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2일 일요일 오전 10시43분
숲속의 귀족 또는 숲속의 여왕으로 불리는 자작나무숲을 찾아 첫 걸음을 내디딘 곳.
'원대산림감시초소'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곳.
아직은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인지라 정확한 지도도 없고
정확한 행정구역도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이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산75번지 부근이라는 것과
북위 38.0079025도 이며, 동경 128.1967738 도라는 것 외에는..
*참고로 이곳을 찾아오실 분들은 서울 방면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인제군 종합장묘공원'을 향하다 공원입구 삼거리에서 공원쪽으로 향하지 말고 좌측 길인
반장도 외고개길을 택하면 고갯마루에서 산불감시초소를 만날 수 있다.
자작나무숲까지는 완만한 오르막 경사의 임도를 따라 약 3km를 걸어야 한다.
임도 우측의 산 사면에는 온통 자작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자작나무 아래 풀밭에서는 산불감시초소 바로 아래 유료 승마장에서 키우는듯한
말 몇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무척 여유로운 정경이다.
좌측 아래에는 원대리 마을로 이어지는 임도가 보인다.
사람이나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아서인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벗과 함께 걷고 싶은
아늑한 오솔길처럼 내 눈에는 비쳐진다.
길섶으로는 산 사면을 따리 자라는 온갖 종류의 울창한 활엽수림에 뒤질세라
온갖 야생화들이 빈틈없이 자란다.
특히 수분을 많이 함유한듯한 비옥한 흙길에 이처럼 물가에 자라는 물봉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대부분 분홍빛 물봉선이지만 간혹 흰 물봉선도 눈에 띈다.
물봉선 군락이 잠시 끊어지는 지점에서 이번에는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도 그 이름이 등장하는 '마타리'가 화사하게 피어난다.
꽃말이 '무한한 사랑'인 이 꽃처럼 '소나기'의 그 소년은 아마도 소녀를 무한정 사랑했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원산인 이 야생화는 똥과 오줌의 고어(古語)인 ‘말’에 ‘다리’를 합쳐서
똥 냄새가 나는 다리 긴 풀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는데
뿌리에서 장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패장(敗醬→깨트릴 패, 젓갈 장)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江) 유역·사할린·북아메리카 등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는 1년생 풀인 이 야생화는
봄에 어린 잎을 식용함은 물론 한방에서는 잎을 압척초(鴨衫草)라는 약재로 쓴다.
열을 내리는 효과가 크고 이뇨 작용을 하며 당뇨병에도 쓴다. 생잎의 즙을 화상에 사용하기도 한다.
오늘이 9월 첫 일요일이라는 사실을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억새풀을 보며 새삼 느낀다.
유난히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던 여름이 지나고 이제 결실의 계절 가을이 눈 앞에 다가왔다.
지난 가을 이곳에서 가까운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에서 경험했던 광활한 억새밭 정경이
머릿속으로 선연히 떠 오른다.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아주 특이한 경우 수년간 사는 종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수명이 5~6개월에 불과한 메뚜기의
몸놀림이 무척 빨라 보인다. 몇개월의 생명을 유지한 후 곧 알을 낳으면 생을 마감할 저 메뚜기는
우리 인간들이 증권시장에서 단기매매성 자금을 굴리거나 혹은
새로운 직장을 찾아 이러저리 옮겨 다니는 젊은이들을 '메뚜기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자기네 종족의 명칭을 허가없이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한데 대해 얼마나 못마땅해 할까??
오전 11시 9분
온 몸에 땀에 젖을 정도로 오르막 산길을 오르는 길에서 많은 땀을 흘린다.
이제 1km 조금 넘게 걸었으니 아직 자작나무숲까지 2km 가까이 남았다.
그나마 하늘을 온통 뒤덮은 옅은 구름이 햇볕을 가려줌이 다행이다.
오전 11시18분
자작나무숲까지 절반 이상을 왔으니 이제 1.3km 정도 남겨둔 지점.
해발고도가 680m를 넘어서며 오르막 경사가 완만해 진다.
30여분 이상 산길을 오르느라 지친 다리에 조금 여유를 느낀다.
이곳 인제읍 원대리 일대 45ha 의 산지에는 총 연장 45km 의
산악마라톤 및 산악자전거를 위한 이른바 '산림레포츠의 숲'이 조성되어 있다.
지금 우리 일행이 걷는 이 길도 그 구간의 일부이다.
노란 마타리꽃 너머로 걸음을 잇는 산행객들 사이로 간혹 페달을 밟는
산악자전거 동호인들도 몇몇 눈에 띈다.
지금은 내일부터 각자의 일터에서 이어질 치열한 생존경쟁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우리나라가 원산인 '강활(羌活)'도 흰 꽃을 탐스럽게 피운다.
독특한 향이 나는 강활은 어린 순을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서는 뿌리를 감기·두통·신경통·류머티즘·관절염·중풍 등에 처방한다.
오전 11시38분
산행을 시작한지 3km. 차량 10여대 주차가 가능할듯한 공터에 SUV차량 몇대가 주차되어 있는곳.
자작나무숲 입구에 도착했다. 이 지점의 해발고도는 대략 700m 정도.
아직 일반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40여명의 우리 일행 외에는
인적이 거의 없어 붐비지 않음이 마음에 든다.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란 안내문을 읽으며 자작나무숲 속으로 들어선다.
25ha 의 면적에 달하는 이곳 자작나무 숲은 지난 1993년에 조성된 곳으로
원래는 소나무 숲이었으나 소나무를 일부 벌목하고 자작나무숲을 조성했다.
더불어 수년 전부터 아이들이 자연을 벗 삼아 숲과 함께 숨쉬는 '숲속 유치원'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이는 1950년대 덴마크의 작은 산촌마을에서 시작해 1990년대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현재 독일에는 700여 개의 국가 공인 숲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유럽 전역과 미국 등지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다.
통상 산지의 면적은 ha 로 표기하는데 이 면적 단위는 우리에게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면적이다.
참고로 1ha는 10,000㎡ 이므로 평으로 환산하면 3,025평이 된다.
그러므로 이곳 원대리 자작나무숲의 총 면적은 75,600 여평에 달한다.
우리가 강원도를 여행하다 차창 밖으로 일별하며 지나친 자작나무숲의 경우 수박 겉핥기라면
이곳 75,000 여평 자작나무 숲에 들어온 것은 맛있는 수박의 맛을 음미함과 비유될 것이다.
자작나무를 '껍질에 글을 쓰는 나무'란 의미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이름을 따
서양에서는 '버치(Birch)'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함경도지역에서 '보티나무'로 부르는 것은 영어 '버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자작나무란 이름은 나무가 불에 탈 때 나는 소리대로 '자작'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그 사랑이 익어 껍질로 화촉(華燭)을 밝히면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행복을 불러 신방을 밝혀 주었다.
한(寒)하고 고(苦)한 약성을 지녀 해열, 이수(利水), 해독, 염증의 효능으로 사람의 생로병사를 다스렸고,
항암효과가 큰 차가버섯, 상황버섯, 말굽버섯을 옆구리에서 키워냈다.
넓은 숲 중앙부에는 이처럼 공터를 만들어 놓아 탐방객들이 마음 편히 오래오래 쉴 수 있게 해 놓았다.
소박한 작은 그네를 타며 놀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기쁨에 들뜬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마치 몸과 마음이 모두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다.
오래 전 보았던 영화 '닥너 지바고'에서 흰 눈에 덮인 자작나무숲의 그림같던 정경을 떠올리며
나 또한 한동안 넋을 잃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 이경림 시인의 '자작나무야' 중 한 귀절이 떠오른다.
---너 지금 사랑하고 있구나
쪽쪽 살 빠지는 소리 들으며 진땀나게 그리워하고 있구나
이 엄동에 청청하게 고통 거느리고 지지푸르게 신음하고 있구나
가지에 새 한 마리 앉아도 소스라치는구나
그래 그 마음 만져지는구나 ---
추운 지방의 산불 난 곳이나 붕괴 지대, 비옥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자작나무는
내한성이 강하고 햇볕을 좋아하며 생장이 빠르다.
그러나 여름의 고온과 겨울의 건조에 매우 약해
우리나라 곳곳에, 특히 중부 이남지방의 조경용으로 심어놓은 자작나무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작나무는 목재의 질이 좋고 썩지 않으며 병충해에 강해서 건축재, 조각재 등으로 많이 사용되고,
팔만대장경을 제작하는 목판으로도 일부 사용되었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자작나무의
껍질을 종이 대신 사용해 불경을 적어두거나, 신라고분벽화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자작나무 껍질로 시신을 감싸 미이라를 만드는 개천이라는 풍습도 있었다.
높은 산악지대나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자라며 하얀 나무껍질과 특이한 수형,
그리고 버릴 것 하나 없는 쓰임새 덕분에 숲 속의 귀족 또는 여왕 등으로 불린다.
가까이서 보는 자작나무의 느낌에서 '숲속의 귀족'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듯 하다.
귀인의 살결 같은 수피는 하얗다 못해 은빛을 발할만큼 황홀하다. 눈부시다.
생장의 빠름, 연한 가지, 흰 나무껍질 때문인지 자작나무는 고대 게르만인 사이에서 생명, 생장, 축복의 나무라고 생각되었다.
이는 여신 프리그(Frigg)의 성수로서 나뭇가지를 문이나 창에 달아서 사랑이나 기쁨의 표시로서 입구에 장식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오월수(五月樹)로서 전나무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독일어 Maie라는 말이
<오월주> 외에 <자작의 어린가지>를 나타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자작은 봄맞이의 나무로서 어령강림제에도 장식되었다.
어린가지로 여자나 가축의 몸을 두들기면 다산을 약속하기 때문에
북독일에서는 젊은이가 여인을 두들긴 후에 가지를 선물하는 풍습도 있었다.
또한 양배추 밭의 해충을 구제하거나 번개방지나 가축의 병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30분 가까이 머물렀던 자작나무 숲을 벗어나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동아실 계곡으로 걸음을 옮긴다.
당초 소나무숲이었던 곳을 일부 소나무를 벌목한 후 자작나무를 심었음을 알 수 있다.
자작나무와 크기는 비슷하나 색깔이 짙은색 수피인 낙엽송이 한 그루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산책로 옆 숲속 작은 물 웅덩이 앞에는 '사슴이 마시는 물'이라는 표지목이 서 있다.
수년 전부터 한번씩 다녀오는 지리산 둘레길 어느 구간에는 이보다 조금 큰 물웅덩이에
"동물들의 오아시스" 라는 팻말이 서 있었고,
금년 여름 다녀온 강원도 양양의 소똥령숲길에는 "멧돼지 물먹는 곳"이라는 팻말이 서 있었다.
요즈음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관광객 유치에 얼마나 열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낮 12시 10분
유리 지바고가 사랑하는 라라와 영원한 이별을 했고,
900년 전 러시아의 고도(古都) '노브고로트'의 사랑에 빠진 수련수녀가
애끓는 사랑을 담았던 자작나무숲은 이제 우중충한 색깔의 낙엽송으로 바뀌고 만다.
낮 12시20분
우중충한 색채의 낙엽송 숲도 곧 끝나고 키 작은 활엽수로 뒤덮인 울창한 숲길이 이어지며
길섶에서 활짝 웃는듯 피어있는 예쁜 참취꽃을 만난다.
어린 순을 데쳐서 취나물이란 이름의 나물로 무쳐 먹는 이 참취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여 다이어트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는데 도움이 되며
칼륨 함량이 높아 체내의 나트륨을 배출하는데 도움을 준다.
울창한 나무숲에는 다람쥐 등 야생동물의 먹이인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밟지 않으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긴다.
아마도 지난주 두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의 상흔인듯 싶다.
낮 12시53분
이처럼 울창한 풀숲 아늑한 곳에서 일행 십여명이 둘러 앉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산행길을 이어간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대략 800m 정도 된다.
인적이 거의 없는 숲길이어서인지 발 밑으로 밟히는 오래된 낙엽들이 마치
두터운 양탄자를 밟으며 지나는 느낌을 준다.
오후 1시9분
짙은 활엽수림을 벗어나며 다시 걷기 편한 임도로 들어선다.
길섶에서 금년 들어 처음 만나는 예쁜 야생화를 접한다.
겨울철 산속 암자에서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승이 배고픔과 추위에 떨다가 얼어죽은
자리에서 피어났다고 하여 '동자꽃'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애틋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동자꽃은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승처럼 항상 산밑을 바라보며 꽃을 피우는데, 그래서인지 꽃말도 ‘기다림’이다.
오후 1시24분
남전계곡과 연결되는 방아실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서쪽 방향이다.
임도를 벗어나 계곡으로 이어지는 숲속으로 내려서기 전 뒷쪽인 동쪽을 잠시 바라본다.
오전 내내 잔뜩 찌푸렸던 하늘의 구름이 조금씩 걷히며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파란 하늘 아래 솟은 봉우리 부근은 아마도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일게다.
물기 많은 바윗가에는 작고 예쁜 금강초롱꽃도 보랏빛 꽃망울을 터뜨린다.
우리나라 중부 및 북부 이북의 고산지대 깊은 숲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인 이꽃의 생육환경은
반그늘 혹은 양지쪽의 바위틈이나 계곡의 물이 많고 습도가 높은 곳에서 자란다.
특히 이 금강초롱꽃은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분류되어 있어 재배 및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가을에 뿌리를 캐서 술을 담근다든지 하는 우리네 선조들의 대표적인 약용 식물인
'당귀'도 물가에서 싱싱하게 자란다.
이 야생화의 이름 유래가 재미 있다.
마땅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당귀(當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이는 중국의 옛 풍습에 부인들이 싸움터에 나가는 남편의 품속에 당귀를 넣어 준 것에서 유래하는데
전쟁터에서 기력이 다했을 때 당귀를 먹으면 다시 기운이 회복되어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이 약을 먹으면 기혈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물기가 많은 계곡으로 가까이 하산할수록 숲속의 토질은 비옥하다.
발밑으로 밟히는 낙엽의 두께가 무척 두꺼움을 느낀다.
각종 이름 모를 버섯을 비롯하여 식용 가능한 느타리버섯 등등 온갖 식물의 보고로 여겨지는
비옥한 숲속의 숲 향기도 무척 짙게 코 끝을 자극한다.
그런가 하면 한동안은 넝쿨식물인 다래가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지난주 태풍의 여파이겠지만 바닥에 떨어진 다래 열매가 너무 많아 밟지 않고는 지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일행들은 너도나도 떨어진 다래를 주우며 하산길을 이어간다.
간혹 하나씩 입에 넣고 맛보는 다래 맛이 일품이다.
오후 2시11분
4,50분 정도 온갖 활엽수와 잡목이 우거진 울창한 숲을 지나느라 기진맥진할 즈음
비로소 하늘이 트이며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젖은 몸을 식혀준다.
본격적으로 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크고 작은 바위 틈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며 경쾌한 물소리를 들려준다.
바위를 타고 흐르며 작은 폭포를 이루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
땀으로 젖은 얼굴과 손발을 씻고 잠시 한숨 돌린다.
오후 2시22분
좁은 계곡은 아래로 내려 갈수록 점점 넓어진다.
계곡을 가로 질러 만들어 놓은 작은 보 아래로 멋진 폭포가 만들어진다.
땀으로 젖은 몸을 식히기 위해 입은 옷 그대로 폭포 아래로 뛰어든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시원한 물을 맞으며 4시간 가까이 흘린 땀을 씻어낸다.
예쁜 꽃을 피운 층층이꽃 너머로 조금 전 시원한 알탕을 즐겼던 작은 폭포를 바라보며
금년 여름동안 매주 주말산행중 하산시에는 마치 통과의례처럼 즐겨온 입은 옷 그대로 물로 뛰어드는
이른바 알탕도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물에 젖은 옷을 깨끗이 빨아 물을 짜낸 후 그대로 걸친다.
앞으로 1시간 남짓 이어져야할 하산길의 더위를 막아줌과 동시에
하산이 끝날 즈음에는 젖은 옷도 완전히 말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 원산의 여름철 야생화인 이 꽃은 꿀풀과 답게 꿀을 많이 함유한 관계로
벌,나비가 많이 꼬이는 꽃이다.
분홍 빛 꽃이 줄기와 가지 끝 마디마다 돌려 피는데 그 형상이 층을 이루므로
층층이꽃이란 이름을 얻은 이 층층이꽃은 봄철 어린 순은 나물로 먹으며,
줄기와 잎을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 옴의 치료에 쓰기도 한다.
오후 2시47분
한동안 계곡을 따라 이어지던 조심스러운 하산길이 끝나고
걷기 편한 숲길로 들어선다.
오전부터 계속 찌푸린 채 두꺼운 구름이 드리웠던 하늘도 이제는 많이 개었다.
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파란 하늘을 보니 가을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길섶 나무 그늘 아래에 한방에서는 뿌리를 사삼이라고 하며
진해·거담·해열·강장·배농제로 사용하는 잔대꽃이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예쁘게 피어있다.
잔대는 옛부터 인삼,현삼,단삼,고삼과 함께 다섯까지 삼의 하나로 꼽아 왔으며 민간 보약으로 널리 쓰여왔다.
잔대는 뱀독,농약 독,중금속 독,화학약품 등 온갓 독을 푸는데 묘한 힘이있는 약초로 알려져 있으며
옛기록에도 백가지 독을 푸는 약초는 오직 잔대뿐이라 하였다.
4시간 전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끊임없이 눈에 보이던 물봉선도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군락을 이룬다.
오늘 산행 중에는 분홍빛, 그리고 흰색 물봉선만 보였으나
오늘 처음으로 노란 물봉선을 만난다. 마치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던 반가운 친구를
조우한듯 반갑다.
오후 3시12분
해발고도 500m 정도 되는 지점을 지난다.
아직 한낮에는 더운 날씨이지만 강원도 산골 고산지대의 가을은 성급히 찾아든다.
비교적 단풍이 일찍 시작되는 참나무 계통의 나뭇잎들은 벌써 잎이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완만한 내리막 경사의 호젓한 숲길이 계속 이어진다.
아마도 이런 숲길은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걷고 싶어하는 길일게다.
친한 벗과 함께, 또는 연인과 함께, 가족들과 함께..
물론 사색에 잠겨 혼자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만한 오래 머물고 싶은 그런 길이다.
오후 3시27분
해발고도 400m 이하로 내려온 지점부터 길섶을 따라 많이 피어난 야생화를 보며 걷는다.
잎이 거북의 꼬리를 닮아 '거북꼬리'라는 이름을 얻은 이 야생화는 어린 잎을 식용으로 쓰며,
뿌리를 "장백저마 (長白苧麻)"라는 이름의 약으로 쓰는데 열을 내려주며 지혈,해독 등의 작용을 한다.
오후 3시50분
5시간 가까이 이어진 자작나무숲을 거친 산행은 해발고도 300m를 조금 넘는 지점의
남전교 부근 주차장에서 끝난다.
주차장 옆을 흐르는 맑은 계곡 그 위쪽 단풍나무 그늘 아래 작은 폭포가 아름다운 곳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숲속의 귀족 자작나무숲을 거쳐 아름다운 폭포에서 걸음을 멈춘 행복했던 휴일이었다.
2초간의 카메라 셔터속도에 의해 작은 폭포를 따라 떨어지는 물줄기가 비단결처럼 보인다.
지난 가을 붉은 단풍이 아름다웠던 이곳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했던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참고로 이 사진은 지난 해 10월16일 아침 7시56분에 위와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설악산 산행 후 이곳 동아실계곡의 고교동기생 별장에서 1박하며
가을 단풍의 절경에 취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올 가을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이다.
위 지도상에 표시된 구간이 오늘 산행 구간이다.
다만 정확한 지도를 찾을 수 없어
자작나무숲과 도착 지점은 정확하지만 나머지 구간은 부정확함이 아쉽다.