 용이 한 마리 살았는데
그 용은 어느날인가 소(沼)의 물안개를 따라 등천(登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폭포의 이름이 "등룡폭포(登龍瀑布)다.




오전 11시 21분
이 등룡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깊은 소를 가로지르는 철제 다리를 지나면서부터
계곡을 벗어나 왼쪽으로 본격적인 등산로가 열린다.
다리를 건너며 뒤돌아보니 암반으로 이루어진 432봉에서 흘러내린 능선 바위틈에서 자라는
키 작은 활엽수들도 하나 둘씩 원색의 옷으로 탈바꿈을 시작한다.




해발고도 400m 를 넘는 지점에서부터 우측으로 철조망이 이어지고
사격장 포성에 놀라지 말라는 경고판이 붙은 곳을 지난다.
출입이 통제된 철조망을 우측에 끼고 비교적 경사 급한 오르막 신길이 이어진 끝에
나무숲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억새 군락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전 11시52분
갈수기임에도 비교적 수량이 풍부한 약수터를 만난 많은 산행객들은
혹은 갈증을 풀고, 혹은 빈 물통에 물을 채우는 등 분주하다.
신라 효공왕 5년(901년)에 스스로 왕을 칭하고 후고구려를 세웠던 궁예(弓裔)는
말년에 한 때 자신의 부하였던 왕건에게 쫓기는 중 이 부근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평원인데다 사방이 트여 조망이 좋고 용수(用水)조달이 쉽기 때문이었을게다.




낮 12시 2분
약수터를 지나면서 완만하고 탁 트인 넓은 오르막 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어느새 스스로도 의식못한 채 억새밭 한 가운데 들어서 있음을 알아 차린다.
사방을 둘러 봐도 온통 억새꽃만이 눈에 들어 온다.




햇빛을 받은 억새꽃이 은빛으로 빛난다.
억새는 벼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뿌리는 약으로 쓰고 줄기와 잎은 가축사료나 지붕 잇는 데 쓴다.

그러나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는 억새와 달리 전세계에 분포한다.
분명 억새와 갈대는 다른 종류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분을 못한다.
억새와 갈대의 구분을 위해 아래에 사진 2매로 억새와 갈대를 비교해 본다.




이 사진은 2010년 11월21일 오후 5시9분
전남 순천만에서 찍은 "억새" 사진이다.

억새는 산에서 많이 자라지만 물가에서도 물억새가 자란다.
꽃이 상당히 여성스러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이 사진은 2010년 11월21일 오후 5시9분 전남 순천만에서 찍은 "갈대" 사진이다.
갈대는 산에서는 자랄 수 없고 물가에서만 자란다.
자세히 보면 꽃이 억세 보이고 남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억새 군락지에 발을 들여 놓은 그 순간부터 발걸음은 한없이 더디게 움직인다.
매년 가을 이맘 때 짧은 기간 동안, 그것도 전국적으로 몇개소 되지 않는 곳을 찾아야만
가을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는 억새의 멋진 자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을 떠다니는 뭉게구름은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꽃 위에 번갈아가며
햇빛을 보내 준다. 구름으로 가렸던 억새꽃 무리 위로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그 주변의 억새꽃들은 온통 은빛으로 빛난다.




사람 키를 넘는 억새군락으로 터널을 이루는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 길
모든 행락객들은 여유있게 움직이며 깊어가는 가을을 온 몸으로 느낀다.




은백색으로 빛나는 억새군락 속에 온종일 머물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다.
주위의 행락객,산행객들 모두의 얼굴이 너무나 평화롭게 보인다.
인간의 심성까지 좌지우지하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억새 군락 중심부를 따라 만들어진 탐방로를 따르는 인파가 끝이 없다.
이곳 명성산 자락에 이처럼 억새군락지가 만들어진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다.
오랫동안 울창한 숲을 이루던 이곳이 60여년 전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한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곳에 쏠아진 수많은 포탄들은 울창했던 나무숲을 폐허로 만들었고,
자연은 헐벗은 땅에 억새풀이 자라나게 했던 것이다.




낮 12시23분
해발고도 750m 정도 지점에 만들어진 전망대 겸 쉼터인 팔각정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잠시 후면 은백색으로 빛나는 억새군락을 떠나야된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진다.




자그마한 2층 전망대인 팔각정에서 또는 그 주위에서 수많은 인파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한다. 부디 1주일간 일터에서 얻은 피로를 모두 풀고 귀가하기를..




낮 12시33분
억새군락지가 내려다보이는 능선 위에 자리 한 팔각정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팔각정 옆에는 이처럼 관광객들을 위한 대형 우체통이 세워져 있다.
또한 그 옆에는 더 넢이 산행을 하지 않고 이곳에서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 가는
대부분의 행락객들과 일부 산행객들을 위한 명성산 표지석이 만들어져 있다.
이곳 포천시가 포천군이란 명칭을 버리고 도농복합시로 승격된 때가
지난 2003년부터니까 이 표지석은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인가보다.




팔각정 부근은 엄청난 인파로 마치 시장 바닥을 방불케 한다.
많은 행락객들이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명성산 표지석,우체통 바로 옆에서
넓은 공간을 점령한채 몇십명이 단체로 둘러 앉아 음식을 게걸스레 먹는
몰지각한 행락객들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몇 발자국만 옮기면 다른 많은 행락객들의 불편을 덜어줄 수 있을텐데...




낮 12시35분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팔각정에서 북쪽으로 2.7km 떨어진 삼각봉으로 향하기 위해
팔각정을 뒤로 하고 북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산길로 들어선다.
이제부터는 혼잡스런 인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구간이다.




오후 1시5분
동쪽 아래로 군부대의 포 사격장이 내려다 보이는 조망 좋은 공터에서
동행한 일행들과 점심 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 산행길을 이어 간다.




드넓은 억새군락지가 내려다 보이는 팔각정을 뒤로하고 770봉으로 향하는 산행길은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판이하게 다른 느낌이다.
좌측인 서쪽과 우측인 동쪽이 급경사 사면으로 이루어진 능선길이다.
햇빛을 등지고 북쪽을 향해 걷는 길인지라 하늘 색깔이 유난히 짙푸르게 눈에 들어 온다.




오후 1시17분
뾰족하게 솟아오른 봉우리 위에 돌탑이 만들어져 있는 770봉을 넘어서자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동안 산자락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산정호수가 남서쪽 아래로 그 자태를 드러 낸다.
산 사면의 나뭇잎들도 서서히 원색으로 물들어 간다.




진행 방향인 북쪽 멀리 대부분의 능선길이 구름에 가린 속에서
햇빛을 받아 빛나는 삼각봉이 눈에 들어 온다.




2km이상 떨어진 삼각봉 주위를 망원렌즈로 가까이 살펴 본다.
세개의 봉우리 전체가 하나의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듯 보여진다.
오늘 산행 계획은 저곳 앞 봉우리에 세워진 삼각봉 정상석을 만나는 것이다.




주로 암반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반복하며
조금씩 고도를 높여 간다. 그에 따라 단풍 색깔도 점점 진해 진다.




북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긴 산행길이지만 지나는 지점마다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억새꽃이 만발한 구간을 지나기도 하고




이처럼 진한 원색으로 물들어가는 울창한 나무숲을 지나기도 한다.
가을은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점점 깊어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짧은 가을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게 된다.




오후 1시46분
파란 가을 하늘 위로 높이 떠 다니는 뭉게 구름은 시시각각으로 다른 경치를 만들어 낸다.
20여분 전 구름으로 가려 어둡게 숨겼던 부분을 이제는 밝은 햇빛 아래 드러 낸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능선길이지만 햇빛과 흰구름이 끊임없이 여러 모양의 풍경화를 그려 낸다.




진행방향 우측인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손에 닿을듯 가까이 해발 838m 인 각흘산이 보이고
더 멀리 흰 뭉게구름 아래 경기도 포천, 강원도 철원,강원도 화천의 경계 지점에 자리한
해발 1,046m 광덕산이 보인다. 그곳에 자리한 기상레이더의 돔이 햇빛을 받아 흰 점으로 빛난다.




오후 1시52분
이제 삼각봉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700m 정도. 하지만 산길 700m 를 가려면 아직 한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여가 지난 시점인지라 발과 다리에 조금씩 피로감을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이 피로감을 바람에 실어 데려가는듯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다보면 어느새 피로감은 잊혀진다.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를 연이어 오르내린 끝에
삼각봉까지 남은 거리가 0.32km 임을 알리는 이정표 부근에서 잠시 한숨 돌린다.
원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무숲이 끝나는 지점 멀리 삼각봉 정상부가 보인다.




삼각봉 정상 부위를 가까이 살펴본다.
정상석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는 몇몇 산행객들이 눈에 들어 온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삼각봉 정상을 향하는 길은 크고 작은 바위 사이를 헤집고 오르는 험한 구간이다.
오랜 시간 산행으로 지친 다리에 힘을 더하며 오른다.
비록 힘은 들지만 주위의 멋진 경치를 감상하는 일 또한 게을리할 수 없다.




오후 2시19분
해발 906m 삼각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부는 큰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행객 10여명이 올라 서면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은 면적이다.
시원한 가을 바람으로 흐르는 땀을 씻어 낸다.




남동쪽 아래로는 원색의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지나온 능선길이 이어지고,
그 능선 너머 멀리 1시간 전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며 내려다 보았던
군부대 포사격장이 까마득히 보인다.




북쪽으로는 강원도 철원군이다.
드넓은 철원평야의 광활한 벌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 명성산의 옛 이름은 '울음산'이었다.
1,100여년 전 후고구려를 세웠던 궁예(弓裔)가 왕건(王建)에게 쫓기던 중 이 산에서 피살되었다고 하며,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주인을 잃은 신하와 말이 산이 울릴 정도로 울었다고 하여 울음산이라고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그 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하여 '명성산(鳴聲:울음 소리:山)이 되었다 한다.




오후 2시49분
삼각봉 정상을 떠나 다시 팔각정으로 되돌아가며 삼각봉쪽을 뒤돌아 본다.
삼각봉에서 900m 쯤 떨어진 893봉 부근이다.
이곳 명성산 최고봉인 923m봉이 삼각봉에서 불과 300m  거리에 있음에도
동행한 일행들과의 약속시간 때문에 들리지 못한 점이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삶에서는 항상 스스로 양보해야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기에 미련을 버린다.




오후 3시
2시간 반 전 잠시 멈추었던 팔각정까지 500m 남짓 남긴 지점인 870봉에서 다시 한 번 삼각봉쪽을 뒤돌아 본다.
멀리 철원평야까지 한 눈에 들어 오는 조망이 아주 좋은 곳에서 한동안 머문다.
이제 이 봉우리를 넘어가면 저곳은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후 3시8분
큰 돌탑이 만들어져 있는 770봉에 도착해 진행방향 우측인 남서쪽 아래의 산정호수를 내려다 본다.
산정호수는 1925년 이곳 영북농지개량조합에서 관개용 저수지로 만든 인공호(人工湖)이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호수 면적이 약 0.024㎢ 라고만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숫자로 표기된 이 면적을 실감하지 못한 채 그냥 흘려 버린다.

참고로 이 산정호수 면적을 평으로 환산하면 대략 7,260평 정도이다.
쉽게 비교하기 위해 3만 여명 관중을 수용하는 잠실야구장의 경기장 면적과 비교해 보면
잠실야구장의 경기장 면적은 약 4,200평이다.




오후 3시14분
770봉을 지나 3시간 여 전 잠시 멈추었던 팔각정을 향해 내리막 길로 들어선다.
시장 바닥처럼 붐비는 인파는 그새 많이 줄었다.
오전에 산을 오를 때는 좌측 사면의 억새 군락지를 따라 산행을 했으나
하산길은 정면에 보이는 작은 봉우리를 넘어 자인사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팔각정에서 자인사까지 거리는 대략 2.5km 남짓이다.




오후 3시 29분
자인사쪽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급경사 암반구역이 많다.
자인사를 1.4km 정도 남긴 지점까지 이와같은 인공 구조물인 급경사 내리막 계단이
수 차례 이어진다. 무릎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큰 고통을 수반하는 구간이다.




오후 3시44분
급경사로 된 인공계단길이 끝난 후에는 연이어 급경사 돌계단 길이 이어진다.
평소 꾸준한 걷기운동 때문인지 별 어려움없이 하산길을 이어가던 중 해발고도 500m 정도 지점 쉼터에서
뒤에 많이 처진 동행들을 기다리며 눈 아래 펼쳐진 산정호수의 경관에 취해 본다.




짧은 가을 해는 이미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거울같은 호수면이 석양빛을 받아 은빛 물결을 만들어 낸다.
산속의 우물과 같이 맑은 호수라 해서 ‘산정(山井)호수’로 불린다는데,
믿었던 부하 왕건에게 도리어 쫓기다 생을 다한 비운의 군주 궁예의 눈물을
저 호수는 머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인사까지 이르는 하산길 중 1.4km의 급경사 내리막 돌계단 길의 절반 정도는
이처럼 돌계단이 망가져 어지러운 돌무더기 길로 변해있다.
어쩌면 지난 여름 장마와 태풍을 거치며 훼손을 입은듯도 한 하산길.
많은 산행객들이 무척 힘들어하며 조심스레 하산길을 이어간다.




오후 4시10분
지루하고 힘들던 하산길이 끝나고 도로변에 접한 자인사에 도착해 한숨 돌린다.
고도계의 눈금은 300m 이하로 떨어졌다.
주위 산행객들 중 누군가가 '대웅전'이 보이지 않는다며 두리번거린다.
이곳 자인사에는 대웅전은 없다. 이곳의 주불전은 '극락보전이다.

통상 사찰의 주불전은 크게 3가지 이름으로 불리운다.
대웅전(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는 불전이며,
적광전(비로전,화엄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불전이며,
극락전(아미타전,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불전이다.




사찰 경내는 산책로는 물론이고 마치 장사치들의 본부 마냥 온통 콘크리트로 뒤덮인 자인사.
마치 대형 상업 광고판 마냥 '왕건이 기도하던 절' 이라든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게 만들어 놓은 미륵불 앞에 놓인 커다란 '복전함" 등.
못마땅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경내를 벗어나 버린다.

사찰측의 홍보 자료에 의하면 그 옛날 궁예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옛 부하였던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를 위한 기도처로 만들었던 작은 암자가 이 사찰의 시발점이라는데,
그 순수한 의도가 크게 훼손된듯 하여 아쉽기만 하다.




오후 4시 18분
물 맑고 깨끗한 산정호수변에 도착해 5시간 반 이상 걸린 산행을 마친다.
서울에서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내 기억 저편에서 오래 전 학창시절 몇 번 찾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서울에서 불과 70km 남짓한 거리이지만 교통이 불편하던 그 옛날
요즈음 해외여행을 떠날 때 보다 더 설레던 기분으로 큰 마음 먹어야 머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했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